JMDC경건훈련을 위한 도서입니다. 간략한 도서소개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성경』 시리즈는 성경개론, 묵상, 설교자료, 삶에 적용, 실천, 변화까지 만들어주는 경건훈련을 겸한 성경안내서입니다. 모든 초점을 오로지 변화에만 맞추었기 때문에 개론 부분도 적용과 변화가 가능한 정도까지를 종합하여 제시합니다. 묵상은 좀 더 근본적인 접근방법으로 인하여 하나님 중심적인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현실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설교의 자료들을 풍부하게 제공합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제자로서의 삶을 이끌어줄 수 있도록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성경』 시리즈를 창세기부터 꾸준하게 읽고 적용하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각이 바뀌고 삶이 서서히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영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성경』 시리즈는 성경 전체를 총 32권에 나누어서 날마다 한 장씩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은혜를 받고 변화될 수 있도록 기획된 특별한 목적의 책들입니다. 현실적인 신앙생활에 적용이 가능하도록 해설한 족집게식 개론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도록 기획한 묵상과 실천적인 문제제시로 이루어진 이 책을 사용한다면 평이한 성경통독이나 묵상을 대체할 수 있는 뛰어난 안내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귀한 양식을 취할 뿐만 아니라 소화까지 완벽하게 이루어냄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며 나날이 신앙이 성장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는 기원(시작)의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창세기는 뿌리의 책이라는 사실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뿌리란 무엇입니까? 뿌리는 근원입니다. 식물로 말하자면 이 뿌리가 사라지면 그 식물의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믿지 못하면 뿌리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과 신앙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창세기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말씀 그대로 믿지 못한다면 그냥 잠깐 있다가 썩어져가는 일반 생명체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를 읽을 때에는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삶의 뿌리를 캔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실제로 적용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조상의 옛 이야기로 읽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창세기는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라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어떤 전제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창세기에는 주의 천사,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영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것은 구약에서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 방식일까요? 그렇다면 구약은 하나의 전설이나 설화에만 그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읽고 적용하려고 할 때 구약의 방식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하신다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직접 천사가 나타나지는 않습니다만, 하나님은 이미 성령님과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모든 백성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적용이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직접 주신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말씀을 직접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받는 것이 변화와 성장의 전제조건입니다. 창세기를 통하여 우리 신앙의 본질과 생명력을 되찾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일부 내용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다스려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끝까지 이긴 자들에게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스리는 권세란 무엇일까요? 왕좌에 앉아서 명령하고 가르치는 권한일까요? 다스림이란 일반적으로 통치하는 것을 뜻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섬김과 관리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꽃씨를 땅에 심고 그 꽃을 다스린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싹이 나면 잘 잘라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을 돌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곧 아담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사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사명은 곧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비록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죄로 더럽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관점에서는 아담에게 명하신 다스림의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원래 아담을 회복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어주시고 회복시켜주셨다면 우리의 사명도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고 곧 섬김과 돌봄인 것입니다. 많은 환경들 앞에 놓여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스림의 본질과 원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적용하기 : 당신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다스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며 사람들을 변화시키겠습니까?
까마귀와 비둘기로 분별하라.
노아는 홍수가 그친 후에 땅이 말랐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까마귀와 비둘기를 사용하였습니다. 부정한 짐승의 대명사격인 까마귀는 죽은 짐승을 먹는 새이고, 정결한 짐승의 대명사격으로 제물로도 사용되는 비둘기는 곡식과 풀만 먹는 짐승입니다. 까마귀는 방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땅이 마를 때까지 공중으로 날아다녔고 비둘기는 물이 마르고 나무에 싹이 난 후에 스스로 사라져갔습니다. 그것으로써 노아는 방주에서 나가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지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을 분별하는 데에는 부정적인 짐승도 정결한 짐승도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성경말씀으로도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까마귀와 비둘기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부정한 짐승인 까마귀로써 죄나 악들을 분별하여 그 길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죄와 악 뿐 아니라 재물, 부귀, 권력, 영광, 자랑과 같은 것들도 까마귀에 해당되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훼방하거나 미혹하는 모든 것들이 까마귀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둘기로 분별해야 합니다. 착한 일, 선한 일, 타인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 등 정결한 행위에 대해서 분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서는 안 되고 그 동기와 목적과 근원을 헤아리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작정 착한 행위에 끌려가게 되는데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하기 : 당신은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분별하고 있습니까? 혹시 정치적 견해, 선입견, 경험, 지식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까? 한번 까마귀와 비둘기로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에벨 온 자손의 조상
많은 이름들 중에는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셈을 소개할 때에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에벨이 믿음의 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히브리 민족이라고 부를 때 ‘히브리’의 어원이 아마도 ‘에벨’(Eber → Heber → Hebrew)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백성인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의 믿음도 에벨로부터 계승되어 내려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지만 그 중에서 에벨은 믿음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셈 족속들 중에서도 경건하게 사는 모델과도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에벨의 자손’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에벨의 자손라고 통칭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조상 셈까지도 ‘에벨의 조상’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받았을 것입니다.
함과 가나안의 후예들과는 완전히 정 반대의 위치에 있었던 이름이 바로 에벨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에벨의 자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예들이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벨의 후예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영적 히브리인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구약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구원의 성취의 개념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에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마치 노아나 아브라함처럼 당대에 의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그런 육신적인 의미에서의 가문, 족보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믿음의 자손들이 계승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이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에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예요 부르심 받고 구속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적용하기 : 에벨의 시대에는 교회와 같은 집합적인 종교행위가 없었습니다. 에벨의 삶과 일생을 통하여 믿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삶은 종교적입니까 신앙적입니까?
아브람! 멋집니다!
조카 롯을 구출하고 난 이후의 아브람의 행동은 참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되찾아온 재물의 10분의 일을 메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살렘 왕이면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그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왕에게 바치는 10%이든지 아니면 제사장에게 바치는 10%이든지 아브람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을 영접하러 나와서 자기 사람들만 돌려보내고 물품은 다 취하라고 했지만 아브람은 함께 공격한 사람들에게 소요된 음식과 분깃 외에는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혹시 아브람이 그 전투로 말미암아 부를 쌓으려고 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고 또 이것을 하나님께 맹세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것과 같아 보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주의 일을 감당할 때에는 대가 없는 섬김이 필수적입니다. 물론 받지 않아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경우에 한해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과 삶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는데 대가를 받아버리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대가를 받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당한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대가를 받지 않으면서 그것을 자랑하는 것보다는 정당하게 대가를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아가 섬길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 의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적용하기 :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주어지는 대가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어느 것이라도 자랑이 되거나 치부가 되거나 자기 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 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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