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성경책/나만의 누가복음 16

주의 길을 평탄케 (눅 3:4-5)

나만의 누가복음 14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주의 길이라면 탄탄대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평탄케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눅 3:4-5)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세례 요한의 사역은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일이었다. 울퉁불퉁 꼬불꼬불, 험한 길을 곧고 평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굽고 험해진 마음의 길을 곧게 펴서 주께서 오실 때 곧장 그 마음의 길로 들어가시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내 마음의 빈들 (눅 3:2)

나만의 누가복음 13 빈들에 서보라. 빈 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며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다. 내 마음이 빈 들일 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눅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원이나 성전에서가 아니라 빈들에서 요한에게 임했다. 빈들이란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신다는 말씀이다. 사명을 감당할 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사명으로만 채워져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착오가 큰 것 같다. 사명을 받았으니 사명으로 채우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사명조차도 비워야 하나님의 음성으로 채워질 수 있다. 뜨겁게 사명을 감당..

예수님을 찾아라. (눅 2:46)

나만의 누가복음 12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아서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상황을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지금 혹시 예수님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눅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을 찾아다녔다. 태어나기 전부터 심지어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엄청난 예언까지 들었는데 이렇게 사려져버리시니 그들의 마음에 얼마나 혼란이 왔을까? 하나님의 계획 중에서라도 위기나 혼란상황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취소되거나 실패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가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도 예수님은 우리를 잃지..

패할 때와 흥할 때(눅 2:34)

나만의 누가복음 11 축복의 본질 축복은 패할 때도 있고 흥할 때도 있으며 비방의 표적이 될 때도 있는 것을 의미한다.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시므온의 예언처럼 많은 사람들을 패하게 하거나 흥하게 하거나 비방을 받게 하는 표적이 되는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이와 같은 일을 당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시므온의 축복의 내용이다. 다만 모든 일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 예수님이 없어서 망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망할 수도 있다. 예수님을 몰라도 흥할 수..

하나님과의 관계유지(눅 2:25)

나만의 누가복음 10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관계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삶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기 전이었는데도 성령께서는 시므온 위에 임재하고 계셨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을 보자말자 메시아이심을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성령님께서 성도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우리는 성령이 마치 우리를 떠나계신 것과 같은 어두운 영성일 때가 많다. 언제나 성령님의 역사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큰일을 추..

믿을 수 있는 사람들(눅 2:8-9)

나만의 누가복음 9 죄인들에게 나타난 천사 죄인에게 천사가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눅 2:8-9)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사실 목자는 이스라엘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목장 주인이 아니다. 품을 파는 목동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죄인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죄인들 앞에 천사가 나타났다. 의로운 사람, 영성이 깊은 사람에게 나타나야 하는 천사가 죄인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위해 성육신하셨는가를 생각해보면 다소 의문이 풀린다.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난 것은, 오직 한 가..

돋는 해처럼 (눅 1:78-79)

나만의 누가복음 8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비치는 햇빛 돋는 해가 떠올랐지만 그 빛을 구석구석 비추이게 하는 일은 신앙인들의 몫이다. (눅 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하여 태양이 위로부터 임하여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 어둠은 방향을 알 수 없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고 참된 믿음이 어떤 것인지조차 확신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금도 어둠의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오로지 태양처럼 복음이 위로 떠오르게 해야 한다. 복음을 실천함으로써만이 가능한 이야기이다. 세상..

죄사함으로 인한 구원 (눅 1:76-77)

나만의 누가복음 7 새로운 구원개념 죄 사함과 구원은 새로운 개념이지만, 이미 짐승의 피로 대속 받는 개념 속에 들어 있었다. (눅 1:76-77)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개념은 세례 요한 이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구원의 개념이 구약과는 다르게 구체화되고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오늘날 우리가 받은 것이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이것이 시작되었다. 신학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던 짐승의 피로 말미암는 죄 씻음의 개념이 모든 인류의 죄 사면을 통한 구원으로 발전되었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복음..

부정의 언어 (눅 1:64)

나만의 누가복음 6 보약의 언어와 독약의 언어 우리도 믿음으로 기도한 후에 말이 끊겼다가 응답된 후에 풀리면 좋겠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드니까. (눅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나이 많은 사가랴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말을 불신함으로써 아들을 낳을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신의 언어는 말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할 말이 없게 만들 수도 있다. 주님은 불신의 언어를 아주 싫어하신다. 부정적, 비판적, 불신앙적 언어를 버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언어는 보약이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언어는 평화가 될 수도 있고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누구라도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가난한 자를 위해 오신 주님(눅 1:51-53)

나만의 누가복음 5 교만과 겸손 예수님은 가난한 자, 낮은 자, 비천한 자를 위해 오셨다. 하지만 외적인 가난보다 심령의 가난을 위해 오셨다. (눅 1:51-53)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예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신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할 사람들이다.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자들은 갈수록 흩어지고 내려가서 결국 빈손이 된다. 그러나 비천한 자, 굶주리는 자는 높아지고 채워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눈길과 손길도 낮은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 굶주린 자에게로 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오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