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마음 제자반

JMDC훈련 이웃사랑편 14 : 이웃사랑과 영혼사랑

김완섭 목사 2025. 6. 7. 11:59

「보이는 복음, 이웃사랑」

14장 이웃사랑과 영혼사랑

 

정리 : 박종오 목사

 

 

교회와 세상의 장벽

 

교회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라고 할 때, 세상과 교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이 장벽은 너무나도 견고하고 높이 쌓아 올려져서 세상은 교회를 들어갈 수 없다. 세상이 교회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이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과의 장벽을 허물어뜨려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지성소의 휘장은 위에서 아래로 쫙 찢어져 두 갈래가 되어버렸다. 교회와 세상의 장벽이 사라진 것이었다.

 

(23:44~46)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로 들어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지만 아직 죄 가운데 거하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장벽은 굳건하다. 그들의 죄악, 욕심, 시기, 욕망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지배, 번영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는 여전히 깰 수 없는 장벽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육체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길을 통해 성소 곧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어 올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답답하고 어려워져만 가고 있다.

 

(10:19~20)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교회와 세상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과 함께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두 번째 장벽은 세상 사람들이 움켜쥐고 있는 영적 장벽들이다. 문화의 장벽, 가치관, 세계관의 장벽이다. 어떻게 장벽을 깰 수 있겠는가? 사랑과 희생이다. 가르침과 치유다. 섬김과 본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웃사랑의 섬김과 영혼사랑의 기도이다. 이웃을 섬기는 목적은 그들의 영혼을 얻기 위함이다.

 

교회의 장벽은 성도들의 진정한 이웃사랑으로 깨는 일이 가능하지만 세상의 심령의 장벽을 깨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섬김으로써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웃을 향한 영혼사랑은 그만큼 인내와 기도와 사랑과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하는 중대하고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영혼사랑의 최후의 주최자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구원사역을 위해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함께 기도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들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교회와 장벽을 쌓고 있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영혼사랑이다.

 

영혼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기에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모든 초점이 현실에서의 복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라는 사실을 모두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영적싸움은 세상 사람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체의 욕심과 정욕과의 싸움은 스스로 싸워야 하는 고독한 싸움이다. 세상과 싸우고 세속적인 가치관과 싸우고 관습과 싸우고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이 전부 영혼사랑인 것이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웃사랑은 영혼사랑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웃 영혼들은 죽어있는 존재들로서 사탄의 종노릇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내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의 영혼도 내 자신의 영혼만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뜻에 가장 적합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까지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이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의 영혼이 깨끗한 상태에서야 이웃들의 영혼을 우리 영혼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영혼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이웃사랑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구원과 이웃 사랑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의 영혼이 반드시 구원을 받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구원이란 무엇으로부터 구원인가? 물론 가장 핵심적이자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죄로부터의 구원이 중심이다. 결코 허물어질 수 없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장벽인 죄를 깨뜨리는 것이 구원이다. 그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지성소의 휘장이 단번에 찢어졌던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구원은 우선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저들이 영혼의 죄를 사랑 받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로 이끌어준다는 말이다.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구원은 또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목숨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만 영원한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한시적인 목숨을 포기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육신의 목숨을 맡기시고 죽으셨다가 영원한 왕이 되셨다. 육체를 버리시고 영원한 목숨을 구원하는 길을 여셨던 것이다.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것이 구원이다. 그 구원은 죄로부터의 자유라는 곧 육체를 부인함으로써 죽음과도 같은 과정을 통과해야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죽음을 인정해야 이루어진다.

 

(2: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결론적으로 구원은 마귀로부터의 구원임을 알아야 한다.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탈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원래 주인이었던 마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단지 죄로부터의 구원이나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세속적인 삶으로부터의 구원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마귀로부터 구원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의 개념은 인간의 영혼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 생활과 전 영역과 미래까지 구원해 주시는 전인적인 구원임을 인식해야 한다. 즉 구원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마귀로부터의 구원까지 이루어내게 되는 것이다. 마귀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악한 원수들이나 대적하는 사람들로부터의 구원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인적인 구원이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죄로부터의 구원,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마귀로부터의 구원을 받고 영혼까지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인 삶에서도 구원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세속에서의 구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살펴본다면 그것이 바로 이웃사랑이요 영혼사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전 10:31, 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인간구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물로서 주시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이나 능력이나 성품이나 공적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만약에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면 구원받은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를 내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능하면 회개할 때까지 오래 참으심으로 기회를 계속 열어놓으신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구원을 포기하실 때까지 사랑하신다. 이웃사랑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뒤를 따라가는 행위이자 삶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삶의 원리를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삶을 통해 전하라고 죽으신 것이다.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실질적이고 결정적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방식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웃사랑과 영혼사랑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말씀으로 결론지어져야 한다.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모든 과정에는 성령님께서 함께 일하셔야만 구원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고 우리의 섬김의 본을 통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머리로 깨달았다고 해도 거기에 성령님이 임하셔야만 비로소 믿음을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이웃사랑은 성령님께서 불신 이웃들의 마음속에 일하시도록 도와드리는 것이다. 어떻게 교회의 장벽을 허물고 이웃들의 마음의 장벽을 깨뜨릴 수 있을까를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이웃사랑은 그 의미를 더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님을 도울 것인가?

 

이웃과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모든 일들은 실질적으로는 성령님을 도와드리는 일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우리도 성령님을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사실도 마찬가지 원리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 곧 하나님을 도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할 사람을 찾아서 사용하신다.

 

우리의 이웃사랑은 교회에 높이 둘려 있는 장벽을 허무는 일들이요, 우리의 영혼사랑은 불신 심령들 속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일들이다. 이 모두가 성령께서 불신이웃들의 심령에 임하시는 길을 돕는 행동이다. 이웃사랑을 하라고 했으니까 의무감을 가지고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이 분명할 때 더욱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관심과 사랑으로 배려와 헌신으로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출해 보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거기에 더해서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론 기도이다. 아무리 몸이 부서져라 하고 이웃을 섬긴다고 해도 성령님께서 임하지 않으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웃을 섬기고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는 성령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와 간구하기를 애써야 한다. 성령이 아니시면 우리의 기도는 그냥 허공을 맴돌 뿐이다.

 

(6: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우리가 가슴으로 품고 기도해야 하는 영혼사랑은 자기자신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간절하고 끈기 있게 기도함으로써만 성령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꿈으로써 그리스도의 목숨을 버리신 사랑을 우리 몸을 통해서 부분적으로라도 펼칠 수 있어야 하겠다.

 

소감문

 

보이는 이웃사랑이번 과정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하게 하므로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관광지를 다녀보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웃사랑의 개념이 얼마나 단순하고 관념적이고 문자적인 수준 낮은 이웃사랑인지를 깨닫게 한다.

 

지금까지 세상과 싸우고 세속적인 가치관과 싸우고 관습과 싸우고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을 영혼사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내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의 영혼도 내 자신의 영혼만큼 사랑해야 한다라는 말은 이해가 되었지만 내 삶과는 멀게 느껴졌다. 이것이 어떻게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뜻과 가장 적합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까지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또한 이웃과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모든 일들은 실질적으로는 성령님을 도와드리는 일이다.’라는 말에 너무 생소해서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지나치게 심오한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이웃사랑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었을까? 도저히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 성령님을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져 버렸고 이웃사랑과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보다는 오늘 이 말씀들이 이해가 되고 이웃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성령께 기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