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누가복음 5

패할 때와 흥할 때(눅 2:34)

나만의 누가복음 11 축복의 본질 축복은 패할 때도 있고 흥할 때도 있으며 비방의 표적이 될 때도 있는 것을 의미한다.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시므온의 예언처럼 많은 사람들을 패하게 하거나 흥하게 하거나 비방을 받게 하는 표적이 되는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이와 같은 일을 당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시므온의 축복의 내용이다. 다만 모든 일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 예수님이 없어서 망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망할 수도 있다. 예수님을 몰라도 흥할 수..

돋는 해처럼 (눅 1:78-79)

나만의 누가복음 8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비치는 햇빛 돋는 해가 떠올랐지만 그 빛을 구석구석 비추이게 하는 일은 신앙인들의 몫이다. (눅 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하여 태양이 위로부터 임하여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 어둠은 방향을 알 수 없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고 참된 믿음이 어떤 것인지조차 확신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금도 어둠의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오로지 태양처럼 복음이 위로 떠오르게 해야 한다. 복음을 실천함으로써만이 가능한 이야기이다. 세상..

죄사함으로 인한 구원 (눅 1:76-77)

나만의 누가복음 7 새로운 구원개념 죄 사함과 구원은 새로운 개념이지만, 이미 짐승의 피로 대속 받는 개념 속에 들어 있었다. (눅 1:76-77)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개념은 세례 요한 이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구원의 개념이 구약과는 다르게 구체화되고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오늘날 우리가 받은 것이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이것이 시작되었다. 신학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던 짐승의 피로 말미암는 죄 씻음의 개념이 모든 인류의 죄 사면을 통한 구원으로 발전되었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복음..

부정의 언어 (눅 1:64)

나만의 누가복음 6 보약의 언어와 독약의 언어 우리도 믿음으로 기도한 후에 말이 끊겼다가 응답된 후에 풀리면 좋겠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드니까. (눅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나이 많은 사가랴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말을 불신함으로써 아들을 낳을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신의 언어는 말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할 말이 없게 만들 수도 있다. 주님은 불신의 언어를 아주 싫어하신다. 부정적, 비판적, 불신앙적 언어를 버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언어는 보약이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언어는 평화가 될 수도 있고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누구라도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가난한 자를 위해 오신 주님(눅 1:51-53)

나만의 누가복음 5 교만과 겸손 예수님은 가난한 자, 낮은 자, 비천한 자를 위해 오셨다. 하지만 외적인 가난보다 심령의 가난을 위해 오셨다. (눅 1:51-53)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예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신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할 사람들이다.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자들은 갈수록 흩어지고 내려가서 결국 빈손이 된다. 그러나 비천한 자, 굶주리는 자는 높아지고 채워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눈길과 손길도 낮은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 굶주린 자에게로 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오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