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따라 복음서 속으로>를 읽고
박종오 목사
세상소식, 매스컴, SNS끊고 복음서 속으로 들어가 사복음서를 일곱 번 반복해서 읽어가면서 감동받으신 것을 후기로 기록하셨다. ➀ 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➁ 예수님과 노숙하기, 이 번에는 ➂ 예수님 따라 복음서 속으로. . . 독후감을 쓰는 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책을 대할 때마다 동일한 질문을 하게 된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셔야만 했을까?’
그런데 ‘예수님 따라 복음서 속으로’ 세 번째 책을 받아들고 이 전에 책들을 받을 때 가졌던 의문과 반항심이 줄어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반복 읽기의 효과가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십자가는 못 져도, 노숙은 할 수 없어도 복음서 반복 읽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반복의 유익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반복은 거룩한 습관을 갖게 하고 그 거룩한 습관은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영적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서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참 어려운 결단을 하신다. 먼저 세상 소식, 매스컴, SNS를 끊는다. 가끔 묵상하다 보면 단어 검색하기 위해서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다른 길로 빠져버린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새벽 기도할 때 시간 때문에 핸드폰을 앞에 두고 기도하다 보면 예의 없이 새벽부터 카톡을 보내시는 분들로 인해 기도를 방해받게 된다. 금식 기도를 하는 기간에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을 끊고 복음서 반복 읽기에 집중한다고 하시니 기대감보다 답답함이 먼저 밀려왔다.
4주 동안 매일 하루 세 시간씩 사복음서를 반복해서 읽고 후기를 기록하고 있다. 목사님이 성경 속으로 들어가신 것처럼 나도 책속으로 들어가 목사님의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두 번째 복음서 읽기에서 목사님의 ‘손해 보는 느낌’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매일 묵상을 하다 보면 어느 날은 말씀 깊이 들어가 성경 인물들과 함께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내게 주시는 교훈과 감동으로 큰 은혜를 받을 때도 있지만, 어느 날은 읽고 또 읽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을 때가 있다. 하루 일정은 바쁜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마음은 조급해 지면서 성경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바로 나에게 찾아오는 ‘손해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분명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런 방법을 쓴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이 종이 듣겠나이다!’ 기도하고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 순간에 성령께서 주시는 놀라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감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반복해서 읽다 보면 목사님이 발견한 것처럼 보석을 발견하게 된다.
반복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유익은 전체 숲을 보고 나무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귀납법적 연구, 연역법적 연구를 통해 분석, 해석, 적용하는 것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복음서 반복 읽기가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네 번째 복음서 읽기 가운데 세례 요한을 더 깊이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읽고 또 읽었었던가? 세례 요한은 ‘두 번째 만남’을 통해서도 만났지 않았던가? 그런데 네 번째 반복 읽기를 통해서 다시 만남으로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은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역할과 사명을 참으로 잘 감당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내 자신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길을 닦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반복 읽기의 유익이 아닐까?
복음서 반복해서 읽기의 또 하나의 유익은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해석을 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말씀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이 되기도 하고, 제자가 되기도 하고, 가롯 유다가 되기도 하고, 헤롯이 되어 보기도 하고, 바리새인이 되어 보기도 하고, 대제사장이 되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두 번째 만남’에서 베드로의 배신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많이 읽고 설교도 많이 했던 본문이지만 ‘두 번째 만남’이라는 주제와 과목을 통해서 베드로를 만났을 때는 내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단이 무너진 자리에 베드로가 아닌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석구석에 있는 보석을 깨내는 기쁨이 있지만 그 보석이 내 것이 되는 기쁨으로 발전하고 말씀이 글이 아니라 내 가슴에 새겨지고 내 삶이 되는 것을 경험할 때 다른 성경을 찾아 반복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성경은 깨뜨려지는 책입니다.’라는 말 앞에서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성경이 알고 싶어서 성경에 미친 적이 있었다. 지식이 쌓여갈 때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오직 성경 연구에 올인하면서 성령께서 나에게만 깨달음을 주시는 것 같았다. 성경속에 보석을 하나 발견하면 마치 온 세상을 다 소유한 것 같은 큰 기쁨을 얻기도 했었다. 지식이 교만을 낳게 되었고 교만은 실패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 비로써 하나님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아마도 반복 읽기에 가장 큰 유익은 ‘겸손해짐’이 아닐까? 안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반복 읽기를 할 수 있고 그 때 진짜 유익을 얻게 되지 않을까? 목사님을 통해 도전하지 못했던 부분을 간접적으로 도전하고 경험할 수 있어 감사하다. JMDC를 통해 내 자신이 변화되고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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