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1독을 마치면서
실마리를 찾기까지
아직 어수선합니다. 삶의 패턴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성경을 3시간씩 읽는 것 자체가 그리 어렵거나 큰 일은 아닙니다만, 저는 지금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일단 읽기로 한 책들을 펼칩니다. 세 권 중 한 권은 집에서 읽는 책이고, 두 권은 사무실에서 읽기로 한 책입니다.
한 시간여를 읽고 나서 이번에는 컴퓨터를 켭니다. 컴퓨터를 켜도 인터넷 연결이 안 되어 있으니까 다른 것은 볼 것이 없습니다. 문서를 열어, 벌써 두세 주 전에 마무리하지 못한 글을 완성하려고 애를 씁니다. 첫날에는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결국 둘째 날에 가서 한 편의 짧은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아직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까 또다시 책을 펼칩니다. 사실은 아침에 한 시간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첫 날에는 시간이 아주 많다는 생각에 오전에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서도 여유가 넘칩니다. 책을 좀 읽다가 이제 성경을 펼칩니다. 읽어나가는데 중간중간에 잠깐 생각해야 하거나 새로운 느낌을 주는 구절들을 만납니다. 잠깐씩이지만 볼펜으로 메모하면서 나갑니다. 그냥 쭉 읽기만 하면 금방이지만 잠시라도 생각하면서 읽으니까 더디게 느껴집니다. 결국 오후 시간에 정해진 부분까지 읽지 못하고 밤으로 미룹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 좀 쉬었다가 성경을 펼치는데 첫날인데도 좀 지칩니다. 겨우 하루였지만 쉬거나 즐길 수단들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루 종일 책과 글쓰기와 성경읽기로 쉬지 않고 달리니 지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왜 만드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적절한 쉼이 없이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또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게 살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계속되면 반드시 다른 사고가 터지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 뉴스를 보고 관심분야를 검색해보는 것도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인간의 쉽 중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복음서는 이제 1독을 마쳤습니다. 특별히 다르게 읽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냥 있는 그대로 읽으려고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두 번 갔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서 유대광야에서 시험받으시던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거니는 모습, 들판에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 모습,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던 모습,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 그물을 쳤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은 모습, 그리고 거기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 등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제가 배웠고 믿었고 생각하던 종교 안에서, 교회 안에서의 예수님뿐 아니라 종교 이전의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 세상을 어떻게 대하고 계시는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모습을 드러내셨는가 등, 원래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과 생각들을 읽고 싶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는 기독교보다 더 원시적인 복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보이는 기독교가 전부는 분명히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비난하고 조롱하고 공격까지 하는 그것이 본래 기독교는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 기독교의 가르침만 충분히 이해하고 제대로 지켜도 지금처럼 욕을 먹지는 않겠지만, 욕을 먹는 그 현상 이전에 뭔가 예수님의 복음을 오해하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중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찾고 싶기도 했습니다.
왜 똑같은 성경인데 그토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되는지, 왜 어떤 목사들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없이 행동해야만 하는지, 왜 어떤 목사는 일반인들보다 더 물질과 명예를 쫓아가게 되는지, 성도들은 왜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을 따라기보다 자기 유익만을 구하거나 이기적인 생각만 하게 되는지, 왜 모든 구제나 봉사 등의 신앙행위를 교회에 헌금 바치는 것으로 대체하게 되었는지, 그러면 과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원래의 말씀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런 내용들의 원인이나 과정이나 현실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런 시각으로 읽으려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정확한 성경적인 근거를 찾고 해법이나 대안을 얻어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현재 ‘사복음서 새로읽기’ 자체가 그런 대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성경 반복읽기를 시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식의 읽기를 통해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이면의 이야기들을 반복읽기를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깊이 있게 읽는다고 해도 대개 자기 현재 신앙의 그물로 걸러내기가 쉽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이든 아직 초보수준이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있는 그대로 읽을 때가 가장 은혜로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성경을 성경 속의 이야기로만 읽게 되면 그 말씀을 하나도 자신에게 적용할 줄 모르게 됩니다.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면 성경을 천 번 읽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번을 읽어도 자기 이야기로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로 읽으면 불편해집니다. 성경에는 칭찬보다는 책망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로 읽으면 속이 상합니다. 성경과 자신의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로 읽으면 화가 납니다.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분노가 치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신의 이야기로 읽으면 눈물이 납니다. 천하에 쓸모없는 나 같은 인간을 예수님이 직접 죄를 짊어지시고 고통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독고 하고 묵상도 하고 공부도 합니다. 그런 기본적인 성경읽기 또는 성경먹기 방식의 틈새를 반복읽기가 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읽기라서 의도한 대로 다른 때보다 더 깊은 은혜를 느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으면서 속에 파묻혀 있는 내용들이 하나하나 끄집어내어지면서 전체적인 거대한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하루 3시간의 성경읽기 그 자체도 여러 가지 세상 속의 잡다한 생각들로 인하여 걸림이 되고 있지만, 한 주 두 주 흘러가면서 세상에 궁금한 것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성경 말씀 속에 파묻혀서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나날들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더 깊이 있게 읽고 실제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를 쓸 때 분명힌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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