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웃 : 77세 독신 할머니
2017년 9월 11일 월요일 오전에 담당 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가보려고 하는데, 연락해 보시겠어요?”
“몇 시쯤 가능하세요?”
“글쎄요. 시간은 다 되는데 2시에서 3시 사이가 어떨까요?”
“그럼 제가 연락해서 알아볼게요.”
한 시간 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물리치료 받으러 매일 가시는데 다섯 시쯤 되어야 들어온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5시 반에 가뵐까요?”
“네, 그럼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이렇게 해서 5시 30분에 그 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분의 이름은 최영자(가명), 나이는 77세, 호적상으로는 결혼을 한 번도 안 했다고 했습니다. 평생 혼자서 사는데, 현재 SH매입임대주택에 거주하시며, 임대보증금 630만 원에 월세 52,500원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척추내농양 및 육아종으로 40일가량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 및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나라에서 긴급복지의료비 지원을 받아서 치료비를 해결하였습니다. 서울아산병원 퇴원 후 한 달가량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거의 매일 같이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당연히 치료비, 간병비가 큰 부담이 되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가운데 계신 분입니다.
사무실에서 나와서 근처 편의점에 들려 음료수를 한 박스 샀습니다. 그 집 골목 입구에서 주민 센터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이미 주소를 알고 있어 지나가다가 한 번 살펴본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에는 몇 호인지는 안 나와서 어느 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직원을 따라 들어가니 비교적 깔끔한 모습을 한 최영자 씨가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완섭 목사라고 합니다.”
직원의 소개를 따라 인사를 건넸습니다. 담당직원은 할머니께 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드렸습니다.
“근처 교회 목사님이신데, 교회에서 드리는 것은 아니고 목사님께서 개인적으로 동네에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으시다고 해서 저희에게 의뢰를 하셨어요. 저희는 모든 사정을 감안하여 소개를 해드리는 것뿐이고요, 교회에 나오시라는 말씀도 아니시고 그냥 어려운 분들을 도우시는 거예요.”
그러자 최영자 씨도 대답하였습니다.
“네 교회 괜찮아요. 제 친구들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 있는데요, 뭘.”
그러면서 최영자 씨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제가 원래 다른 사람들보다 좀 깔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좀 아프다 보니까 집안 꼴이 별로 안 좋네요. 병원에서도 간병인을 쓰시라고, 지원이 나오니까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번거로움이 별로 안 좋거든요. 간병인 써도 그냥 간단한 잔심부름 하는 정도인데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원래 깔끔하고 내 할 일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라 열심히 물리치료 받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놀라요. 웬만하면 건강이 더 악화되는데 저 혼자만 치료가 잘 되어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같이 있던 환자들도 놀래요. 저보고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어르신이지만 아주 깔끔하려고 애쓰시는 분 같았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건강해지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네, 그렇군요. 어르신 의지력이 대단하십니다.”
“얼마 전까지도 머리 숱이 많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머리가 많이 빠져서 모양이 흐트러졌네요.”
최영자 씨는 할머니이지만 외모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분이었습니다.
“몸이 너무 불편하신 것 같은데,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가요?”
“그냥 집안에서 살살 다니면서 밥은 해 먹고 반찬은 그저 가게 같은 데서 조금씩 구해다가 먹고 있어요.”
“지금은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드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는 봉투를 꺼내서 할머니께 내밀었습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되시면 좋겠어요. 50만 원이예요.”
“아이구, 제가 원래 남의 도움 안 받고 살던 사람인데 어쩌다가 형편이 이렇게 되어서 할 수 없이 도움을 받네요.”
“아니에요. 사람은 누구든지 도움을 줄 때도 있고 도움을 받을 때도 있는 거잖아요? 저도 지금은 이래도 또 언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네, 제가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보답을 하는 사람입니다. 꼭 찾아뵙고 감사보답을 하겠습니다.”
“아니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니 나는 꼭 그렇게 할 겁니다.”
“네, 한 번 오세요.”
사실 저는 이 최영자 씨의 옛날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습니다. 이분의 형편 속에 들어가서 그 마음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철저하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분에게 물질을 조금 드렸다고 해도 그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일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관계를 통하여 신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이 금방 그렇게 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급하여 잠깐 시도를 하였습니다.
“어르신, 고향은 어디세요?”
“네, 나는 대구 사람입니다.”
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런 개인적인 대화는 여기까지였습니다.
“몇 년 전에 약 2년 반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동네 어르신들께 저녁을 대접한 일이 있었거든요. 저희 집사람 허리가 아파서 할 수 없이 중단했습니다만, 그 때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오셨었는데, 혹시 그 때 오신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처음 뵙게 되는군요.”
그러자 최영자 씨는 자기 성격을 더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다른 데 도움 주는 데 한 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복지관 같은 데서 식사하라고 연락이 오고 주변에서 함께 가자고 하지만 저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는 것 싫어하고, 먹는 건 내가 직접 해 먹는 게 낫거든요.”
“그럼 평소에는 주로 어디를 많이 다니셨어요?”
“근처 친구들하고, 거 침대에 누워서 무료로 치료해 주고 하는 데 있잖아요? 그런 데를 자주 갔죠.”
“아, 치료기 서비스해 주는 데를 자주 가셨군요.”
“네, 아프기 전에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냈었죠. 어쩌다가 이렇게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요. 그래도 참 많이 좋아졌어요. 의사들도 깜짝 놀라요. 내가 정말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거든요.”
“맞아요. 긍정적인 생각과 건강에 대한 의지력이 아주 강하시네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최영자 씨에 대한 첫 번째 방문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제 사무실에 한 번 나오세요. 저도 가끔 들리겠습니다.”
“알았어요. 내가 약속하면 꼭 가는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최영자 씨는 제가 들고 간 음료수를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아이구, 나는 음료수도 잘 안 먹는 사람이에요. 이거 동사무소에 가서 나누어 먹어요.”
“아니에요. 이런 거 가져가면 요즘 큰 일 나요. 두었다가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주세요.”
복지과 담당직원이 말리면서 음료수 박스는 그대로 두고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영자 씨는 바깥문까지 나와서 배웅을 했습니다. 우리는 자존심 강하고 깔끔하신 77세 할머니 최영자 씨와 헤어져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럼 약속한 대로 내일 오후 3시에 오세요.”
“아, 그 집으로 직접 가면 되는 거죠?”
“네. 직접 오시면 되요.”
이렇게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한동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상상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사정을 듣고 함께 공감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그분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직원과 동행했기에 시도를 해 볼 수도 없었습니다. 저의 상상은 여지없이 깨져버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큰 금액은 아니지만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니까 무척 감사해하고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그런 생각은 너무 큰 기대를 안고 찾아간 저에게는 절벽처럼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이번에 처음 느껴본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했던 15년 전에 주민 센터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자녀들과 함께 사는 두 가정을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조손가정이나 홀로 사는 아이 엄마 등 힘들어하는 분들을 꾸준히 돕고 싶었습니다. 한 번에 얼마를 돕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지속적으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민 센터에서 추천해주는 가정을 처음에는 직원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그 때 기억으로는 6학년과 4학년 손주들과 함께 사는 할머니 가정이었습니다. 얼마를 드리면서 혹시 아이들에게 뭔가 해 줄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아이들 롯데월드 한번 같아 가면 어떨까요?”
하지만 아이들과 할머니의 반응은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거기도 뭐 지난 여름에 어디서 데리고 간다고 해서 보냈어요.”
그러면서 용인 에버랜드도 가보았고, 또 어디에도 다 가보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이분들이 전혀 우리를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차츰 느낀 바이지만 이분들은 그냥 도움만 받기를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 찾아와서는 이것저것 캐묻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많이 도와주었고, 그런 도움들이 한시적으로 지속되다가 자기들 사정에 따라 중단해 버리는 그런 모양이었기 때문에 이분들은 전혀 마음을 열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도움을 드리는 입장에서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만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은 가정일수록 그런 것은 원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우선은 우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리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렇게 관계를 가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서 몇 달 지원하다가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출석하게 하려는 마음도 강했었습니다. 하지만 주일학교 담당사역자가 두세 달가량 열심을 다해서 방문하고 권면했지만 아이들은 도망가기 바빴기 때문에 결국 손을 놓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 찾아간다고 마음을 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것이 직접적인 전도를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저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속으로는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실망스러움이 저의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적인 상황은 파악하고 있었고 이런 일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기대가 너무 컸었고, 목적하는 곳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주님께서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정한 대로 실천하되 그때 그때 주시는 은혜를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모습을 저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 일에 대해 주님께서도 반드시 기뻐하실 줄을 믿고 분명히 너무나도 큰 은혜를 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주시고 선한 목적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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