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혁칼럼

두 가지 관점

김완섭 목사 2021. 7. 25. 18:16

두 가지 관점

 

사진촬영을 할 때 피사체를 강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망원렌즈이고 다른 하나는 광각렌즈입니다.

망원렌즈는 화각이 좁아서 피사체 이외의 사물들을 삭제하거나

망원렌즈의 특성으로 주변이 흐려지게 함으로써 피사체만 부각되게 만듭니다.

반면에 광각렌즈는 화각이 넓어서 피사체 주변의 수많은 사물들을 함께 촬영합니다.

그래서 광각렌즈로 촬영할 때에는 피사체를 렌즈 가까이 하여 찍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광각렌즈는 근거리에 있을수록 더욱 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망원렌즈는 피사체만 보이게 만듦으로써 강조하는 것이고

광각렌즈는 모든 사물과 함께 보이되 피사체만 두드러지게 크게 보이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신앙생활에 비추어본다면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과 가까이 하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망원렌즈식의 접근으로는 세상과 단절하고 예수님과 일대일로만 구원을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광각렌즈식 접근으로는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만 두드러지게 가까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망원렌즈식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수도원을 생각할 수 있고

광각렌즈식은 기독교 사회운동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런 기독교 전체를 대입하여 보는 접근보다는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투영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망원렌즈식 접근은 개인의 영적 생활과 교회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광각렌즈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세상 속에서의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이 더 나은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양쪽의 접근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전체 삶에 녹아들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든 초점을 그리스도 예수님께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서는 망원렌즈식의 예배를 드리는데 세상에 나가서도 망원렌즈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립되어 스스로도 챙기지 못하게 될 것이고,

세상에서 광각렌즈식의 잣대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삶의 방식으로 사는데

만약에 교회에 와서도 여전히 광각렌즈만을 들이댄다면 개인의 영성이나 변화된 자아를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모든 경우에 망원렌즈식으로만 살아온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을 우리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을 바꾼 것은 무력이나 숫자나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을 바꾸는 힘은 분명히 복음에 있지만 이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능력은 삶의 방식에 있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삶의 방식을 배운 적도 별로 없고 모델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삶의 방식을 제대로 배워야 부정과 부패와 탐욕과 거짓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사실은 망원렌즈식이나 광각렌즈식이 아니라 그냥 표준렌즈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삶의 방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표준렌즈식은 어디에 가서나 예수님이 그냥 사람들 속에 묻혀버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강조하거나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따라갈 뿐입니다.

표준렌즈는 보통 우리가 보는 눈과 닮은 렌즈입니다.

다 같이 공평하게 보는 눈이지만, 그냥 세상 사람들의 눈입니다.

 

삶의 방식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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