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이 없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교회 자체의 문제이든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이든 또는 목회자에 대해서이든 그리스도인 개인으로이든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고 어떤 개혁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문제의식이 없는 곳에 어떻게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성장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은 어떻습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까?
당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까?
물론 여기에서 문제라는 것은 우리들 앞에 닥친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문제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기도하면서 해결해나가면 됩니다.
그런 문제들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문제들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문제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문제의식이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소들, 하나님을 외면하고 돌아서 있는 우리의 모습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성취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감당한다고 생각하는 착각들,
사명이라고 너무 분주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장벽들,
스스로는 말씀에 순종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마음은 쏙 빠져있는 오해들,
아무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여기에서 해결책은 몰라도 적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걱정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실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까?
복음이 왜 이렇게 변질되어 버렸을까?
정치가 왜 교회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게 되었을까?
왜 아직도 큰 교회, 큰 부흥을 외칠까?
왜 교단에서 교회의 숫자를 내세우려고 할까?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관심조차도 없는 성도가 부지기수인데 어떻게 그들을 깨울 수 있을까?
번영주의, 성공신학, 기복주의, 은사주의와 같이 복음에 거슬리는 사조들은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복음은 전혀 회복되지 못하고 교회는 사라질 것이며
기독교는 세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온 세상 걱정을 혼자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게 하며
말씀이 가르치는 진정한 방향으로 회복해 나아가야 하겠다는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해서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누구도 이 문제들을 당장 해결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은혜 주시는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씩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면 희망이 없습니다.
물론 세상은 종말로 점점 치닫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어떤 경우이든 그리스도인다움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문제의식을 느끼고 공감하고 공유하며 함께 해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외침이 생각납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 11:17)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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