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혁칼럼

예수님은 왜 오셨을까요?

김완섭 목사 2021. 7. 28. 13:45

예수님은 왜 오셨을까요?

 

예수님은 오늘을 성도들에게 복을 주러 오셨을까요?

그렇다면 열두 제자들을 부르지 마셨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복 주러 오셨다면 사도 바울을 부르지 마셨어야죠.

제자들을 부르셨어도 제자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게 만들게만 하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의 모든 제자들을 순교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죄 사함만을 위해서 오셨다면 십자가에서 곧바로 돌아가시거나 다른 사형 방법으로 돌아가셨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죄 사함만을 위해서라면 예수님의 죽음만이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죄 사함만을 위해서라면 십자가형이 아니라 교수형이든 화형이든

그 어떤 종류의 죽음이든 아무 관계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꼭 십자가에서 오래시간 고통을 당하시면서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단순히 죄 사함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왜 여섯 시간 동안이나 매달려서 죽어 가셔야만 했을까요?

만약에 치유만을 위해서 오셨다면 인간의 모든 종류의 고통을 여섯 시간 동안 감당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여섯 시간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난을 짊어지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수치와 치욕, 모욕, 창에 찔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매달림의 고통,

그리고 죽을 것 같은 목마름의 고통들을 전부 감당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병자를 치유하기 위해서만 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만을 위해서 오셨다면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사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 번 구원 받은 것으로 영원한 천국으로 직행하게 된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삶을 보여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단지 죄로부터의 구원과 같은 단회적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이면 점진적으로 이루어가야만 할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든 세상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구약에서의 물질적 축복이 그대로 신약에서도 적용되어야 했다면 예수님은 무엇 하러 오셨겠습니까?

구약에서의 축복이 그대로 연결되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오히려 그 물질적 축복을 훼방하러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적, 물질적 복이 아니라 진짜 복을 주러 오시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물질적, 육체적 복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면 예수님은 왜 믿습니까?

그런 목적에서라면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관계없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라 살라고 3년 동안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하라고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예수님을 따라 살 때에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기 위해

어머니와 가족 대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성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로 만들라고 말씀하시기 위해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이웃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심을 친히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신앙생활 자체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과 이웃을 보고 예수님의 발로 이웃을 찾아가서

예수님의 손으로 이웃을 돌보고 예수님의 입술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몸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라고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 이웃을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 때에야 복음은 이 세상에서 ‘보이는 복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력 있는 복음’으로 온 세상에 살아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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