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박종오 목사님과 윤여숙 사모님이 JMDC훈련 이웃과의 관계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16주 동안 펼쳐질 과정이 기대가 됩니다.
「보이는 복음, 이웃사랑」
제1장 이웃사랑의 지향점
요약 및 정리 : 박종오 목사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래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납득이 되지만 현실 속에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두 가지 핵심계명
예수님은 분명하게 가장 큰 두 가지 계명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정의하고 계신다.(막12:28-31)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동일선상에 놓으시고 동일한 무게를 부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기독교에서 하나님사랑만 강조되고 있고 이웃사랑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원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것이 이웃사랑의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이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이웃사랑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그 사랑이 이웃사랑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며, 그런 마음으로나 이외의 타인들을 대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이웃사랑의 출발점이라는 말이다.
이웃사랑의 개념은 모세의 율법에 최초로 등장한다.
(출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십계명의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부터 10계명까지 전부 이웃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웃의 범위를 확정해야 이웃사랑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지 않겠는가? 이웃이라는 말은 좁은 의미에서는 가족이나 친척 이외의 옆집이나 동네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지역, 혈연이나 학연 등의 특성을 통틀어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전부 이웃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넓게는 부모나 자식도 전부 이 이웃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구약의 이웃사랑
구약의 말씀에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단 두 군데밖에 나오지 않는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34)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민족적으로나 혈통적으로 가족이나 친족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이웃의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다. 민족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말고 함께 사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구약의 관점에서 예수님은 이 이웃에 대한 개념을 폭넓게 정의하셨는데 그것은 이웃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고 하셨다. 물론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말씀하셨지만, 이웃사랑의 전체적인 큰 틀에서 이웃의 개념을 정의해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막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곡식을 알뜰하게 거두지 말고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억압하거나 불의로 재판하는 일들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명령이 나온다. 그리고 몇 가지 사항을 더 말씀하시고 나서 거류민을 차별하지 말고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시는 수준을 뛰어넘어 아예 사람들이 되셨다. 전혀 죄가 없으신 창조주 예수님께서 절대로 씻을 수 없는 죄인들인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다. 이웃사랑의 원본이 여기에 있다.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할 때의 그 이웃사랑은 바로 예수님의 동일시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다.
구약의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의 보존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져 있었다. 이스라엘 사회가 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시대였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민족으로 키우신 백성이기 때문에 민족의 특성이 자리 잡아야 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거기까지의 한계 안에서 이웃사랑의 개념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것도 율법으로 말씀하셨다.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범위 안에서 주어지는 사회법으로서의 한계만 가지고 있었다.
이웃사랑의 출발
율법은 하나님의 뜻의 최대치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차선책으로서만 제시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 차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실망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악상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지킬 수 없는 불가능의 법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면 지킬 수 있는 법으로 주신 것이 율법이다. 그리고 그것조차도 지킬 수 없을 때 주신 법이 바로 제사법이었던 것이다.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으로 주신 계명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공통적인 속죄법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속성과 한계를 잘 아시고 적어도 겉으로나마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율법을 최상위의 법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말씀의 본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출발점은 어디일까?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그 뼈로 하와를 만드셨다. 아담과 하와는 한 몸이다. 특별히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신 까닭이 분명히 따로 있다. 하와는 아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일부, 곧 없으면 불완전해지는 그런 존재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한 몸으로 완전해지도록 만드셨다. 인간은 홀로는 완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하와를 데리고 오셨을 때 이렇게 외치지 않았던가!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로 확대하여 해석해야 한다. 다만 한 몸이라는 개념의 출발점을 아담과 하와가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뱀은 교묘하게 아담과 하와를 떼어놓는 데 성공하게 되는데,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으로 다시 되돌려놓으려는 마귀의 궤계인 것이다. 마귀의 모든 시도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틈이 생기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계략은 거의 성공적이었다.
뱀에 간교함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그와 함께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관계마저 망가지게 되었다.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아담과 하와의 관계마저도 금이 가게 되었던 것이다. 마귀는 모든 곳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주인공 노릇을 지금까지도 해 오고 있다. 이렇게 죄가 들어옴으로써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불순종의 죄를 서로 떠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하고 외쳤던 아담의 본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 본질은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단 한 번의 치명적인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결국 하나가 아니라 따로따로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완전했던 하나로서의 인간이 분리되어, 이제는 그 완전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는 둘로 나뉘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웃사랑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하나를 지향하는 사랑, 곧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으로 발전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은 인간의 숙명이다. 완전한 하나로 나아가는 일은 인간 스스로 망가뜨린 하나로서의 인간을 회복해야만 하는 숙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지향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으로 말미암아 실현가능한 숙제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이다.
소감문
(마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말했지만, 지금까지 ‘이웃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깊고 넓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웃의 사랑이란 그저 주변에 어렵고 힘든 자들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도 깨지게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이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이웃사랑의 원리’라는 말에 내 자신이 얼마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웃사랑을 강조해 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좁은 의미에서 가족이나 친척 이외의 옆집이나 동네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지역, 혈연이나 학연 등의 특성을 통틀어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전부 이웃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는 말에 내가 얼마나 이웃사랑의 범위를 좁게 알고 있었던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번 과에서 가장 신선한 충격은 이웃사랑의 출발점을 찾기 위해서 아담과 하와까지 찾아 올라간 것이었다. ‘이웃사랑’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하신 말씀의 의미와 마귀가 왜 분열의 계략을 사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왜 하나가 되라고 하셨는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번 훈련을 통해 이웃사랑이 왜 보이는 복음인지를 분명히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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