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마음 제자반

JMDC훈련 이웃사랑편 3 : 그리스도와 이웃사랑

김완섭 목사 2025. 3. 12. 21:34

「보이는 복음, 이웃사랑」 제3장 그리스도와 이웃사랑

 

정리 : 박종오 목사

 



하나님과 여자와 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언제나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 사람과 세상 사이에도 하나님이 계신다. 사람과 뱀 사이에도 하나님이 계신다. 그리고 하와와 뱀 사이에도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는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제3자로써 하와가 존재하게 된다. 하나님과 여자 사이에 뱀이 몰래 끼어든다. 하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하와와 아담과 하나님의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분별하게 되자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들어왔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와 사이에 벽을 만들고 말았다.
하나님의 관심의 초점은 여자에게로 옮겨간다. 하나님은 아담이 아니라 여자에게 뱀과의 관계를 추궁한다. 여자는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책임을 뱀에게로 돌렸다. (창3:13) 사실 인간의 죄 문제는 아담과 하나님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여자와 하나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의 모든 책임을 지워주신다. 아담은 인간의 대표자였기 때문이다. 아담 한 사람에게만 그 죄의 책임을 물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계속해서 아담을 그 책임자로 언급하고 있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하나님은 여자와 뱀의 관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그 책임을 물으신다. 하나님은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뱀과 원수가 될 것을 말씀하신다. (창3:15上) 모든 인간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뱀인데, 그 뱀을 물리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창3:15下) 원래 하나였던 아담과 하와의 사이를 뱀이 갈라놓았지만, 그 책임을 하나님은 분명하게 여자에게 내리신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뱀의 존재를 제거하셔야만 했다. 그것도 뱀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셔야만 다시 인간과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천국이란 뱀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갈라지고 흩어지고 나뉘었던 하나님과의 인간의 관계를 뱀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되돌리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여전히 뱀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하나 되는 길은 뱀을 제거하는 길뿐이다.
 
오늘날 뱀은 단지 영적 존재로서의 뱀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물질, 탐욕, 정욕, 이기심, 욕구들로 대변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런 뱀이 끼어들어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은 결코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면 그 전제조건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훼방하고 있는 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뱀이 사라지면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다.
 
천국이란 어떤 곳인가?
 
기독교인이란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고자 발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과 달리 저 천국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저 천국에는 사탄이 존재할 수 없다.
 
뱀이 없는 세상이 바로 천국이다. 지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뱀의 지배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 순간은 성령 충만할 때이다. 우리가 이웃을 진정으로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없지만 단 한 가지, 성령 충만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결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없다. 성령 충만하면 뱀이 결코 간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국에서는 일부러 성령 충만하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성령님이 개입하지 않으셔도 뱀의 유혹을 받지도 않고 인간의 죄와 악의 지배를 결코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오로지 사랑만이 존재한다. 원래 우리는 하나였다. 지금 인간세상의 모습이 당연한 것이 결코 아니다.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래 하나였지만 뱀의 유혹에 빠져 갈가리 찢겨졌을 뿐이다. 낙원을 잃어버린 결과가 지금 현재라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모두가 지배자가 되면서 모두가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천국백성들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천국백성에게는 이기심이 없다. 시기나 질투나 명예욕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으니까 따로 이기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기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뱀을 제거하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천국은 바로 그런 곳이다.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하나님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제공하셨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죄를 지었을 때, 곧 뱀의 유혹에 빠져 있을 때마다 그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게 만드는 제사법을 주셨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근원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단회적 혹은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어도 그것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국한되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먼 미래의 인간 구원계획을 여자가 죄를 지은 직후에 알려주셨다. 여자의 후손이란 물론 그리스도 예수님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미 여자에게 너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다. 남자의 다스림을 받으라는 말씀은 남자의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말씀이다. 다스림은 결정할 것을 정하고 그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여자(마리아)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혹은 아직 다스림의 관계에 들어가기 직전에 스스로(성령님에 의해) 잉태하였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라고 못 박으신 이유는 비록 여자가 먼저 죄를 지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여자 스스로 결정하여 태어난 후손에게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 죄가 없는 존재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만든 여자를 통하여 죄가 나갈 수 있게 만들어주신 것이다.
 
예수님 역시 인간이어야 하지만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은 여자에게서 태어나야 죄가 없어지고 모든 인간의 죄를 감당하실 수 있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었던 인간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뱀을 제거하신 것이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인간은 여자 때문에 죄의 세상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 여자 때문에 의의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여자 스스로 출산하는 자손을 그리스도로 삼으신 것이다.
 
(고전 15:45~47)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여자로 하여금,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고 여자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사이에 뱀을 끌어들인 여자로 하여금 스스로 다시 뱀을 쫓아내도록 결정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 사이에서 단 한 번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은 한 여자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허락하셨다.
 
남자의 다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통해 오신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모든 인간의 대표가 되시고 그 자격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의 죄를 단 한 번에 대속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이었다. 곧 뱀이 존재를 제거해 버리신 것이었다.
 
우리를 대신 하신 그리스도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성령으로 충만할 때 순교의 희생까지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선 ‘자기’라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로서 함께 가야 할 가족들이 있고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가족도 자녀도 전부 이웃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 나와 가족을 제외한 타인을 이웃이라고 본다면 내 가족과 똑같이 다른 사람의 가족을 챙겨야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원천적으로 죄가 없는 분이었지만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한 마디로 사람을 대신하시는 것이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셨다.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을 받으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조롱을 당하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참된 이웃사랑은 바로 대신하는 사랑이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말은 이웃 대신 우리가 당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대신사랑’에 의한다면 이웃사랑도 그 이웃을 대신하여 무엇인가를 할 때 그 의미가 분명해지고 그럴 때 진실한 이웃사랑의 실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1차적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지만 2차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신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오신 것이었다.
 
연약한 죄인들에 불과했던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단지 구원받아 천국에 가라는 말씀만은 아니었다. 바울은 그렇게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것은 그렇게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고후 5:14~1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벌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만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구약 제사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실 사역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제사 종류 제사법 성구
번제 완전한 허신 상징으로 그리스도의 목숨까지 완전히 희생하셨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전적으로 사랑하며 그것은 하늘에 향기가 되어 올라간다.
레 1:17
소제 소제를 드릴 때 반드시 소금을 쳐서 화제를 드려야 한다.
소금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세상에 맛을 주고 부패를 방지하는 능력이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면 그 사랑이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다.


속죄제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로 충만한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드려지는 제사, 대신 사랑의 가장 근원적인 목적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이신 것처럼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이다.
레 4:36
속건제 성물에 대한 죄나 사람 사이의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지는 제사.
그리스도는 속죄제 제물이 되심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원죄를 담당하셨고, 속건제 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사람에게 지은 죄들을 담당하신 것.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한 것이다.
레 6:6-7
화목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발생하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하는 제사. 오직 화목제물만 제사장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이웃사랑이 바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만드는 유일한 길
레 7:34

 
우리 죄를 대신하시고 우리의 삶을 대신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이렇게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뱀을 제거하는 길이 유일하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써 뱀을 제거할 수 있다.
 
사람의 다스림을 받아서는 결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다스림을 받으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런 길을 여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따라오라고 하신다.
 
소감문 :
 
‘이웃 사랑’의 관점으로 보니 복음이 점점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다. ‘천국이란 어떤 곳인가? 뱀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갈라지고 흩어지고 나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뱀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되돌리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목회자도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한다. 공동체 안에서 늘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관계의 문제인데. 사탄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벽을 세운다. 갈라지게 하고 흩어지고 나뉘게 하므로 공동체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 끝없는 영적 전쟁을 하게 된다. 목회자로서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뱀이 존재하지 않는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목적은 어떤 은사가 강력하게 나타나길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욕심, 탐욕, 이기심이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이런 악한 마음을 막아 주신다면 그곳 역시 천국이 될 것이다.
 
이번 과를 통해서 새롭게 깨달은 점은?
➀ 하나님께서 여자가 먼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여자 스스로 결정하여 태어난 후손에게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
➁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실 때 인간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 죄가 없는 존재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만든 여자를 통하여 죄가 나갈 수 있게 하나님께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➂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을 받으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조롱을 당하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이웃사랑은 바로 대신하는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1차적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지만 2차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신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오신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만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이웃사랑에 있어 내 시선과 관계의 초점을 사람으로부터 뱀과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께 돌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뱀을 제거하려고 하기보다 사람을 미워하고 제거하려고 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신 사랑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들이 하나씩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진정한 이웃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시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