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2 : 남의 집 처마 밑에 누워

김완섭 목사 2017. 7. 6. 13:59



노숙체험 2 : 남의 집 처마 밑에 누워


서울역 쪽으로는 도저히 잠잘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역 대합실로 들어가서 반대편으로 나가보았습니다. 횡단보도 건너 빨간 담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국립극단 백성희.김동원 극장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궁금하여 그리로 갔다가 골목 뒤에 있는 작은 공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청파어린이공원이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져 겨우겨우 벤치로 다가가서 앉았습니다. 거기 눕고 싶었지만 가운데에 가로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누울 수는 없었습니다.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서울역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옛 고가를 개조해 만든 서울로로 올라가보았습니다. 퇴계로 쪽으로는 가지 않고 반대편 만리동, 중림동 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근처 골목을 헤집고 다녀보았습니다. 혹시 밤에 잠잘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해서였죠. 그런데 새로 지은 듯한 작은 맨션이 있고 그 옆에 주차공간이 있는데 그 뒤쪽이 비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들어가 보니 사람 두 시람 정도 누울 수 있을 것 같은 빈 공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기쁨을 느끼면서 이따 다른 곳을 찾지 못하면 여기로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골목을 나왔습니다.

 

급식차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광장에서는 대형 트레일러 같은 차량에 전광판 설치하고 찬양단 서너 명이 노래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 8시면 서울역 광장에서 펼쳐지는 통일광장기도회였습니다. 특별히 다른 할 일을 찾지도 못한 상태라서 여기에 참석했습니다. 상당히 구체적인 기도회였고, 정상적인(?) 집회였습니다. 이 기도회에서도 헌금 시간이 있었지만 제게는 단 한 푼도 없었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헌금봉사자를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다시 청파공원을 찾았습니다. 요즘 낮에는 좀 쉬어야 하는 체력이었지만 쉴 곳도 없어 벤치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10시쯤 되어서 아까 봐두었던 곳으로 갔습니다. 주민들 다 잠 든 후 좀 늦게 12시쯤에 가려고 했었거든요. 건물 옆에는 주차된 차량도 없었고 뒤쪽은 여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잘 수가 없었습니다. 박스를 구하러 나갔습니다. 요즘은 종이박스를 눈에 보이는 대로 다 걷어가기 때문에 잠자리에 깔 만한 크기의 박스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큰 거리에 나가보았더니 큰 박스가 눈에 띄기를 했지만 다 주인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아까 그곳에서 반대편 골목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연립의 1층이 주차장인 곳이 있었는데 거기 한 어르신이 박스를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머뭇거리며 다가갔습니다.

저기 혹시 이 박스 한 장만 좀 주실 수 없을까요?”

어디에 쓴다고는 말 못하고 그냥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가가서 한 장을 고르고 할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다른 한 장을 더 골랐습니다. 깔기만 해서는 안 되고 덮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이것도 주시면 안 될까요?”

할아버지는 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감사하다고 공손히 말씀드리고 박스 두 장을 가지고 아까 그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노숙하기의 첫 날 밤을 그나마 잘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장소를 찾은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았고, 박스를 두 장이나 선뜻 내어주시는 할아버지도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박스 한 장을 깔고 긴팔 옷을 입고 점퍼를 걸쳐 입고 누워서 다른 박스를 위에 덮었지만 약한 바람이 살살 부는데도 그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스쳐지나가니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크고 작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두런두런 하는 소리가 너무 자주 들려왔고, 트럭이나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개 짖는 소리들이 엄청나게 크게 들려왔습니다. 집 주인이나 입주자가 나타나 쫓아낼 것 같았습니다. 밤새도록 10분마다 깬 것 같았습니다. 열댓 번은 깼는데, 그 옆집에서 공사를 하는지 12시가 다 된 것 같았는데 서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고, 새벽 5시도 안 되어서 다시 물건들을 버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잠은커녕 제대로 졸기도 힘든 곳이었습니다.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아있었습니다. 일어나서 보니까 막혀 있다고 생각했던 반대편이 좁기는 하지만 사람이 수시로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주차장 쪽에 사람들이 오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혼자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여우가 굴을 팠는데 뒤편이 뚫려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곳이었지만 또 다른 곳을 찾지 못하고 결국 여기에서 4일간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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