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1 : 급식차가 안 보인다.
6월 12일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습니다. 작은 배낭에 긴팔 옷, 점퍼, 작은 담요 등을 집어넣고 주머니에는 5,000원 집어넣고 신분증으로 운전면허증을 배낭 속에 넣고 출발하였습니다. 11시 30분 좀 못되어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2번 출구가 서울역광장이라고 되어 있어서 그리로 나왔습니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군데군데 노숙자들로 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몇몇씩 모여 있었고 이사용 박스나 택배박스들을 중간중간에 모아 놓은 곳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노숙자들의 눈빛은 세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세상을 거부하는 눈빛들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들 가운데 들어가려는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기에 저도 애써 외면했습니다.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역시 무료급식차였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나는 닷새 동안 굶어야만 하니까. 하지만 어디에서도 무료급식을 하는 곳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까 대형 텐트를 치고 플라스틱 의자들을 늘어놓기에 무료 급식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예수나라선교회라는 곳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정기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12시 30분까지 기다려도 무료급식차는 오지 않았습니다. 첫날 점심은 못 먹을 것 같아 일단 예배부터 드리려고 예배장소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찬양을 한참 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또 찬양을 한참 하고 통성기도 하고 4-5차례 하더니 잠깐 말씀을 전하고 헌금 시간이라는 광고가 나왔습니다. 머릿속에 계산기가 작동되었습니다.
“5,000원에서 올 때 지하철비 1,650원 쓰고, 나중에 집에 갈 때 보증금환급금 500까지 해서 2,150원이 필요하다. 그럼 남는 돈은 1,200원인데 오늘 점심을 못 먹었으니까 김밥이라도 한 줄 사먹어야 되는데.”
그래도 거기 모인 사람들 중 상당수가 헌금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없이 500원을 헌금했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 동전 500원 헌금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폐하니 3시 20분이 되었습니다. 무려 3시간 가까이 예배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예배 중에 찬양을 부르면서도 머릿속에는 저녁에는 급식차가 오려나 하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혹시 예배 후에 급식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급식은 아니고 건빵 한 봉지가 나왔습니다. 건빵을 먹으려니 너무 목이 멜 것 같아 생수를 한 병 700원 주고 샀습니다. 이제 남는 돈은 0원입니다. 이제부터 돈 없이 닷새를 살아야 합니다. 혹시 급식차가 안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밤에 잘 곳에 대한 염려가 가득해졌습니다. 저녁을 못 먹으면 하루 종일 건빵 한 봉지만 먹는 건데... 어차피 최악의 경우에는 굶을 생각까지도 했으니까 하며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시도하라는 것이라 오래, 많이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노숙하는 사람에게 잠자리는 너무도 중요하기에 이리저리 헤매면서 잠 잘만한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옛 서울역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은 다 사라졌고, 대신 길게 절반 정도를 경량칸막이로 막아 놓았습니다. 가운데 쯤 문을 지키는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긴 뭐 하는 데예요?”
“여기 노숙자들 쉬기도 하고 잠도 자는 곳이죠.”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덧붙여 대답했습니다.
“노숙자로 등록된 사람들이 하루 잠자고 싶으면 여기 오면 돼요.”
약간의 절망이었습니다.
“아, 등록된 사람만이요?”
“네.”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지하도 출구 계단 아래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몇몇 눈에 띄었습니다. 너무 지저분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다 지나다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도저히 잠잘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급식차량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근처에 노숙자 다시서기 센터 같은 곳이 임시가건물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로 등록된 노숙자들만 드나드는 것 같아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이대로 굶고 서울역 입구 계단 아래나 인도의 보도 블럭 위에서 잠을 자야 하나? 한편으로는 괜히 나왔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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