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4 : 커피 한 잔의 눈물

김완섭 목사 2017. 7. 19. 13:42

노숙체험 4 : 커피 한 잔의 눈물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믹스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욕구였습니다. ㅎㅎ 300원이면 한 잔 뽑아먹을 수 있지만 저에게는 100원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뽑아먹고 있었지만 저는 그걸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원래 아침을 잘 안 먹지만, 출발한 날에도 아침을 먹지 않고 떠났었습니다. 그러니까 첫날과 둘째 날 점심때까지 커피를 계속 마시고 싶었습니다.

 

순간 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우습죠? 겨우 커피 한 잔에 눈물을 보이다니요. 물론 커피 마시고 싶은 생각만으로 눈물을 보인 것은 아닙니다. 300원도 없어 커피 한 잔도 마실 수 없는 형편에 갑자기 서러움이 생긴 것이니까요.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절대빈곤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지금도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도 있지만,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당장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치료를 위한 역할극을 할 때 그것이 연극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역할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이요.

 

사실 어제부터 급식차를 기다리거나 잠잘 곳을 찾아다니면서도 계속 커피자판기를 보면서 다녔습니다. 혹시 커피 뽑아먹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인상 봐가면서 한 잔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해서요. 아니면 경정비나 세차하는 곳에서 무료 커피자판기를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부탁해서 한 잔 얻어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청파동 쪽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어떤 젊은 남자가 보온병에 커피를 가져와서 동료들과 나누어먹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 눈길은 자연스럽게 그 보온병으로 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마 조금만 줄 수 없느냐고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커피가 덜 고팠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만 보면 그 종이컵에 시선이 고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커피를 생각하면서 저는 사람들의 눈길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곳에 시선이 가게 마련입니다. 저도 계속해서 커피 자판기나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는 종이컵이나 아니면 커피 전문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자꾸 가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를 뽑아 먹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저절로 쳐다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커피를 뽑아먹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조금은 유심히 바라본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거나 거부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사람들의 눈길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단 커피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사람이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면 한번 물어보려고 합니다.

이거 한 잔 드릴까요?”

 

물론 그것이 아닌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그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놀라운 의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와 정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나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사람이거나 성격이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성향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까요?

 

점심 급식차도 발견할 수 없었고, 커피 한 잔도 마실 수가 없어서 교회를 찾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틀 동안 지나다니면서 교회를 여러 곳 보기는 했지만 다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큰 교회를 찾았는데 남대문교회가 눈에 띄었습니다. 몹시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길을 꼬불꼬불 찾아 올라가는데 숨이 턱밑까지 찼습니다. 점심 때여서 여러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벤치에 나와 앉아있었습니다. 예배실에 찾아들어가 제법 한참 기도했습니다. 한두 성도들이 기도하고 나갔습니다. 기도하는데 자꾸 이마가 의자 등받이에 닿고 잠이 깜빡깜빡 드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도 잘 안 나오고 하여 현관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나오면서도 커피 자판기가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습니다. 국토순례전도 할 때 제법 큰 교회에 무료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ㅎㅎ 하지만 자판기조차 찾을 수 없었는데, 교회 사무실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부목사님인지 집사님인지 60세 쯤 되어 보이는 분이 계셨습니다. 지나치다가 다시 되돌아가 문 앞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그분이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 죄송하지만 커피 한 잔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곧 커피믹스 한 봉지와 종이컵을 내어주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냉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한 잔 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던지요. 나오면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면서도 아까 커피믹스 몇 봉지 좀 달라고 할 걸.” 하는 생각에 또 다른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ㅎㅎ



서울역 지하도를 배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