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3 : 새벽 무료급식소
온몸에 힘이 빠진 상태에서 밤새 거의 잠을 못자 체력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서울역 쪽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리동 광장 쪽으로 나오면서 모퉁이에 보니까 무료급식소라고 눈에 확 들어오는 간판이 있었습니다. 어제도 지나가면서 보았지만 철문이 굳게 닫혀있어 지금은 안 여는 줄 알았었습니다. 기울어진 경사로 끝을 올려다보니까 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든지요!
정말 6시도 안 된 새벽시간에 급식을 하는지 잠깐 의심이 들었습니다. 들어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무료로 밥을 주나요?”
노숙자로 보이는 그 사람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만 끄덕이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나도 그 사람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안쪽에서 찬송 반주기 소리가 크게 들려 왔습니다.
“역시 교회에서 하는 거구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앞에 있는 스크린에 뜨는 가사를 따라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곳의 명칭은 ‘참좋은친구들’이었습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미 1992년에 서울역광장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했었습니다. 수많은 긴급구호활동을 펼치다가 2009년에 바로 이곳, 중림동 무료급식소를 개원했습니다. 2013년에 ‘참좋은친구들’ 법인을 설립했고요.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가서 앉았습니다. 찬양을 몇 곡 부르더니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여호수아 1:7-9를 본문으로, 길지 않은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들어온 사람들을 살펴보니 노숙자로 보이는 분들도 많았지만 어르신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윽고 급식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차례차례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거의 마지막 순서를 따라 줄을 섰습니다. 기다리면서 얼핏 보니까 식판에 밥을 엄청나게 많이 담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평소에 먹는 밥의 세 배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교회에서 2년 조금 넘게 수요일마다 어르신들께 저녁을 대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찾아오던 노숙자들 중에 두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먹던 생각이 났습니다.
밥을 타 와서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하는데 앞에서 식사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여기도 밥이 많이 좋아졌어요.”
하긴 밥, 국, 반찬 3가지인데 먹을 만했습니다. 나는 보이는 대로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밥들을 엄청나게 많이들 드시네요.”
“하하 그런데 저분들 그 많은 밥을 다 먹어요. 왜냐하면 먹는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 그런데 여기 오신 분들은 전부 노숙자는 아닌 것 같아요.”
노숙자라고 보기에는 깨끗했고, 마치 등산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여기 노숙자하고 쪽방 사람들하고 구분하면 안 돼요. 쪽방 사람들은 밥을 해먹을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먹는 거고요, 이분들도 쪽방에서 쫓겨나면 노숙자들하고 똑같은 건데요.” 그제서야 어제 예수나라선교회 예배드리는 사람들 중 깨끗한 어르신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 세수를 해야 합니다. ‘서울로’ 공사를 하면서 생긴 만리동 광장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변기가 둘, 세면대는 하나였는데 너무 좁았습니다. 그래도 머리를 들이밀고 비누칠을 해서 씻고 여러 번을 억지로 헹구어서 세수를 완료하였습니다. 일부러 면도기는 안 가지고 갔습니다. 짧은 기간이었고, 그래도 좀 노숙자처럼 보이고 싶어서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첫 날 밤을 어설프게나마 지낼 수 있었고, 잠자리가 몹시 불편한 덕에 일찍 일어났고, 덕분에 무료급식소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큰 은혜는 ‘참좋은친구들’ 무료급식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적어도 아침과 저녁은 굶지 않아도 된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 서울로 길을 산책해 보았습니다. 오전 시간이라 햇볕이 따갑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숙체험 나가는 줄 아셨는지 구름이 적당히 끼어있는 뜨겁지 않은 날들이었습니다. 중림동으로부터 시작되는 서울로를 퇴계로 끝까지 걸어보았습니다. 상당히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다양성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크고 작은 콘크리트 화분들만 얼기설기 늘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똑같은 돈을 들여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꾸밀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 다르겠지만요. 제가 언급할 글이 아닌데 아침을 먹고 나니 느긋해져서 쓸데없는 참견까지 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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