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8 : 박스 한 장의 고마움

김완섭 목사 2017. 7. 19. 17:19

노숙체험 8 : 박스 한 장의 고마움


둘째 날 아침에 참좋은친구들에서 식사뿐만 아니라 예배까지 은혜롭게 드리고 세수하고 청파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피곤함과 부족한 잠을 조금 보충했습니다. 아직까지는 걷기조차도 힘든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누워 있을 데도 없어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서울역으로 갔지만, 광장에는 민주노점상연합 전국대회가 열리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유니폼을 입은 전국 지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수많은 차량들도 한쪽 구석을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노점상연합은 지부마다 대형 스피커를 지붕에 단 차량들을 몰고 왔는데 노점상연합이라면서 왜 저런 게 필요한지 잠깐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아무튼 오전에는 광장 근처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노숙자 다시서기조끼를 입은 사람이 있기에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점심 때 밥차 안 와요? 무료 급식차요.”

와요.”

몇 시에 오는데요? 저녁때도 와요?”

아뇨. 점심에만 와요.”

어디에 오는데요? 어제는 안 왔는데요.”

어제요? 왔었어요. 여기 광장 지하도 쪽으로 와요.”

그래요? 아침하고 저녁에는 안 와요?”

. 점심때만 와요.”

저는 이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광장 쪽에서 한 시간 가량 기다렸는데도 급식차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노점상연합 차량들만 뻔질나게 들어왔습니다.

 

저는 좀 참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거 나는 이틀 동안이나 급식차조차도 못 만나는 사람인가? 나 혹시 바보 아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시련을 위해 못 보게 하셨나?”

아무리 그런 생각을 해도 아무런 변화는 없었습니다. 서울역 광장 쪽에는 하루 종일 노점상대회가 열리는 모양입니다. 서울역에 드나드는 손님들조차 자유롭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노점상대회 사람들만 바글바글했습니다. 할 수 없이 오늘은 광장 쪽에는 안 오는 것이 좋겠다 싶어 다시 청파공원으로 갔습니다.

 

그 때부터 둘째 날 밤에 어디에서 잘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노천에서 잠을 청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목회하던 교회 옥상 문 앞 계단 위쪽에 한 노숙자가 잠을 자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옥상으로 나가려는데 사람이 잠을 자고 있어서 깜짝 놀랐지만 볼일만 보고 그냥 주무시게 했었습니다. 그 노숙자는 잠결 중에서이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그런 잠자리조차 얼마나 그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밤마다, 아니 거의 하루 종일 틈틈이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곤 했었습니다.

아버지. 제발 건물 안에서 잠을 자게 해 주세요.”

 

마땅한 건물도 없겠지만, 그나마 찾아다니다 보면 혹시라도 구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청파공원 쪽 동네를 골목골목 다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건물 3층에 새생명교회라는 곳이 있어서 올라가 보았는데, 옥상으로 가는 복도가 한 사람이 눕기에 아주 적당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옥상 쪽에 사람이 올라가려면 그 복도를 지나가야 했고, 교회 아래 2층은 공장인데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작업하고 있어서 이따 밤에는 어떻게 될지 알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후보지로 보아두었습니다. 그 후로도 다시 한 번 잠 잘 곳을 살펴보러 나갔지만 적당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쉬다가 졸다가 잠잘 곳 찾으러 가는 등 시간을 보내는데, 7시에 열릴 참좋은친구들예배시간까지 그런 식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1시간 30분 정도 남겨두고 다시 그쪽 방향으로 골목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두 군데 후보지가 나왔습니다. 건물 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편하게 누울 수 있을 곳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남았지만 참좋은친구들로 들어가서 성경을 보았습니다. 노숙 현장에서 보는 성경은 교회나 사무실에서 보는 성경과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예배와 저녁을 마치고 830분쯤 되었습니다. 몸이 몹시 힘들고 잠이 너무 왔습니다. 만리동광장에는 서울역 고가에서 떼어낸 콘크리트 위에 만든 둥근 좌판 같은 것이 몇 개 있는데 이것은 넓어서 10여명이 올라가서 앉아도 될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아침에 보면 이곳에 노숙자 한두 사람이 누워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잘 생각은 없었지만 11시 정도까지 눈이라도 좀 붙여볼까 하여 누웠는데 10분도 안 되어 경찰이 나타나서 눕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디에서라도 눈을 좀 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10시 정도가 된 것 같았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오늘 알아본 곳은 하룻밤 잠을 자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새생명교회라는 곳은 2층 공장이 야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올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혹시 교회 전화번호가 있을까 하여 찾아보았지만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두 군데 봐 둔 곳은 후에 생각하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있어서 불가능했습니다. 할 수 없이 첫 날 잠자던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하지만 어제 깔고 덮고 자던 박스가 사라졌습니다. 그냥 어제 덮고 자던 미니담요를 바닥에 깔고 자기로 했습니다. 긴팔 옷과 점퍼를 입고 빈 배낭을 베고 누웠습니다. 몸 상태로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추위와 주변의 소음 때문에 잠이 들 수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춥고 힘들고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에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벌떡 일어났습니다.

에이! 또 박스 찾으러 가야지.”

다소 성질이 난 김에 배낭을 그 자리에 두고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누군가 그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배낭을 발견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배낭이지만 저는 앞으로 사흘을 더 보내야 하기 때문에 필수품이었던 것이죠.

 

박스를 다시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지만, 비닐봉투라도 구해야겠다고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비닐봉투도 박스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큰 박스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한 할아버지께서 정리하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반은 포기하고 다시 잠자리로 가다가 첫날 박스를 내어주신 할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혹시 이분이 계신다면 다시 돌려드릴 것을 약속하고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하지만 그곳에는 할아버지도 안 계셨고 박스도 없었습니다.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구석이 손수레 같은 것이 하나 있었고 그 뒤를 보니 박스가 두 개 있었습니다. 거의 포기했었기 때문에 저의 마음에 기쁨이 참 컸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서 깔고 덮고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 박스 한 장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감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도 박스 한 장에 대해 얼마나 감사할 수 있을까요? 고물상에 가져가 봐야 폐지 1kg100원도 안 하는데, 박스를 몇 장이나 모아야 1kg이 되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박스 한 장에 50원이 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찮은 헌 박스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고 무시할 정도로 여기는 사물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공적이거나 많거나 클 때 감사가 큰 것이 사람의 본성이지만 작고 사소한 것에도 크게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된다면 그 사람은 성공적인 신앙인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물의 외적인 모양이나 크기에 현혹되기보다는 시선을 바꾸어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작거나 큰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작거나 큰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가하시냐에 관심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상황은 어제와 똑같았지만 추위가 훨씬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고 박스 두 장이 없다가 있었을 때의 형편이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더욱 크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박스 한 장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니 지금 몸이 아무리 불편하고 힘이 들고 잠이 쏟아져도 그 순간만큼은 저는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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