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9 : 2,150원
셋째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집으로 돌아갈 지하철 비용 2,150원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하철비용 1,650원에 보증금 환급금 500원을 더해서 2,150원입니다. 이 돈이 없으면 꼼짝없이 서울역에서 거여동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물론 이 돈이 없다고 해서 같은 서울인데 집까지 못 가기야 하겠습니까? 안 되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거나 아내에게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도 정 마음에 안 들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서 3,000원 정도야 못 구하겠습니까? 하지만 집에서 나올 때 5,000원 가지고 나와서 이것으로 차비를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가지고 나온 돈에서 지하철비를 써야 합니다.
혹시나 2,150원을 잃어버릴까봐 배낭의 맨 아래 주머니 속에 깊이 넣어 두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동전 100원짜리와 50원짜리도 빠지지 않도록 아래쪽에 넣었습니다. 50원짜리이든 100원짜리이든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주 주머니를 들여다보고 확인하곤 했습니다.
저의 모습이 참 우스워보였습니다. 겨우 2,150원입니다. 보석도 아니고 문서도 아니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꼭 붙들고 잃어버릴까봐 조심하느냐 말입니다. 하지만 이 돈은 집으로 가느냐 못 가느냐를 결정하는 소중한 돈입니다. 아니, 돈이 아니라 티켓이며 에너지이며 힘이며 능력입니다. 2,150원의 능력. 그것은 집으로 가는 능력입니다. ㅎㅎ
저는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수단, 그것이 아니면 목표한 바를 결코 이룰 수 없는 도구,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방법, 그것이 2,150원이었던 것입니다. 4박5일 노숙자인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능력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아마 우리 인생들은 저마다 그런 것을 한두 가지나 몇 가지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2,150원은 복음이요 믿음입니다. 천국은 복음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일학교 찬송가처럼 믿음이 없으면 못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비약이 좀 심하지만 2,150원이 바로 집으로 가는 소중한 믿음인 셈입니다. ㅎㅎ
요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믿음만은 버리면 안 되는데, 그러려면 그 믿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 확신이 없이 그 믿음을 버리거나 변개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믿음 아니면 천국에 갈 수 없는데 다른 공로로 천국에 가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천국에 갈 마음이 사라진 채 이 땅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천국에 간다는 확신 가운데 사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믿음, 오직 그것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이라면 그것만은 절대 버리거나 무엇과 바꾸거나 절반쯤 써버리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 분명한 사실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그냥 묻어두는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행함이 포함된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따로따로 놀 수는 없습니다. 행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참된 믿음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살아 있는 믿음을 생명처럼 품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2,150원보다 더 적어도 안 되고 더 많아도 소용없는 딱 2,150원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저는 그 2,150원을 무슨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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