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7 : 헌금 500원

김완섭 목사 2017. 7. 19. 17:17

노숙체험 7 : 헌금 500


첫날 소개해드렸듯이 노숙 첫날, 예수나라선교회 예배 때 저는 헌금을 500원 드렸습니다. 사실 남는 돈은 1,200원이었는데, 점심 때 급식차를 만나지 못했고 저녁에도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굶을 각오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가 고픈 것은 고픈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을 부르고 설교를 들으면서 틈틈이 이 1,200원으로 어떻게 하면 굶주림을 면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결론은 김밥 한 줄 사먹는 것이었습니다. 김밥 한 줄에 얼마인지 직접 사 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서민갑부인가 하는 프로에서 어떤 사람이 꼬마김밥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꼬마김밥이 한 줄에 500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김밥 한 줄에 1,000원인지, 1,200원인지, 1,500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김밥이나 뭐 그런 거 비슷한 것 1,200원어치 사먹으면 허기는 면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다 끝나자 찬양을 부르기 전에 헌금을 드리겠다면서 찬양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참 답답했습니다. 허기 좀 면해 보겠다고 이리저리 계산하고 있는데 헌금이라니요. 그런데 헌금을 받을 때 바구니 같은 것을 돌리는 게 아니라 한 사람씩 강대상 앞으로 나와서 헌금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전도 훈련차 탄자니아에 갔을 때 성도들이 앞으로 나와 헌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드릴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노숙인들과 어르신들이 헌금하는데 목사라는 제가 헌금을 안 드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밥을 포기하고 500원 동전 하나를 헌금했습니다. 금액이 너무 적어 부끄러워 동전을 손 아래에 감추고 드렸습니다.

 

남은 700원으로 물이라도 한 병 사야 하니 오늘 하루 종일 굶을 것은 뻔했고 내일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헌금을 드리면서 누가 생각났겠습니까? 바로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한 어느 과부였습니다. 물론 저의 500원과 그 과부의 두 렙돈의 의미나 무게가 같다는 이야기는 분명 아닙니다. 저는 5일 동안 굶는다 해도 집에 돌아가면 되지만, 그 과부는 그녀의 자녀들과 함께 하루뿐 아니라 며칠을 굶어야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기본적인 음식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러나 저러나 큰 상관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식사를 못 한다는 순간적인 상황은 동일하지만 삶에서의 형편은 저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500원을 헌금하면서 머리에 그 과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게 된 동기를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녀가 자기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음으로써 예수님으로부터 그 날 가장 많이 헌금했다는 칭찬을 들었다는 것밖에는 모릅니다(12:41-44).

에라 모르겠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똑같으니 헌금이라도 하고 죽자!”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아니면 이 과부가 너무나 감격한 일, 예를 들면 전쟁에 나갔던 아들이 죽은 줄 알았는데 5년 만에 돌아왔다든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든가 하는 일을 만나서였을까요? 그렇지만 만약에 감격적인 일을 만났다면 그나마 남은 돈으로 생선이라도 한 마리 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라도 있었을까요?

 

어떤 상황이었든지 간에 그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동전 500원짜리 헌금하면서 그 과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약에 두 렙돈이 아니라 500렙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부 헌금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런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은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두 렙돈도 드릴 수 있지만 500렙돈도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기가 가진 전부를 다 하나님께 드린 여인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누군가 500원을 헌금했다면 누가 저에게 얘기해 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해도 요즘 그 집사님 어려운 걸까?” 아니면 요즘 헌금을 500원 하는 사람도 있어?” 하는 생각으로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500원이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다른 무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김밥 한 줄 포기하고 500원 헌금하면서 조금이나마 더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 이런 진리를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접 몸으로 체득하게 된 것은 바로 500원 헌금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체험으로 아는 것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는 것은 그렇게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자거나 헌금의 의미를 알자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자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상대편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양극화나 사상의 편중화, 정치적 입장 같은 것에도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인 이웃들에 대해서, 특히 고아와 과부 같은 소외되고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제하는 일을 알리려고 사거리에서 나팔을 부는 일은 결코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구제, 마음이 따르지 않는 헌금은 하나님 앞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구제받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자기가 베푼다고 생각한다면 몸으로는 베풀되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겨우 500원 헌금하면서 무슨 감상이 그리 많으냐고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그 당시 그 과부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절박했던 마음이었다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