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6 : 교회 옆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
제가 노숙을 하는 목적은 뚜렷합니다만, 사실 노숙을 시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연히 페북을 통해 접하게 된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것은 지난 겨울 어느 교회 근처에서 노숙하던 사람이 얼어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한겨울 어느 날 새벽시간, 성남에 있는 한 교회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교회 문을 쾅쾅쾅 두드리면서 교회를 향하여 소리소리 질러댔습니다.
“이봐요! 교회가 도대체 뭐하는 곳입니까? 어젯밤에 우리 동생이 바로 여기 교회 옆에서 얼어 죽었단 말입니다. 교회가 바로 옆에 있는데 사람이 밖에서 얼어 죽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여보시오! 내 동생이 어제 여기서 얼어 죽었단 말입니다!”
자세한 사건의 내막은 저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교회가 잘못했다거나 책임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교회는 비록 그 노숙인이 얼어 죽는 것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평소에 근처의 노숙인들에게 식사도 제공하고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얼어 죽었다는 그 자체가 충격이고, 그 사람의 형 되는 사람의 심정은 눈물겨운 일입니다만, 그렇다고 교회가 어떻게 모든 사람을 책임지겠습니까?
저희 교회에도 그렇고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 노숙인들의 방문했을 때 1,000원짜리 한 장 쥐어주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그리고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직업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아주 가끔 도둑으로 돌변하여 물건을 훔쳐가는 피해를 당할 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이웃으로 보지도 않았고,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었습니다. 개척 초기에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접하고 싶어서 상당 기간 동안 3,000원씩을 일일이 봉투에 넣어 하나씩 드리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몇몇 번 사기 비슷하게 당했는데, 알고도 당해주고 모르고 당하기도 하고, 이제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 이야기를 하면 금방 그 의도를 정확하게 분별할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들이 풍부합니다. ㅎㅎ
그런데 노숙인이 한겨울에 밖에서 자다가 얼어 죽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교회 바로 근처에서 얼어 죽었다면 목회자나 성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노숙인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노숙인이 처한 환경보다는 그들의 심정, 그들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제가 직접 노숙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숙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숙한 것은 아닙니다. 노숙인들보다는 그들의 심정을 체험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할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심령이 정말 가난한 상태를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궁핍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달린 아주 절박한 상태, 이런 상태가 되어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노숙체험의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때 우리에게는 이웃사랑의 정의가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면 이웃의 상태가 되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동정심이나 긍휼한 마음으로 노숙인들을 돌보았다 해도 그들과 같은 상태가 되어보지 못하면 그것은 결코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주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 우리 가운데 그것이 성취되려면, 그냥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동일한 심정이 되어 보아야 가능할 테니까요.
저는 이번 노숙체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된 이웃은 누구일까, 아니, 우리가 섬겨드려야 할 이웃은 과연 정말 누구여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소외된 이웃의 현대판은 누구일까? 오늘날 그들은 노숙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물론 미취업생, 비정규직, 최저임금 같은 문제들과 걸려있는 수많은 이웃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데도 기댈 데도, 살아갈 수단도 없는 것이 고아와 과부라면 오늘날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사람들의 무관심과 조롱 끝에 자신조차도 포기해버리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 버린 이 노숙인들과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쪽방 사람들,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독거노인들, 이런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 이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행동이 극단적이거나 과격하다거나 괴팍해서, 또는 괴짜라서 아니면 좋은 경험을 얻기 위해서 노숙을 택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뭐 그렇게까지 꼭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그리고 목회자의 아내나 가족들이 질색을 하고 결사반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또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토록 강렬한 체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까짓 닷새 동안의 더러움과 비천함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을 전부 고려한다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론으로 원인분석을 하고 다양한 대안을 아무리 많이 내놓아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노숙체험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문을 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것이야말로 회복이든 개혁이든 갱신이든 분명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교회 옆에서 얼어 죽은 불쌍한 한 노숙인으로 인하여 이끌어내어진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닷새 만에 얼굴과 손에 모기 수십 방을 물린 채 깎지 않아 턱밑이 거멓게 변한 노숙인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그런 외모와는 달리 신앙의 깊이와 시선의 넓이와 행동의 구체화를 얻어온 것은 참으로 엄청난 결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경험한 노숙은 특별하기는 하지만 선뜻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집 밖으로 나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니까요. ㅎㅎ
서울역 노숙자쉼터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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