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13 : 다람쥐 쳇바퀴
“노숙체험이 정말 필요할까? 밥 먹을 데 찾아가고 모자란 잠 보충 하는 데 에너지를 거의 사용하고 있는데 그래도 예수님께서 정말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해돋는마을에서 맛있게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 어제 저녁부터 또다시 너무나도 마시고 싶은 커피 한 잔을 그리워하면서 청파공원 벤치에 앉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노숙체험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사소할 수도 있겠지만 노숙체험과 노숙자 체험은 다른 것 같습니다. 노숙체험은 그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밖에 나가 며칠을 지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노숙자체험은 노숙자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생활상과 속사정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그냥 저 나름대로 내린 정의입니다. 어쨌건 저는 지금 노숙체험중입니다.
그런데 노숙체험이란 결국 일종의 생존훈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면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신 것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노숙체험이 기도체험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이라면 전국 어디에나 있는 기도원으로 가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노숙을 하려고 한 것은 기도원이라는 주어진 공간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은 채 하나님만 의지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음성을 들려주실 수도 있고 그냥 노숙생활에서 하나님을 느껴보고 깨달아가게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제가 직접 생활해본 노숙은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사실상 먹는 일과 자는 일, 그리고 그것을 찾아 준비하는 과정을 빼면 할 일이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빡빡하게 항상 할 일이 밀려 있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고 할 수도 없는 생활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말자 제가 한 일은 급식차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교회가 별로 없고 다 문을 닫아 놓고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교회를 찾아 먼저 기도하려고 하기보다는 계단에 앉아서 잠깐 기도하고 곧바로 급식차를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급식차를 찾지 못하고 (아예 없는 것이었지만) 예수나라 예배에 참석하고 서울역 근처를 이리저리 거닐면서 탐색하고 잠잘 곳을 구하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거기에 무슨 생산적이고 창의적이고 영적인 것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먹을 것과 잠 잘 곳을 찾는 일이 주된 일과가 되고 말았지요. 첫날 잠잘 곳을 찾는 일에는 정말 모든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골목을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상세하게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결국 첫날 건빵 한 봉지 먹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남의 집 처마 밑 쪽잠도 열댓 번 깨면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나니 다음 날 하는 일은 시간되면 무료 급식하는 데 찾아가고 (시간을 놓치면 절대 안 되죠.) 그리고 최대한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위해 되도록 편한 곳으로 찾아가서 앉아서 단 10분씩이라도 틈틈이 졸거나 쉬거나 자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바로 노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위험과 더불어 생활의 고난을 많이 당한 분입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7)
물론 바울의 고난과 수고를 겨우 며칠 노숙한 것과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복음전파를 위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바울 사도와 견주겠습니까? 얄팍한 목사의 머리에 사도바울의 고난의 삶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가을에 4박5일 거지전도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때에는 감히 사도바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점에서 다 같은 신앙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음식과 잘 곳에 대한 갈급함으로 생활하면서 생각하니 날마다 너무 쉽게 주어지고 있는 음식과 주거에 대해 의식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여기에서의 일용할 양식은 꼭 음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전부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당시 사람들과 비교할 때 오늘날에는 너무도 쉽고 당연하게 얻어지는 일용할 양식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너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먹기 위해서 사는 것도, 살기 위해서 먹는 것도 다 옳을 수도 있는 동시에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순히 먹을 것과 잠 잘 곳을 기다리며 찾으면서 생활하는 것도 결코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먹을 것과 잠 잘 곳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먹을 것을 구해야만 하고 잠 잘 곳을 찾아 헤매야 하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억만 금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감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보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양식을 구할 때마다 아버지께 간구하고, 양식을 구했을 때마다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노숙을 하면서 비로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런 간구와 감사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4박5일 노숙체험은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숙은 앞으로 이틀 더 필요할 것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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