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15 : 노숙자 아니시죠?

김완섭 목사 2017. 7. 21. 15:27

노숙체험 15 : 노숙자 아니시죠?


이제 수요일 저녁식사를 위해 무료급식소로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저녁은 서울시 따스한 채움터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곳이 원래 급식차량이 오는 무료급식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서울역 광장에 텐트를 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에서 준비한 장소로 들어가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이곳은 저녁 급식 시간은 오후 57시이고, 4시부터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녁으로는 너무 이른 시간이 될 것 같아 45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서울시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서서 한 사람씩 들여보내고 있었습니다. 주방 옆으로 해서 뒤쪽 대기실로 가라고 해서 갔더니 아주 긴 공간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중에 숫자를 파악해 보았더니 제 앞에 180명 이상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작은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들어오면서 얼핏 보니까 오늘 급식을 제공하는 단체는 원불교 단체인 원봉공회라는 곳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듯이 혹시 짧더라도 원불교 행사를 하고 급식하는 것은 아닌가 했습니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는 청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혹시 원불교 행사 같은 것 하고 급식하나요?”

 

이 청년은 서울시 직원인 듯했습니다. 이 청년이 무슨 질문인지 잘 못 알아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다시 같은 질문을 했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뭔가 저에게 말을 하려는 듯했습니다. 잠시 후에 그 청년이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노숙자 아니시죠?”

순간 뭐라고 대답할까 망설여졌지만, 일단 노숙자라고 우기기로 했습니다.

노숙자 맞는데요.”

아니신 것 같은데요.”

나는 내가 노숙자가 맞는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말을 덧붙였습니다.

노숙자 맞아요. 나온 지 얼마 안 돼요.”

 

속으로 이런 저의 모습이 무척 우스웠습니다. 노숙자가 아닌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노숙자가 아니라고 딱 자르기는 좀 그렇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이 청년은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왜요? 왜요? 하고 몇 번 물어보았습니다.

아니요. 선생님은 사장님 같으셔서요.”

사실 조마조마한 것이, 만약에 이 청년이 목사님이시죠?” 물어보았다면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요? 원불교의 영성이 강하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물론 농담입니다. 그 청년은 원불교 봉사자가 아니라 서울시청 직원이었으니까요. ㅎㅎ

 

아무튼 대기자들은 한 줄에 6명씩 앉아서 기다리는데, 주방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한 줄씩 들여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급식소 홀에 식판이 차려질 때마다 한 줄씩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홀이 1층과 2층에 있었지만 그렇게 넓지는 않으니까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나가면 식탁을 정리하고 식판을 놓고 대기자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끝에 온 사람들은 30-4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그래도 급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날마다 끼니 때마다 급식을 제공하는 단체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구세군, 경제회복센터, 사랑의교회, 상동교회, 사랑의쌀, 나라사랑, 새사랑교회 등이 있었고, 서울역을 중심을 활동하는 단체로는 사랑실천공동체, 해돋는마을, 거리교회, 나누미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불교의 원봉공회, 개인으로는 윤나연이라는 분이 매주 한 끼씩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대기실이라는 곳은 이곳 건물들의 뒤쪽에 붙어있는 철길 옆의 공간을 확보하여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습니다. 양쪽에 각 3개씩 의자를 놓았는데, 그렇게 6명씩 35줄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6시정도 되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은 지난 화요일 점심 때 남대문교회에서 한 잔 마신 후로 더욱 강해졌습니다. 해돋는마을 앞에 보니까 100원이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돈 1원도 없는 처지라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동전 100원의 가치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은 수요일이라 수요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원래는 서울역 광장에 있는 기도처에서 드리려 했었습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 알고 있는 어느 목사님이 매일 저녁 7시면 어김없이 기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 기도회를 무려 7년간이나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 따라 7시까지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좀 더 지나니까 차량이 들어서더니 임시 텐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근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도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에 기도회가 시작되었을 때는 제가 아는 목사님이 아니라 어느 여자 사역자께서 기도회를 인도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아주 많이 한 걸걸한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수요예배를 위하여 거기 참석하지 않고 다른 교회를 찾기로 했습니다. 아직 7시가 조금 넘었으니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참좋은친구들 위쪽에 있는 중림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이틀 동안 잠을 잔 곳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예배를 은혜롭게 드리고 나서 앞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노숙인숙소로 가 보았지만 도저히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아 고민하다가 다시 원래 잠자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첫날 깔고 덮고 자던 박스를 잃어버렸던 터라 두 번째 구한 박스는 접어서 지붕 사이에 올려놓았었습니다. 혹시 누가 또 가져갔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으로 가보았더니 다행히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잠을 잤던 곳이라 적응이 될 법도 했지만 춥고 불편하고 시끄러운 것은 첫날이나 오늘이나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사흘 낮 밤을 무사히 넘어간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나를 평안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