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11 : 핸드폰 충전을 맡기면서
집을 떠날 때 핸드폰 충전기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와이파이 끄고 데이터 사용하지 않을 것이지만 중요한 전화 같은 것은 받아야 하는데, 아무리 안 써도 배터리가 5일을 가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충전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충전에 적어도 두세 시간 걸리는데 그 동안 그 곁을 지킬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오던 날 노숙자 다시서기 센터에 보니까 충전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핸드폰 충전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뭔가 굉장히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의 바지 주머니에는 항상 양쪽에 무엇인가를 넣고 다녔습니다. 왼쪽 주머니에는 대개 핸드폰을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에는 작은 열쇠꾸러미 두 개를 항상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이유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좀처럼 핸드폰을 놓고 다니는 경우가 없습니다. 오른쪽주머니에는 열쇠 외에도 동전이나 지폐도 넣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그때그때 편리하게 사용합니다.
그런데 노숙을 나오면서 이런 것들을 전부 다른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애초에 열쇠는 집에서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은 1,000원짜리 지폐와 동전(총 2,150원)들은 배낭에 넣었습니다. 유일하게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던 것이 핸드폰인데, 충전을 위해 그것마저도 센터에 맡기고 나니까 제 바지는 그야말로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큰 자유를 느꼈습니다.
저의 바지 주머니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물건들은 인간으로서 저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핸드폰은 이 세상에서 인간들과의 소통이나 세상에 대한 목적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 소식을 듣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분별력 있는 생각과 결정을 위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른쪽 주머니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열쇠 꾸러미들은 저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 열쇠 꾸러미 중에는 자동차 열쇠도 항상 함께 있으니 그것은 외부로 통하는 이동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 며칠간이지만 이런 것들을 전부 내려놓는 기분을 느껴봅니다. 그것은 자유라는 단어입니다.
저는 노숙을 나오면서 지갑도 안 가지고 나왔고, 따라서 카드도 다 놓고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충전을 맡기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일시적이나마 전부 버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으로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저의 소유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제가 그 소유물의 노예가 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소유하면서 그 소유로 인하여 자랑도 되고 누림도 되고 어떤 수단도 되지만 동시에 자기가 가진 그 소유물에 얽매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은 거기에 익숙해져서 자기가 그 소유물의 노예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가벼운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저의 손을 떠났을 때 이런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워졌음을 깊이 느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당장의 허전함을 메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다시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다시 소유물을 찾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그 소유물은 서로가 공생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ㅎㅎ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그 허전함은 소유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더 커지는 것이고요. 결국 허전함은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숙체험은 그런 면에서 참된 자유함을 맛볼 수 있는 좋은 훈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오직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필요 없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채 아무 조건도 상황도 필요 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두세 시간 후에는 다시 핸드폰을 찾아오겠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앉아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적어도 노숙체험의 최대 장점은 바로 이 자유함인 것 같습니다. 언제 다시 이런 자유함을 누려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한때 노숙자들의 천국이었던 서울역 지하도.
지금은 길게 한 쪽을 막아 노숙자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4박5일 노숙체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숙 13 : 다람쥐 쳇바퀴 (0) | 2017.07.20 |
---|---|
노숙 12 : 무료급식소를 찾아내다. (0) | 2017.07.20 |
노숙 10 : 익숙함의 경고 (0) | 2017.07.20 |
노숙 9 : 2,150원 (0) | 2017.07.20 |
노숙 8 : 박스 한 장의 고마움 (0) | 2017.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