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12 : 무료급식소를 찾아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물어서 알아낸 것입니다. 청파공원에서 쉬다가 졸다가 보니까 점심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물론 청파공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영역 쪽으로 다니면서 교회에도 들어가서 잠시 기도도 하고, 잠잘 만한 곳을 꾸준히 찾고 있었죠. 아무튼 11시 30분이 넘었기에 다시 서울역 쪽으로 건너갔습니다. 핸드폰을 찾으러 노숙자 다시서기 센터에 갔습니다.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만 메모해 주면 누구든지 충전이 가능합니다.
핸드폰을 찾으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무료급식차 안 오나요?”
“무료 급식차요? 와요. 매일 오는데요.”
“그래요? 어디로 오는데요?”
“아, 여기로 오는 것이 아니고요, 남영역 쪽으로 죽 가시면 거기 있어요.”
“남영역 쪽으로요? 얼마나 가면 있죠?”
“가시다가 보면 서울역 13번 출구가 나와요. 거기서 조금만 가면 있어요. 사람이 나와 있을 거예요.”
“그냥 그리로 가면 되 거죠?”
“네, 13번 출구에서 보면 해돋는마을이라고 있고 그 옆에 무료급식소가 있어요.”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어제 저에게 대답해준 사람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대답해준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다소 급한 걸음으로 남영역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시간을 보니 12시 5분 전이었거든요. 서울역 14번 출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니까 13번 출구가 나왔습니다. 거기서 좀 더 나가니까 정말 신생교회, 해돋는마을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보니까 따스한 채움터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데 해돋는마을이라는 곳으로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 저도 그냥 따라 들어갔는데 사람이 다 찼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제 뒤에도 한 사람이 섰는데 아주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람이 37세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독립하겠다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안쪽을 보니 누군가 식사기도를 마친 것 같았습니다. 이미 좌석이 꽉 차 있었고, 안내하는 분이 안쪽에 사람이 앉은 반대편에 앉게 했습니다. 한 사람씩 앉게 되어있는 탁자의 양쪽에 앉은 것이니 식사를 하기에는 상당히 좁은 상태였습니다.
어쨌든 거기 앉아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판은 아니고 큰 접시에 밥과 국과 반찬을 얹어서 주었습니다. ‘참좋은친구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전부 앉아서 밥을 기다렸습니다. 장소가 비좁으니까 서비스하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밥을 나르는 사람들만 7-8명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 줄로 서서 밥을 전달,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여기가 어딘가 했지만 둘러보니 이곳은 어르신 교회였습니다. 실버처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에 기도회가 있고 점심도 따로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단, 아침에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만 급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아마도 헌금도 없고 등록을 받는 것도 아니고 주로 노인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그 당시 느낌은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에 이런 좋은 일을 하시나보다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1999년 청량리역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담임이신 김원일 목사님은 2003년에 목사 안수를 받으셨고, 2007년에 서울역으로 옮겨와서 무료급식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원래 이 신생교회는 현재 노인사역을 주로 하고 있고, 아까 센터에서 알려준 곳은 신생교회 옆에 있는 ‘따스한 채움터’라는 곳입니다. 따스한 채움터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제공합니다. 매 끼마다 식사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끼를 책임지는 개인도 한 사람 있었습니다. 저는 무료급식이라고 하면 급식차량이 오고 의자들을 펼쳐놓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밥을 받아가는 것만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도 그런 광경만 찾으려고 하니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서울역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서울시에서 장소를 만들어 ‘따스한 채움터’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과거처럼 줄을 서서 밥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장소 안에 들어가서 대기하다가 순서를 따라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급식차가 와서 밥을 나누어주는 모습이 낭만적이었다고 할까요? 아마 서울시에서도 꽤 골머리 앓은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급식차가 와서 나누어주려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야 하는데, 인원이 200명 이상씩 와서 줄을 서면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이제는 저도 삼시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날은 굶었고, 둘째 날은 점심을 못 먹었고, 셋째 날에는 점심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화요일에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사람으로 인하여 몇 시간이지만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알지 못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길을 물어도 잘 모르면서 대충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튼 이렇게 하여 사흘째 점심까지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날들은 이틀인데 좀 지쳤습니다. 더 이상은 별 의미도 없을 것 같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잠잘 곳을 찾아 춥고 불편하게 잠을 자야 하는 부담감도 너무 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도 4박5일을 계획하고 왔고, 또 금요일 점심 얻어먹고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이대로 접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큰 거 하나 주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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