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17 : 커피 한 잔의 여유

김완섭 목사 2017. 7. 21. 15:31

노숙체험 17 : 커피 한 잔의 여유


하루 종일 청파동, 만리동, 중림동, 염천교 쪽을 한두 번씩 가보고 서울역과 서울로를 몇 번씩 드나드는 것이 생활화되었습니다. 서울역에 갔다가 청파공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려가는 계단 끝에 한 걸인이 모자를 앞에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걸인이 아니라 노숙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숙인들이 돈이 떨어지면 걸인 행세를 해서 용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노숙인과 걸인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모자 속을 보니 많지는 않아도 동전이 수두룩했습니다. 순간 그 동전이 탐이 났습니다.

저거 하나만 있으면 커피 한 잘 마실 수 있는데

제가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걸인의 모자 속에 있는 동전 하나를 탐하다니!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제 10계명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돈 100원이 탐나는 것이 아니라 100원으로 한 잔 뽑아먹을 수 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을 뿐입니다.

 

그 후로 몇 번인가 커피자판기의 거스름돈 반환구에 손을 집어 넣어보았습니다. 어쩌다가 거스름돈을 잊어버리고 가져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 전에 동네에서 자판기 동전반환구마다 손을 넣어보면서 다니던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커피자판기에 손을 넣어보지 않은 사람은 노숙을 논하지 말라.” ㅎㅎ

 

모든 욕구는 필요를 낳고 필요는 욕심을 낳는 것 같습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것도 사물을 봄으로써 필요가 생기고 거기에 욕심이 생긴 것이겠지요. 하지만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욕구가 생기는 것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커피가 먹고 싶다는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100원짜리 동전이 필요해진 것이고, 필요에 의해 걸인의 모자 속에 있던 100원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사실상 제가 현재 100원에 대해 가지는 욕심이나 수십억, 수백억을 부정하게 취득한 것이나 욕심 자체는 동일합니다. 그리고 그 욕심이 자라면 결국 죄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

그렇게 본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깨끗한 사람도 없고, 영원토록 더러운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커피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필요를 따라 욕심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노숙을 체험하면서 제 마음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저는 해돋는마을에서 점심을 먹게 되는데, 밖으로 나오면서 보니까 함께 급식을 먹는 한 사람이 커피를 한 잔을 빼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부탁했습니다.

100원짜리 하나 좀 주실 수 없을까요?”

하지만 이 사람은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젓고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처럼 적당한 사람을 보고 부탁을 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했습니다. 속으로 빈정거림이 나왔습니다.

같이 무료급식 얻어먹은 주제에

하지만 혹시 이 사람도 그 100원이 마지막 남은 100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서울역 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노숙자쉼터가 있습니다. 안에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들을 길게 몇 줄 늘어놓은 곳입니다. 더우니까 약간 시원한 그 안에 들어가서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저도 그 안에 잠시 들어갔습니다. 앉아서 바깥쪽을 보니 출입문 옆에 커피자판기가 두 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몇 몇 사람들이 커피를 계속 빼먹고 있었습니다. 1000원짜리나 500원짜리를 넣고 거스름돈을 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어나서 출입문 쪽에 가서 섰습니다.

 

잠시 후에 어떤 사람이 1,000원짜리 지폐를 넣는 것이 보였습니다. 거스름돈을 꺼내는 것을 보고 다가갔습니다.

100원짜리 하나 주실 수 없어요?”

그러세요.”

이 사람은 바로 100원짜리 하나를 건넸습니다.

커피를 며칠 못 먹었더니

동전을 받으면서 변명 비슷하게 말했더니 이 사람이 빙그레 웃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사람은 뭘 100원짜리 하나 가지고 그러느냐는 듯이 겸연쩍어했습니다. 커피를 빼서 나오는데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했더니 조금은 이상한 표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저에게 100원짜리 하나가 얼마나 고마운 돈이었는지 그 사람은 전혀 모를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 24시간만 지나면 짐으로 갑니다. 아직 정말 괴로운 노숙이 하루 남아있지만 시간을 붙들어 맬 수도 없는 것이니 말년 병장처럼 아무튼 견디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커피 한 잔을 48시간 만에 마시게 되었지만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손에 들고 서울역을 걸으면서 참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시나마 여유를 느껴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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