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18 : 단팥빵 한 개

김완섭 목사 2017. 7. 21. 15:32

노숙체험 18 : 단팥빵 한 개


이미 언급했다시피 목요일 점심은 해돋는마을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무료급식소를 선택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급식 시간이 1210분부터였기 때문에 1210분전쯤에 도착했습니다. 안에서는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꼬깔모자를 쓴 어르신들이 가운데에 많이 앉아계셨기 때문입니다.

 

안내인의 지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보니까 이 날이 5-6월 생일감사예배였습니다. 생일에 해당되는 분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가운데 자리에 앉으셨고 생일축하 노래와 케이크절단 등의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어르신들께 선물도 하나씩 드려졌습니다. 제가 들어가기 전에 몸 찬양 팀이 와서 공연도 한 차례 했던 것 같습니다. 생일 해당자 전체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축하순서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급식 준비를 마치고 급식접시가 돌려졌습니다. 다른 날 하고는 달리 단팥빵 하나와 수박 한 조각이 곁들여졌습니다. 처음에는 도너츠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단팥빵이었습니다. 도너츠이든 단팥빵이든 제 눈이 돌아갈 것 같았습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빵이냐? 밥보다 빵을 먼저 먹고 싶었지만 빵은 아까우니 이따가 먹기로 하였습니다. 수박은 그 자리에서 먹었죠. 가져갈 수도 없고 또 크기가 작아서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맨날 먹는 이야기냐 하시겠지만 노숙하는 기간 동안 정말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ㅎㅎ

 

아무튼 그렇게 단팥빵을 배낭에 넣고,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커피 한 잔 얻어 손에 들고 서울역 쪽으로 걸어오는데 그 당시만큼은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청파공원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중간에 중요한 사건이 하나 생깁니다만, 그것은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공원으로 갔습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그렇게 덥지는 않았습니다만, 목요일이 되자 꽤 심한 더위가 지속되었습니다. 서울로에 올라갔었지만 더워서 가다가 말고 청파공원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요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그때그때 느낀 감상을 글로 적어놓는 일입니다. 사실 이런 노숙체험도 아무 기록이나 메모도 없이 진행한다면 그때그때의 작은 느낌이나 감동이나 하나님의 메시지는 다 놓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꽤나 여러 시간을 들여 수첩에 글을 정리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노숙자들과 달리 공원에 앉아서도 원가 자꾸 쓰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그래서 그냥 노숙인으로 취급받지 않았던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요일 오후에도 청파공원 벤치에 앉아 뭔가 한참 쓰고 있었습니다.

 

청파공원에는 참새가 참 많습니다. 요즘 도심 지역에는 어디를 가나 참새가 많이 눈에 띕니다만, 아마 청파공원은 주변에 숲이 별로 없어 참새들이 많아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거의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참새들도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공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졸다가 쓰다가 하는데 단팥빵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빵을 꺼내서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참새들 생각이 났습니다. 빵의 밀가루 부분을 잘게 뜯어 대여섯 개 땅바닥에 던졌습니다. 처음에는 참새들이 한 마리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5분 정도 지나니까 참새들이 날아오더니 빵조각을 하나씩 물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도심의 참새라도 조심성이 있어서 사람이 앉아있는데 그 자리에 오래 있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시 그보다 많은 빵 부스러기를 뜯어서 사방에 던져놓았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참새들이 몰려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날아와 빵 부스러기를 하나씩 물고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습니다. 참새들에게 먹이 주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즐겁고 만족스러웠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84:3)

온 세상이 하나님의 제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청파공원 근처 어느 집 지붕 밑에 집을 둔 참새를 보면서 문득 참새가 내 형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친 감상인가요? ㅎㅎ

 

해돋는마을에서 5-6월 생일 잔치에 나온 단팥빵 하나. 예전에 며칠 금식할 때 또는 위가 안 좋아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할 때 언제나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도너츠였습니다. 그러므로 도너츠나 단팥빵은 노숙하면서 커피 다음으로 먹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단팥빵 하나 얻어가지고 나오면서 커피 한 잔과 함께 큰 만족감을 느꼈었는데, 그 만족감보다 참새들이 그거 받아먹는 모습에서 훨씬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숙현장에서 얻어먹는 단팥빵 하나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은 그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 참으로 더 큰 것을 실감하는 하루였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찾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뿐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행복도를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주 안에서 행복감을 자주 맛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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