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 16 : 매매하는 표
넷째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 날은 참좋은친구들이 아니라 해돋는마을(신생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급식을 먹으려고 하였습니다. 따스한 채움터에서도 급식이 제공되지만 거기에는 예배가 없습니다. 모두 6시에 예배를 시작하기 때문에 6시 10분 전 쯤에 해돋는마을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었고 두세 사람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 먼저 와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6시에 여는 거 맞죠?”
“네. 열긴 여는데 오늘은 왜 아직 문을 안 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6시 10분이 가까워오도록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아침을 못 먹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참좋은친구들로 다시 가기로 하고 걸어갔습니다. 똑같이 6시에 시작이지만 먼저 예배가 있어 늦게 급식이 제공되니까 좀 늦어도 밥은 먹을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걸어갔더니 설교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맛있게 해결했습니다.
참좋은친구들에는 커피자판기가 없습니다. 돈도 없지만 자판기 자체가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 가면 100원짜리 자판기가 있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고 다시 청파공원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이미 아침 시간에 앉아서 조는 곳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으레껏 서너 사람 이상이 이곳에서 잠을 자는데 대개 열한시 넘게 자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커피는 마십니다. 어디서 돈을 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있으니까 커피를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득 계시록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말세가 되면 짐승 두 마리가 나타나고, 나중 나온 짐승이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는데, 그 때 모든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666 표입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6-18)
결국 마지막 때가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매매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매매를 하고 싶으면 666 표를 받아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100원도 없어 일체의 매매를 할 수 없는 현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일체의 돈이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매매하는 표를 받을 수 없고 그렇다면 돈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그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굳이 베리칩을 들지 않더라도 아무튼 이와 비슷한 형태의 666 표가 주어질 것은 거의 확실하니까요.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매매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매매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연발생적인 현상으로 물물교환으로부터 시작하여 화폐가 발생하고 현대에는 전자거래 등으로 더욱 발달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형태이든 매매라는 것을 하지 못하면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매매하는 표는 하나님의 수단이 아니라 사탄의 도구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매매하는 표를 받지 못하면 일체의 금융행위를 할 수 없고, 각종 보험이나 의료혜택 등 당연히 받아야 할 복지조차도 우리 곁을 떠날 것입니다. 오늘날 제 주변의 작은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들 중에는 신용불량자가 많습니다. 그분들은 일체 금융거래를 할 수 없고 통장도 만들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금융거래, 경제활동에 큰 제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66표를 안 받으면 아예 경제활동 자체를 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든지 돈 주고 사야 하는데 그 일체를 할 수 없다면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동굴에도 피하고 들판에서 주워 먹으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7-38)
돈을 사용할 수 없는데, 이것은 생명을 유지할 수단조차도 빼앗기는 것입니다.
커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해결한 후 가장 큰 욕구로 다가오는 것이 커피인데, 이것을 단 돈 100원도 없어서 못 마시면서 힘들어하는 저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만약에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종말이 온다면 저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되는 것입니다. 저의 때가 아니면 저의 후손들의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데 저들은 과연 이것을 잘 견뎌서 천국의 상을 받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노숙체험을 하면서 100원도 없어 괴로움을 당하면서 100원이 아니라 아예 돈 자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그 때에도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666표를 받지 않고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너무도 안일한 신앙생활을 영위해가는 오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매매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신앙인들이 이것을 이기도록 교육하고 훈련해야 할까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박5일 노숙체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숙 18 : 단팥빵 한 개 (0) | 2017.07.21 |
---|---|
노숙 17 : 커피 한 잔의 여유 (0) | 2017.07.21 |
노숙 15 : 노숙자 아니시죠? (0) | 2017.07.21 |
노숙 14 : 노숙인 공동숙소 (0) | 2017.07.21 |
노숙 13 : 다람쥐 쳇바퀴 (0) | 2017.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