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19 : 만 원의 엄청난 행복
단팥빵을 배낭에 집어넣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행복한 마음으로 서울역 쪽으로 갔습니다. 문득 현수막을 길게 펼쳐 걸어놓고 녹음된 메시지를 틀어놓고 있는 한 전도자를 발견했습니다. 서울역 쪽에는 워낙 기독교단체나 개인 전도 팀이 자주 옵니다만, 선뜻 다가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족감 때문이었을까요?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얼굴이 다소 검게 탄 이분은 70세 전후로 보였습니다. 제가 인사를 건네자 이분이 말 없이 먼저 악수를 청했습니다. 제가 먼저 소개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전도하는 사람이라 한번 인사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분이 자기 이야기를 한참 했습니다.
“제가 목회하다가 은퇴했는데 우리 마누라가 집에 있지 말고 다른 것 하지 말고 전도하러 다니라고 하면서 쫓아내서 나왔답니다.”
이분은 2년 전에 은퇴하신 이종훈 목사님이셨으며, 예수십자가선교회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예전에 강한 은사로 영분별을 많이 하시고 이단에서 많이 나오게 하셨다는 이야기, 다른 분에게 가서 2년 정도 전도를 배웠다는 이야기, 인사동에 가서 전도할 때 경찰이 막았는데 그냥 의사를 표현하다가 경찰 어깨를 살짝 건드렸는데 갑자기 무술을 쓰면서 팔을 뒤로 꺾더니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끌고 간 이야기, 서울역에는 원래 어느 직원 때문에 전도를 일체 못했었는데 기도했더니 더 높은 책임자가 왔고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 지금은 아주 시끄럽지만 않으면 전도는 그냥 내버려둔다는 이야기 등을 계속해서 들려주셨습니다.
한참을 듣고 반응을 보이다가 제 이야기도 살짝 했습니다. 노숙 체험하러 나왔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했습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어서 그런지 별로 거리끼지 않고 이야기해드렸습니다.
“전도를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다른 목적이 있어서 4박5일 노숙하러 나왔습니다. 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1원도 없는 상태로 4일을 지냈습니다. 첫날은 쫄쫄 굶었고요, 둘째 날도 점심은 굶었죠. 커피 한 잔 먹고 싶은데 이틀 동안 못 먹다가 방금 다른 사람한테 얻어먹고 오는 길입니다.”
이분이 갑자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먹을 것도 두 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죠. 그게 진짭니다.”
저는 놀라서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도 수입이 거의 없이 전도만 하시는 분이라 돈이 없거든요.
“지금은 내가 더 부자입니다. 내가 국가유공자라서 한 달에 200,000만 원씩 나와요. 오늘 받아가지고 왔는데, 이 앰프하고 장비를 가지고 다닐 수 없으니까 이걸 구두닦이 박스에 보관하는데 한 달에 40,000원을 달래요. 그런데 3개월치를 먼저 달라고 해서 아까 120,000원을 지불했거든요. 그래서 80,000원 남은 데다가 아까 어떤 목사님이 점심 값으로 7,000원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더 부자니까 아무 말 말고 받아가세요.”
저는 이 만 원을 받으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기쁨의 크기를 말하라면 100만원 받은 느낌이 아니라 1,000만원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감격하여 거듭거듭 고맙다고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노숙이 끝나고 한번 찾아뵙겠다고 약속하고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이제는 100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도 그런 부자가 없습니다.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큰 기쁨을 안겨 주셨습니다. 만 원이 얼마나 큰 돈이고 얼마나 고마운 돈인가를 철저히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이 강건하지 못한 상태로 노숙을 나왔는데, 사흘 동안은 먹을 것, 잠 잘 데도 문제였지만 사실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흘째가 되니까 몸이 조금 풀리는 듯했는데 만 원을 받고 나니 다리가 너무 가볍고 날아갈 듯했습니다. 이제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만 원이라는 큰돈을 어떻게 쓸까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야기한 대로 공원 벤치에 앉아서 참새에게 단팥빵 부스러기를 떼어주었습니다. 팥이 붙어있는 부분은 제가 다 먹고 밀가루 부분만 떼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첩에 느낌을 적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짹짹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벤치 끝부분에 참새가 한 마리 앉아서 짹짹거렸습니다. 돌아보니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까 그 빵 더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참새가 기억하고 찾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만 원을 허물기로 했습니다. 참새를 위해 처음으로 만 원을 쓰기로 했습니다. 단팥빵을 사기 위해 다시 배낭을 어깨에 걸쳤습니다. 주변에 제과점 말고 빵을 파는 곳은 슈퍼나 편의점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근처에 슈퍼는 없었고 편의점이 두 개 있었습니다. 편의점 한 곳에 들어가 빵을 찾아보니 800원 하는 단팥빵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 원을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 잃어버린 칫솔을 사야 했습니다. 편의점은 일단 비싸니까 슈퍼를 찾았는데 한참을 올라가니 슈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물건의 거의 없었습니다. 칫솔 있느냐고 하니까 포장종이와 비닐 사이가 다 떨어져버린 칫솔을 주었습니다. 요즘 포장이 다 뜯겨져 나간 이런 물건 돈 주고 사는 시대가 아닙니다.
“얼마예요?”
“1,500원이요.”
“포장 다 뜯어진 건데, 1,000원에 해요.”
“이런 작은 가게에서 뭘 또 깎습니까?”
“편의점이 비싸서 좀 싼 거 찾으러 온 건데요.”
이렇게 해서 1,000원에 칫솔 하나를 샀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마저도 아이들 칫솔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만 원에서 1,800원을 썼습니다.
공원 벤치로 다시 돌아와서 단팥빵을 꺼냈습니다. 빵 부스러기를 뜯어서 주변에 다 뿌려대니까 일순간에 참새들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는 참새도 비둘기같이 한군데 모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참새들은 좀처럼 모이지 않았습니다. 빵조각을 물고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보기에는 구분이 안 되겠지만 참새들도 성격이 다 다릅니다. 이제 둥지 밖을 날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새끼 참새들은 빵 부스러기가 앞에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미에게 달라고 양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쫓아갑니다. 참새들의 이런 저런 모습을 구경하면서 며칠 만에 평안한 오후를 누리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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