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21. 만 원짜리 한 장으로

김완섭 목사 2017. 8. 21. 10:46

노숙 21.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만 원을 받고 천만 원을 받은 느낌이었지만 이 돈을 어떻게 잘 써야 할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사실 만 원이라고 해도 서울역 근처 설렁탕 집에 가면 갈비탕이 9,000원이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크다고 할 수는 없는 돈입니다. 그러나 크다는 것과 귀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이미 밝혔듯이 칫솔 1,000원, 단팥빵 800원을 써서 8,200원이 남았습니다. 사실 이 칫솔은 제가 잃어버린 값입니다. 실수와 허물과 죄의 값으로 대가를 지불한 셈입니다. 그리고 단팥빵 800원은 글쎄 일종의 이웃사랑이라고나 할까요? 왜냐하면 참새들이 사람 앞에 다가온다는 것은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참새는 빵 껍데기가 붙어있는 제일 큰 덩어리를 물고 날개에 온 힘을 다하여 힘겹게 멀리 있는 둥지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참새의 갈급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갈급함을 맛보았기에 참새의 갈급함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ㅎㅎ


   그 날 저녁이었습니다. 저녁급식을 따스한 채움터에서 해결하고 나오다가 아까 낮에 커피 얻어먹었던 노숙자쉼터에 가서 저녁 커피를 먹기로 했습니다. 100원짜리 두 개가 있으니까 그 중 하나를 꺼내 동전투입구에 힘있게 집어넣었습니다. 밀크커피, 블랙커피, 설탕커피 표시등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밀크커피를 누른 후 잠시 기다리니 빨간 불이 꺼졌습니다. 저는 뜨거운 커피가 든 종이컵을 조심스럽게 잡고 밖으로 꺼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커피를 꺼낼 때의 쾌감을!
“나도 이제 당당하게 내 돈 내고 커피 먹는다!!!” ㅎㅎ


   서울역 대합실을 가로질러 청파공원 쪽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계단 끝에 어제 구걸하던 걸인이 앉아 행인들을 한 사람씩 쳐다보면서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역시 모자에 동전 몇 개 넣어져 있는데 어제와 비슷한 양인 것 같았습니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지폐라도 받으면 주머니에 넣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한 장을 잡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니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내려오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표정을 보면 대략적인 반응을 알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머니에서 1,000원을 꺼내서 그 걸인에게 내밀었습니다. 걸인의 눈이 둥그레지면서 감사를 외쳤습니다.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


   속으로 “이미 너무 많은 복을 받았어요!” 외쳤습니다. 어제 이맘 때만 해도 그 걸인의 모자에 들어있는 100원이 그렇게 탐이 났었는데, 사유야 어찌 되었든지 나도 노숙인이니 노숙인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도 남에게 받은 건데 또 다른 남에게도 주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복음의 원리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이제 7,100원이 남았습니다.


   약간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돗자리를 사야만 했습니다. 염천교 가는 쪽에 시장이 있어서 그리로 가다가 철물점이 있기에 들어갔습니다.
   “돗자리 있어요? 비닐 돗자리요.”
   주인이 걸어놓은 돗자리를 꺼내면서 5,000원이라고 했습니다. 더 싼 거는 없느냐고 하자 주인은 돗자리를 내어주며 “사천 원만 줘요.” 합니다. 보니까 아주 오랫동안 걸려 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닦아보니 휴지에 까맣게 때가 묻어나왔습니다. 평상시라면 3,000원에 해도 살까말까 한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만 원 중에 돗자리 사는 데 4,000원은 비중이 너무 컸습니다. 너무 아까웠지만, 이건 잘 쓰면 몇 년이라도 쓸 수 있으니까 하면서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3,100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일 점심이면 집으로 돌아가니 모자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돗자리를 꺼내서 배낭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다시 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역 쪽으로 나가보았는데 어디선가 색소폰 연주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펴보니 서울역과 버스정류장 사이에 있는 좁은 인도 사이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아까 4시 넘어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어디에선가 색소폰 소리가 들렸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그 때까지도 색소폰을 불고 있어서 근처에 가보았었습니다. 저는 전도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보니까 그냥 도움을 얻으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돗자리를 산 후에 그쪽으로 가는데 그 때까지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적어도 4시간 이상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월세가 너무 밀려서 할 수 없이 나왔다고 써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주하려면 훈련이 많이 되어야만 하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오래 연주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급박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1,000원 한 장을 꺼내서 그 사람 앞에 있는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적은 돈이라 미안해요.”
   그랬더니 돈을 넣자말자 그 사람은 속사포처럼 감사를 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큰 복을 받으실 거고 하시는 모든 일이 반드시 성공하실 것이고 하늘의 상도 많이 받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뭐 자세한 말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런 종류의 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만 원은 2,100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1,000원을 주고 나서 초저녁의 쉼을 위하여 다시 청파공원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날의 거의 어두워졌는데, 아까 모자 쓴 걸인이 앉아있던 자리에 다른 걸인이 보였습니다. 이 사람은 구두닦이 통을 옆에 놓고 구두도 닦으면서 구걸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100원밖에 안 남았는데 … ”
   하지만 차별대우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9)
그래서 다시 1,000원을 그 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감사하다는 어조로 “사장니임∼!” 하고 그만입니다.



   다소 허무함이 느껴졌습니다. 아까 만 원을 받았을 때의 그 감격과 기쁨에 비하면 끝은 너무 초라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감격을 안겨주었던 만 원도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 중에 원래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왔을 뿐 아니라 갈 때도 아무 것도 못 가지고 갑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복이 아니라 저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마음껏 나누어주고 마음껏 도와주고 살아야 하는데 왜 그렇게 축복 축복 하면서 많이 가지라고 강조하는지요?
   겨우 만 원 가지고 별 시덥지않은 설교를 했네요. 다 아는 것을 가지고 말입니다. ㅎㅎ



서울역에서 정기적으로 찬양전도하는 주찬양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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