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20 : 널뛰는 마음

김완섭 목사 2017. 8. 21. 10:29

   노숙 20 : 널뛰는 마음


   이종훈 목사님으로부터 만 원을 받아든 저의 마음은 너무나도 풍요로워졌습니다. 만 원을 받기 전, 커피 한 잔을 얻어 들고 걸으면서 일시적인 만족감에 젖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일 점심까지 남은 모든 과정은 큰 부담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걸으면서 저녁 때까지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었습니다.


   오후에는 다시 교회를 찾아서 기도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교회를 찾는 것도 수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전부 굳게 닫혀 있었고 남대문교회, 청파감리교회는 이미 들어갔었는데 다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고, 근처에 있는 삼일교회에도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노숙자 차림으로 모자를 쓰고는 어쩐지 들어가기가 꺼려졌습니다.


   또한 잠 잘 곳 역시 걱정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차피 노숙인 숙소로는 들어가기를 포기했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이제 하룻밤 남았다고는 해도 여전히 괴로운 잠을 청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밤이라도 건물 안에서 잘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렇게 근심과 염려로 인하여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사라질 때쯤 이종훈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만 원은 이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송두리째 다 날려버리게 했습니다. 이제는 커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잃어버린 칫솔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잠자리에 대한 두려움은 추위와 자세의 불편함이 큰 요인인데 이제 비닐 돗자리라도 구하고 베개할 만한 것을 마련하면 편안한 잠자리가 될 것 같아 작은 걱정까지도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제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뭔가 필요한 것이 갖추어졌을 때의 그 안락해지는 마음, 누구나 그러고 싶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그런 편안함을 향하여 조금씩 조금씩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닐까요? 좀 더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들, 이것이 인간의 장점이고 능력이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나간 것 아니겠습니까?


   아프리카 선교훈련 같은 것을 나가보면 모든 것이 불편합니다. 전부 직접 손으로 해야 하고 잠자리도 불편하고 비포장 길도 불편합니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이런 불편이 사라지는 나라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인간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그 사실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불편함이 점차 줄어들면서 오히려 인간의 문제는 더욱 커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불편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커피 한 잔을 먹고 싶어 기도했습니다. 건물 안에 잠자리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먹을 음식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한 가지씩 충족되면서 기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만 원을 받고부터는 아예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물론 필요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필요가 채워지니 편안한 마음이 되고 편안해지니까 절박함도 긴급성도 다 사라졌습니다.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겠다는 의지도 사라졌고,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감정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가난해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심령이 오히려 부유하게 된 것입니다. 겨우 만 원에요.


무   료급식소를 알게 되면서 뒤바뀐 나의 마음을 알게 되고 만 원을 받음으로써 급격하게 무너져버리는 것을 확인하자 “참 걱정스러운 인간이군.” 하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습니다. 사실 이런 감정이나 마음의 급격한 변화는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더라도 그냥 지나쳐버리게 되는 것이 우리 삶에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저 자신이 누구인가를 더 잘 알게 된 것이 이번 노숙체험의 중요한 열매라고 느끼게 됩니다.


   저 자신의 모습을 다기 한번 발견하고 확인하게 된 것이 감사할 일이라면 저의 원래의 모습을 알고 있기에 하나님의 사역도 예측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럴 때 저의 마음이 저렇게 변해버리는 것을 알기에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이 저의 육신의 생각인지 주님의 음성인지 어느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분별의 기준은 어렴풋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특수상황이기는 하지만 만 원에 춤추는 제 마음을 알았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상황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 감정적인 흐름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약간 부족함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나라의 작은 교회들은 거의 모두 이러한 핍절 속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그 핍절이 때로는 사역에 힘을 준다고 말씀드리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족하고 연약하고 하나님을 필요로 할 그 때야 말로 가장 하나님의 신실한 종일 때라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핍절함의 고민을 뒤로 하고 거기에 쏟는 에너지를 모아서 열심히 사역을 감당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속성이 그렇지는 못하기에 무조건 많이 달라고 기도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에는 기도 응답도 비교적 쉽게 오지만 신앙이 자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쯤에는 기도응답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더디 응답하시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시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적어도 사역자라면 밥을 굶을 정도의 핍절을 겪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런 핍절을 경험할 때에 비로소 더 참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환경을 일부러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모든 사역이 선택의 연속임을 볼 때 편안함에 초점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초점을 두고 순간순간 선택한다면 그는 궁핍할 때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어렵다면 그 사람은 서울역으로 노숙체험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ㅎㅎ



서울역사 안에서 펼쳐지는 시간여행자의 시계중 한 작품으로, 앞에 선 물체를 선으로 해석하여 다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진은 그 앞에 서서 한 쪽 팔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저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