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노숙체험

노숙 22. 노숙의 마지막 밤

김완섭 목사 2017. 8. 21. 10:52

노숙 22. 노숙의 마지막 밤


   이제 잠시 후면 사흘 동안 잠을 잤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여전히 불편함과 소음으로 잠을 깊이 들지 못할 염려가 부담으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아까 산 돗자리를 깔고 말아서 덮으면 일단 추위는 한결 누그러질 것 같았습니다. 불편함도 그 동안 덮던 미니담요를 배낭 안에 그대로 넣어두고 베면 훨씬 편해질 것 같았습니다.


   이제 내일 점심만 먹고 나면 바로 지하철로 집에 가게 됩니다. 어떤 기분이라고 할까요? 마치 오랜 해외여행 끝에 다음 날 출국수속만 남겨놓은 사람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이제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그 동안 겪었던 어려움도 하루만 지나면 되고, 나흘 동안 서울역에서의 생활은 잘 했건 못했건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문득 우리가 인생을 정리할 때 이런 기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나라를 출국하여 천국으로 입국하기까지의 과정을 남겨놓은 상태라면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잠시 후면 천국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는 착잡하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할 것이고, 그런가 하면 마음속에 은근히 염려가 되기도 하는 그런 마음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원가 하겠다고, 놓지 않겠다고 붙잡고 있거나 자신의 죽음 이후를 염려한다면 어쩌면 부족한 삶을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 주님께 기쁨이 되기나 한 것인지, 뭔가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있다고 자부해보지만 그것이 과연 하늘의 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애쓰고 힘썼지만 결과로 나타난 것은 별로 없는 것에 대한 죄송함, 성도들을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자기 자신도 넘지 못해 정성껏 돌보지 못한 일들,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추진했지만 나만 맞는 것은 아니었다는 결과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천국에 가기 직전에 벌거벗은 채 하나님 앞에 설 것을 기대하면서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인 것 같습니다.


   겨우 며칠 노숙하면서 기대하기에는 지나친 것인지는 몰라도 뭔가 주님의 음성이라도 들리거나 놀랄만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에서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준비기도 등 거기에 걸맞는 행동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지 못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또 교회에 들어가거나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이런 은근한 기대가 지나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 저에게도 주님께서 음성을 (육성은 아닐지라도) 들려주실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만 주님의 사역은 결코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삶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신앙이 바른 음성일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오히려 상황 속에서 깨달아지는 것이 정확한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삶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노숙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음성을 골고루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사 ‘시간여행자의 시계’ 기획물 중 하나.

모니터가 여러 개 설치된 것이 마치 우리 인생의 여러 상황들을 설정해놓은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동안 한 일이라고는 음식과 잠자리를 구하고 육신을 쉬게 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뚜렷한 느낌이나 확신이나 결단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물론 4박5일의 그 어떤 프로그램이 한 사람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귀중한 체험으로 말미암아 깨달아진 것들이 마음속에서 계속 자라다가 어느 때인가 결단이 필요할 때 그 체험이 밑바탕이 되어 마침내 결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그래서 저의 4박5일 노숙체험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거나, 뭔가 성취하고 나서 그 일을 마무리하고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아니면 사역의 어떤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큰 변화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이 노숙체험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의 생각과 삶에 도전을 주고 결단하게 만드는 몇 가지 프로그램들을 겪어 보았지만 모든 것을 떠난 채 한 푼도 안 가지고 오직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 전부를 맡기는 노숙체험은 그리스도인의 일생의 어떤 분기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의 개혁이나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이 시대에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그리스도의 원래의 복음을 살아보고자 하는 시도는 분석적이고 이론적인 개혁운동과 연결될 때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랜 준비기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돈 없이 집을 떠나기만 하면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기에 꼭 한 번씩 노숙해보기를 권면하는 바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도 겪었던 일들을 한동안 정리하면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좀처럼 자기 삶의 틀을 한번 벗어나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기에 짧은 기간이지만 앞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을 내맡겨보는 체험이 기독교인들을 더욱 기독교인답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도 한 번 노숙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66세에 노숙을 시도해본 저의 뒤를 이을 후배를 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