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23 : 노숙인은 누구인가?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어제 오후에 급식소에서 만난 분에게 물어보니 해돋는마을에서 예배와 함께 아침 급식이 제공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아침은 해돋는마을에 갔습니다. 6시에 여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6시 10분쯤 되니 안에 전등이 켜지고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해돋는마을을 주관하는 신생교회 김원일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어르신들에 맞추어서 구수하게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다시 한 번 감탄하지만, 참 아름다운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습니다. 그렇게 예배가 끝나고 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은 점심에 비해 간단하게 나왔습니다. 접시에 밥과 국 한 그릇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국이 일품이었습니다. 다른 반찬 없어도 들어갈 것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하여 마지막 날 아침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어제 남았던 100원짜리 하나를 자판기에 넣었는데 커피가 떨어져 전원을 꺼둔 것을 모르고 넣어 100원을 자판기에 빼앗겼습니다. 할 수 없는 남은 1,000원짜리로 900원을 거스름돈으로 받고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이제 만 원 중에서 제게 남은 돈은 900원입니다.
앞으로 서울역 노숙인들과 급식을 함께할 일은 한 끼만 남았습니다. 이쯤 해서 제가 보았던 서울역 노숙인들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노숙인들을 정의하고 어떤 자세로 이들을 대해야 할까요? 노숙인복지법에 의하면 노숙인이라 함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준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며칠 동안 살펴본 노숙인들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서울역에 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서울역을 중심으로 계단이나 건물 밑의 공간 등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아예 서울역을 자신들의 보금자리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녁이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아침에 해가 중천에 뜨도록 길바닥에 누워있습니다.
두 번째는 노숙인 다시서기 센터 등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낮 시간은 서울역 근처에서 보내지만 저녁에는 노숙인숙소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낮에는 첫 번째 사람들과 구분이 잘 안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조금만 유념해서 보면 노숙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서울역을 중심으로 삶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서울역에서 자는 사람들이 아니고 서울역 근처에 있는 여러 동네 공원이나 골목 같은 곳에 흩어져서 자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세 번째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했었습니다. 급식소를 찾아 밥을 얻어먹지만 잠 자는 곳은 중림동이었으니까요. 공원 같은 곳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노숙인들은 2만 명이 안 된다고 보고되고 있으나 관련 종사자들에 의하면 적어도 30만 이상의 사람들이 노숙인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들 중 상당수는 기독교 기관에서 흡수하여 도움을 제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미 노숙인화되어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노숙인이라고 분류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 노숙인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그 중에서도 뉘우치고 돌이켜 정상인으로 돌아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몇 번 찾아와서 식사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얻으러 오세요? 일하시면 되잖아요?”
심각하게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 노숙인은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어 별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노숙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내의 당연한 이 말을 듣고 그는 속으로 많이 흔들렸다고 했습니다.
그 후 한동안 이분이 교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두어 달 쯤 지나서 주일 예배 시간에 나타났습니다. 저희 아내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그 때 그 말을 듣고 뉘우치고 일할 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6개월쯤 흘렀을까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 후에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모님, 목사님. 이제 당분간은 새소망교회에 못 옵니다. 제가 중국동포와 결혼하게 되었고 일터가 지방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예 노숙인으로 들어선 사람이 아니라면 노숙인들은 언제라도 일거리를 찾아 재기할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세 부류의 노숙인 말고 다른 분들이 있는데 그들은 쪽방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독거노인들인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많은 배려를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분들은 대개 일할 수 없는 입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역 광장 예배나 중림동 ‘참좋은친구들’에 오는 분들의 상당수가 쪽방사람들입니다.
어쨌거나 노숙인이란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분들입니다. 사연이야 다양하겠지만 경제적인 문제, 가족공동체의 붕괴, 정신심리적인 문제 등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구약에서의 고아와 과부 같은 개념을 이 노숙인에게 적용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노숙인 말고도 소외되고 경제능력을 잃어버린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노숙인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이나 청량리역으로 가지 않아도 지금도 교회를 찾아오는 반직업적 노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무조건 퍼주자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찾아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알다시피 우리가 무조건 사랑을 베푼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여동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는 주변에서 노숙자가 된 어느 인도사람을 성의껏 돌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여인과 결혼하여 한국으로 왔으나 아이까지 있는데도 이혼을 당하여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가 없겠지만 목사님 내외가 몇 번이나 목욕도 시켜주고 음식도 주고 옷도 주고 어떻게든지 이 사람을 일으켜보고자 무진 애를 썼지만 이 사람은 또 노숙인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목회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잠시라도 노숙인이 되어 그들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노숙하면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기 위하여 노숙하게 되었지만, 이들과 함께 급식을 얻어먹으면서 이들의 실상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회와 기독교 신앙인들이 이 노숙인들을 백안시하지 말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우리의 이웃들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조금 베풀고 할 일 다했다는 그런 시각이 아니라 이들이 만약 내 가족들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 노숙인들이 빨리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가시기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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