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25 : 노숙 후의 느낌
하나님의 큰 은혜를 깨닫고 일상생활로 돌아온 지 만 2주가 지났습니다. 열흘 정도는 노숙체험기 쓰느라고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숙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천만 원과 같은 만 원을 주신 이종훈 목사님이었습니다. 만 원으로 누려본 가장 큰 기쁨을 안겨주셨습니다. 이 감사를 그냥 품에 안고만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목요일에 다시 서울역으로 나갔습니다. 마치 처음 노숙하러 떠나던 날처럼 비슷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서울역 2번 출구로 나갔더니 목요 예배를 위하여 십자가선교회가 친 텐트가 보였습니다. 거기를 지나 서울역 대합실 쪽으로 가니까 길게 친 현수막이 보였고 그 뒤에 이종훈 목사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아직 11시 45분 정도라 마이크로 전도는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니 저를 못 알아보십니다. 제가 아는 체를 하니까 유심히 바라보더니 알아보고 인사를 하십니다. 제가 모자도 벗고 안경을 썼거든요.
“그 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기쁨이 어떤 거냐 하면 우리가 살다가 100만 원 정도를 현금으로 받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만 원이 백만 원의 느낌이 아니라 천만 원을 현금으로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봉투를 내밀었는데, 그 봉투 속에는 30만 원이 넣어져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말씀하셨는데 100배로 갚아드리기에는 능력이 모자라고 적어도 30배는 갚아드려야겠기에 30만원 가져 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지난번에 받은 만 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이 양반이 또 지갑을 꺼내더니 이번에는 오천 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안 받으려고 했지만 워낙 강하게 쥐어주시는 덕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온 봉투를 건넨 것이었습니다.
오천 원을 가지고 받네 안 받네 하는데 서울역에서 먹고 자고 하는 듯한 노숙자가 가까이 다가와서 돈을 달라고 합니다. 손에 오천 원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을 보고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숙자는 고개를 흔들며 오천 원짜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주면 술 먹을 거잖아요?”
저는 오천 원은 안 주고 천 원짜리를 받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숙자는 굳이 오천 원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무시했더니 한참 있다가 2천 원을 달라고 합니다.
“이거 드리면 술 먹을 거죠? 돈을 아무리 많이 주면 뭐 합니까? 술 먹으면 아무 것도 아닌데 ...”
그래도 2천 원을 주었습니다. 노숙자가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갔습니다.
아무튼 그 와중에 30만원이 든 봉투를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또 다른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날 그거 작지만 만 원 드렸잖아요? 그런데 그거 드리고 한 사람이 오더니 5만 원짜리를 한 장 주고 갔는데, 아, 그 후로 세 사람이 5만 원짜리 한 장씩을 주고 가지 뭡니까?”
결국 이종훈 목사님은 5만 원짜리 4장, 20만 원을 그 자리에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보통 몇 천 원이나 만 원짜리를 주는 분들은 가끔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5만 원짜리를 주는 분은 거의 없는데 그 날은 네 사람이나 연속으로 5만 원짜리 한 장씩 주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인하여 전도지 세 가지를 찍는데 드는 비용 30만 원 중에서 20만원이 해결되었고 나머지는 목사님 돈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30만 원을 드리니까 감격하셨고 더 힘을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12시부터 전도를 시작하는데 11시 조금 넘으면 오셔서 현수막을 치고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심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청량리역이나 광화문이나 탑골공원에서도 전도를 하시는데 그런 데에서는 근처에서 배달을 시켜 먹거나 포장해서 먹기도 하는데 서울역에서는 이렇게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어떤 때는 빵을 사먹거나 컵라면을 사다가 급히 드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뭘 함께 먹을까 하다가 초밥을 사서 함께 먹기로 했습니다. 초밥 두 개를 24,000원에 포장해서 가지고 오니 목사님은 제가 드렸던 국토순례전도단 소책자를 읽고 계셨습니다.
“야, 이거 아주 잘 만들었는데요.”
“목사님, 이거 같이 드십시다.”
초밥을 꺼내놓고 이분의 기도를 받고 함께 초밥을 먹었습니다. 좁은 낚시 의자밖에 없어 거기 앉아서 포장을 풀다가 제 것을 그만 땅바닥에 엎어버렸습니다. 그냥 손으로 대충 걷으니 절반 정도는 먹을 수 있어 저는 그것을 먹었습니다. 나머지는 비둘기 밥으로 사용했죠.
이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손에 들고 있는 커피 한 잔도 먹을 수 없어 사람들이 들고 있는 종이컵을 자꾸 쳐다보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눈길조차도 그냥 흘려버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노숙체험을 통하여 그런 사람들의 아픔이나 생각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큰 은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야기하는 중에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전도를 하다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 대개 컵라면의 국물을 다 먹지 않고 반쯤 남겨 옆의 화단 위에 놓아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은 라면국물을 그 자리에서 마시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고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씩이었는데, 얼마나 그것을 먹고 싶었으면 창피도 모르고 그렇게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는 아니라도 저는 그와 비슷한 환경을 체험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런 체험을 하기 전에는 그런 데에 대한 어떤 책임감이나 필요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체험을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마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간 것은 반드시 이러 체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내가 베푸는 입장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그런 일을 당해보지 않으면 그것은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종훈 목사님이 맹호부대로 월남전에 파병되어서 전투에 참여했을 때 전투 중에 행군이 펼쳐지는데 물이 떨어져 몹시 힘들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물 한 방울 때문에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며 행군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물 한 방울이라도 먹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달랐는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갔을 때 거지 나사로에게 손가락에 물 한 방울만이라도 묻혀서 혀에 대달라고 하는 그런 욕구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지옥의 실체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 한 방울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체험했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종훈 목사님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기독교인의 삶 가운데에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핵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개혁이라는 것도 사실은 예수님의 그러한 가르침을 깨닫고 그런 가르침을 삶에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여야만 하셨던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깨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면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핵심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빠지면, 쉽게 말해 예수님의 마음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빠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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