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월급 나눔 여섯 번째 이웃 : 83세 할머니
그렇게 과일을 배달시키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번 한 달 월급 나눔의 마지막 한 분만 남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좀 쉬다가 시간을 보니 4시30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니까 마지막 대상자는 83세 할머니로 기초수급으로 살아가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복지관에 다녀오다가 넘어지면서 오른쪽 무릎이 완전히 깨졌다고 합니다.
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어 양측슬관절 통증에 대한 인공관절전치환술을 시행받았습니다.
중간정산의료비가 440만 원 이상이 나와서 국가긴급지원을 신청했으나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는 상태라고 합니다.
다음 날 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일단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강민순(가명) 할머니세요?”
“네, 제가 긴데요.”
전라도 분 같았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거여동에 사는 사람인데요, 동사무소에서 소개받고 전화 드리는 겁니다.”
“네, 무슨 일이신데요?”
“아, 네. 제가 뭐 좀 드리려고 하는데 동사무소 사회과 직원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할머니를 알려 주시더라구요.”
“그런데요?”
“혹시 지금 제가 좀 찾아뵈어도 될까요?”
“저 지금 병원에 있는데요. 소망병원이요.”
“소망병원이요? 우리 동네에 있는 병원 말이죠?”
“네. 맞아요.”
“그럼 집에는 아무도 안 계세요?”
“그럼 내가 여기 있는데 집에 누가 있겠어요?”
“병원에 계신다니까 제가 조만간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세요.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언제 방문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집에 계시면 제가 좀 더 편하고 세심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병원에 여러 사람과 같이 계실 테니까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곳이든 무슨 관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전화를 다시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조금 전에 전화 드렸던 사람입니다. 혹시 지금 찾아뵈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그렇게 하세요.”
“병실이 몇 호실인가요?”
“여기 4층인데요.”
“네, 4층에 올라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와 큰길 건너에 있는 소망병원을 찾아갔습니다.
4층으로 올라가니 4층 입구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습니다.
강민순 할머니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강민순 할머니시죠?”
“네, 그래요.”
“몸이 아프셔서 많이 힘드시겠어요.”
“허리가 아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어요. 이 달 말까지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 달이면 10월 말까지요?”
“네. 그래야 될 것 같아요. 수술 받은 병원에서는 한 달을 넘기면 안 된다고 퇴원하래요.
그런데 집에 가면 지하인데 깊은 지하예요.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기가 너무 힘이 들고
또 집에서 병원에 다니려고 해도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여기서 좀 나을 때까지 있으려고 해요.”
“그러셔야죠. 좀 움직일 수가 있어야 집에 가시든지 하겠네요.
그런데 치료비는 어떻게 되나요? 국가에서 좀 안 나오나요?”
“좀 나오기는 할 텐데 무슨 서류를 해서 갖다 달라고 하는데 움직일 수가 있어야죠. 그냥 있는 거예요.”
기록에는 자녀들이 2남2녀가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혹시 자녀들은 가끔 오세요?”
“뭐 거의 안 와요. 손주들은 학교 다니고, 자식들은 저희들 살기 바빠요.”
“그래도 명철 같은 때에는 오기도 하고 그러실 거 아네요?”
“거의 안 와요.”
“연락이 아주 끊긴 거는 아닌데 거의 못 만난다는 말씀이죠?”
“그래요.”
대답하기 곤란해 하는 것 같아 그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실 힘든 분들 중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바로 호적상의 자녀들 때문일 때가 많다고 합니다.
마치 소득이 전혀 없어 굶고 있는데도 허름한 집 한 채 갖고 있어서 도움을 못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마 강민순 할머니도 자식이 2남2녀가 되어도 거의 왕래가 없어 궁핍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식이 있다는 것 때문에 지원대상자에서 빠져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제가 교회 목사입니다. 이 앞 골목에 보면 새소망교회라고 있는데 거기 목사예요.
(굳이 은퇴목사라고 소개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교회에 다니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성경의 말씀을 좀 따라가보고 싶어서
제 월급을 몇몇 사람들에게 나누게 되었어요.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추천해달라고 동사무소에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그래서 몇 분은 좀 도와 드렸고, 할머니도 추천을 받아서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그러면서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받아주세요. 50만 원이에요.”
할머니의 안색을 보니 약간의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구, 이런 돈을 주시다니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원래 고향이 어디세요?”
“전라도 김제에요. 김제에서 30년 전에 저기 거여2동으로 이사 왔어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거여1동으로는 언제 오신 거예요?”
“2년 전에 왔어요. 그런데 몇 달 전에 재개발조합에서 연락이 왔는데
거여2동 재개발지역에서 10년 이상 산 사람들에게는 아파트 하나씩 준다고 합디다.
그런데 제가 움직일 수 없는 바람에 아직까지 찾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움직일 수가 있어야 말이죠.”
아마도 아파트 분양권을 준다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거 벌써 끝나지 않았나요? 지나간 것 같은데요.”
“글쎄, 지나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물어볼 수가 있어야죠. 가봐야 하는데 … ”
“거기 거의 전부 이주 나가고 대부분 철거되었던데요. 1지구예요, 2지구예요?”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거기 가보면 아는데요.”
저는 마음이 답답해 왔습니다.
누구에게 부탁해서라도 알아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럼 무슨 서류 같은 건 없으세요?”
“여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데 … ”
“그럼 그 내용은 써 놓으셨어요?”
“아니, 그것도 못하고 있어요.”
“아마 지나간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번 제출이라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내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참 … ”
“지금은 연휴라서 다 문을 닫았을 거고, 이번 연휴가 끝나면 서루 제출이라도 해 보시죠.”
“그러면 좋은데 … ”
“그러면 제가 연휴 끝나고 알아보기는 할게요. 그 서류 한 번 줘보실래요?”
“그런데 그게 깊은 데 있어서 … ”
“그럼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그 동안에 서류 다 찾아놓으시죠.”
“그래요. 고맙습니다. 나는 날짜가 지나버렸으니까 그냥 지금 집에서 살면 되지 하고 생각했죠.”
“안 되더라도 일단 서류제출만이라도 해봐야죠.”
다른 이야기들도 더 하고 싶었지만 병원 저녁밥이 벌써 올라와서 다들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일어났습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특히 연세가 많이 들어서 혼자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자식들이 2남2녀가 있어도 거의 왕래가 없을 정도라면 더욱 힘들 것 같았습니다.
83세라고는 해도 겉으로는 허리 외에는 다 건강해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이 할머니를 좀 도와드려야 하는데 제가 걱정입니다.
사실 저는 서류 떼고 보고하고 민원 넣고 하는 일에 몹시 서툴고 힘들어하는 사람입니다.
행정적인 일이 참 하기 싫고 어렵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카리나박물관을 연지 10년이 지났지만 정식 박물관 등록도 미루어놓은 상태입니다.
목회가 우선이기 때문에 거기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는 점도 있지만
모든 자료를 다 갖추어서 서류를 보완하고 제출하고 등록을 하는 일이 힘들어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할머니의 딱한 처지에 대해서는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드려야 했습니다.
거여2동 재개발지역은 참으로 어려운 지역입니다.
재개발에 대해서는 50년이 넘도록 하겠다는 말만 있었지 그 누구도 시작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항공제한높이가 완화되면서 재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지역입니다.
근처에 성남비행장이 있거든요.
그런데 강민순 할머니는 그 지역에서 30년을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거여1동 지역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아마 재개발조합에서 연락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개발이 되느니 어쩌니 하면서 수십 년 전부터 말들이 많았지만
저희 교회는 거여1동에 위치하고 있어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사실 저는 그 과정을 상세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튼 강민순 할머니의 문제를 도와드려야만 합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주민 센터와 재개발조합에 찾아가서 물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정확한 주소나 인적 사항들을 알아야만 진행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금 전에 찾아갔던 김완섭 목사입니다.”
“아, 네. 왜 그러세요?”
“저 할머니 지난번에 살던 주소 혹시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거 다 잊어버렸지요.”
“미리 좀 알아보고 나중에 진행하려고 해서 물어보는 건데 기억이 안 나세요?”
“네. 기억이 안 나요. 내가 거기 가면 다 아는데 … ”
“그럼 혹시 연휴 지나고 제가 함께 가드릴까요?”
“아, 그럼 다 알게 되죠. 그래 주실래요?”
“네, 그게 더 낫겠어요. 제3자가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고 물어보는 것보다 낫죠.”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추석연휴 끝나고 강민순 할머니를 모시고 주민센터와 재개발조합에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물질로 도와드리고 얼마가 되었든지 제가 감당하는 쪽이 훨씬 더 쉽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려고 이리저리 애쓸 생각을 하니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 관한 일도 제가 거의 하지 않고 집사람이 많이 하는데
전혀 모르는 할머니를 위하여 이런 편리를 보아드릴 것은 생각하니 집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긴 목회자라면 성도가 이러 일을 당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기는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정말 그런 일을 잘 하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본받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스타일이 못됩니다.
이런 일을 많이 하신 목사님들은 웃으실지 모르지만 제가 어려워하는 일이 이런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튼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서 나를 버리려고 애를 쓰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선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애초에 한 달 월급 나눔의 의도는 그냥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들과 동일시되는 마음으로 함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진행하다가 보니까 주님께서 더 들어갈 것을 원하시는 것 같았고,
한 걸음 한 걸음 이분들과 가까워질수록 더 주님의 마음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애초에 한 번의 도움으로는 결코 그리스도의 마음을 느낄 수 없는 일이었고,
제 의도가 사실 모순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진정한 이웃사랑이란 상대방과 똑같은 입장이 되어서 바로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깨달음인데 주님은 이것을 몸으로 실천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싫든 좋은, 익숙하든 서툴든 당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가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래저래 주님의 은혜와 진리의 깊이는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깊어지게 되고
그러한 어려움과 노력이 저 자신을 변화시켜서 주님의 성품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가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주님의 깊으신 뜻을
아직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다가올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비로소 완성되어간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결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목적임을 또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성장이라는 것이 영적인 체험을 통하여 많이 깨닫고 자라가지만
육적인 체험과 현실적인 경험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자기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그리스도인이란 죽을 때까지 자라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성장을 멈추는 순간 신앙은 점차 퇴보하여 죽은 신앙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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