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태복음 1
마태의 일생
마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공관복음에서만 나오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로 나오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레위로 나온다. 마태의 이야기는 두 가지 장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이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사실 이해가 잘 되지는 않는다.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세관을 나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누가복음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눅 5:27-28)
예수님의 제자로서 열심당원도 있었고 어부들도 있었지만 세리라는 직업은 제자로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 당시 세리라고 하면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율법적으로는 절대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로서 창녀나 죄수들과 동류로 여겨지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라 마태복음의 저자로 세리 마태가 아니라 다른 영향력 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지만, 이런 죄인이 거룩한 복음서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로서도 의미는 지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것은 마태의 인격이나 인생대전환을 만들어낸 배경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정확하게 추론할 수는 없을 것이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가지고 그의 제자로서의 자세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태의 전격적인 결정, 곧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건 자체가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다.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제자로서의 전제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마태야말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장 적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세리라는 직업은 그 일을 떠났을 때 만약의 경우에 다시 세리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리를 경멸하였음에도 지원자는 늘 있었던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평생을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으로 전환하였던 마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벌이게 된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눅 5:29)
그런데 이 잔치에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세리와 죄인들이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 이외에는 거의 죄인들의 무리였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부르심 받은 사람이 마태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태가 자기 직업을 떠나면서 동류였던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헤어지는 인사를 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마가는 이미 그들 중에서 예수님을 알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막 2:15)
마태의 기록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잔치자리에서 세리와 죄인들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했다고 나오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직접 거론한 것으로 나온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
바리새인들의 공격에 대해 예수님은 똑같은 말씀으로 대응하신다. 건강한 자와 환자, 의인과 죄인을 비교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0-32)
그런데 여기에서 마가와 누가와는 달리 마태는 구약 호세아 선지자의 말로 결론을 맺는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上)
이런 몇 가지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하기를 원했던 사실과 맞물려 비록 세리의 삶을 살았지만 율법이나 구약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제자들도 거의 마찬가지이지만 진리에 대하여 갈급한 마음이 강한 상태였음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심령상태를 보시고 제자로서 선택하셨던 것이다.
마태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마태의 삶에 대해서는 언급하기가 곤란하다. 다만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 동기가 되는 마태공동체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추정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시리아(수리아) 지역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대상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을 뿐이다. 이 지역에 예루살렘 멸망(서기 70년)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서 살았는데 이들은 상당히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들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록한 복음서라는 저술의 성격과도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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