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정치에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우선 왜 각자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예수님보다 더 높게 두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정치인들의 한 마디에 열과 성을 다해 따르려고 하는 것이 어떻게 기독교인의 정치참여인가?
예수님을 비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며 성경과는 정 반대로 가는데도
변함없이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어떻게 예수님 사랑인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편에 대해서는 아예 귀를 닫고 악의 무리로 비방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정치참여가 아니다.
상대편의 실수나 작은 범죄나 거짓에 대해서는 이를 악물고 부조건 비방하면서
자기편의 실수나 범죄나 거짓에 대해서는 그것이 월등하게 큰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옹호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는 과연 어느 편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 합당한가에 대한 분별이 먼저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지지나 비방은 결코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태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상대편에서도 할 말이 분명히 있고 사정이 분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잠시라도 서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무슨 고리타분한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고 현실을 무시하거나 너무 모른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해보려는 마음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거짓과 편가르기는 마귀의 가장 오래된 주요 전술이다.
정치인들은 편을 갈라야 한다.
내 편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정치인의 특징이고 고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래에까지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성경에도 정치인들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오늘날의 정치인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면 성군이고 성공한 정치인이 되었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반드시 실패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오늘날 정치인들 중에는 적어도 절반 이상은 불신자들이다.
40% 가까이 되는 크리스천 정치인들도 그들이 정말 신앙인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는 소수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정치인은 그냥 명목상의 기독교인일 뿐이다.
그런 정치인들을 어떻게 믿고 예수님보다 더 환영하는가?
물론 누구나 정책적이든 지역적이든 선호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고 마음이 가는 정치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잘못되어도 몹시 잘못된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기독교인의 정치참여 운운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는 말씀중심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법안을 만들려고 한다든가
자기 혹은 자기편의 성공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이라면 과감하게 지지를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정적으로 응원할 수는 있다.
그럴 때에는 자기의 논리를 가져야 한다.
자기만의 논리가 아니라 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나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논리를 말한다.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하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분명히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인 주장을 펼치는 정치인을 열광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정치인을 교주로 섬기는 종교인일 뿐이다.
대화가 되지 않는 지지층에 속해 있다면 그는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다.
대화가 되어야 상대편의 말에 대한 수긍도 하고 잘된 것은 잘 되었다, 잘못 된 것은 잘못되었다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편가르기가 사라지고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은 분명히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앙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영원한 하늘나라만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한 정치참여는 다른 의미에서는 적극적인 이웃사랑이다.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보면,
원수는 사랑하면서 우리의 이웃인 다른 국민들에 대해서 배척하고 공격하고 편가르기를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꾸로 해석한 것이다.
반대편을 지지하는 사람일지라도 대화가 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용납하고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람과는 결코 공존할 수가 없다.
지금 이 나라는 서로 상대방 때문에 나라가 망해가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마음과 뜻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믿음은 헛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를 말해야 한다.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누구인가?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는 함께 사는 다른 국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를 통해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더욱 좋은 나라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정치참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정치에 반영이 되어 하나님께서 나아가고자 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나라가 좋아지고 부강해졌다고 해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냥 외면하실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면서
그 뜻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는 진정으로 유효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정말 하나님의 말씀과 방향이 일치하도록 나아가는 정치인은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로 나아가고자 있는 정치인은
아무리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일지라도 지지하고 응원하면 안 된다.
선호하는 정치세력과 정치인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는 선택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일지라도 말씀과 반대되는 것이라면 마땅히 반대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는 반드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태도를 견지할 때 그 정당성과 당위성이 세워지는 것이다.
'신앙개혁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제는 대안입니다. (0) | 2021.07.17 |
---|---|
본질! 본질! 본질! (0) | 2021.07.17 |
기독교개혁을 시작하려면 (0) | 2021.03.25 |
사명신앙 : 세례요한 선언 (0) | 2020.12.12 |
사랑신앙 : 베드로 선언 (0) | 2020.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