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본질! 본질!
많은 분들이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질을 회복하자, 교회의 본질을 찾자,
복음의 본질이란 이런 것이다 하면서 본질을 언급하고 있고 본질을 회복하자는 주장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실상 가장 중요한 주제이고 주제여야 합니다.
교회개혁, 기독교개혁에서 본질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속이 텅 비어있는 포장상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급 재질로 화려하게 포장해도 그것은 그냥 상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본질을 이야기하고 본질을 되찾자는 말은 정말 너무나도 필요한 주장들입니다.
개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본질인 것입니다.
그러면 본질이란 무엇입니까?
본질에서 핵심이 빠져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본질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핵심이 빠져있기 때문에 본질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질에서 핵심이 빠져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복음의 본질, 교회의 본질, 기독교의 본질이란 사실상 다 같은 말입니다.
기독교란 교회들에 대해서 세상에서 불리어지는 명칭이요,
교회는 복음을 소유하고 보존하고 전파하고 개혁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본질,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복음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일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이란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복음은 죽는 것입니다.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른 복음이 아니고 본질과는 오히려 더 멀어질 것입니다.
살기 위한 본질, 부흥하기 위한 본질, 성공하기 위한 본질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독교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복음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여러 종교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성공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기독교는 ‘죽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교회에 다녀야 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죽지 않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내가 죽어야 복음의 본질은 되살아납니다.
복음이 쇠퇴하게 된 주된 이유는 죽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믿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고 복 받기 위해서 믿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죄송하지만 성공하고 부흥하고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는 본질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본질이 빠진 믿음은 생명력 없는 돌멩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복음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죽으려고 할 때 살아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본질이 빠진 믿음은 생명력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특징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고 죽어야 거듭날 수 있고 죽어야 성령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죽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똑같은 고난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살려고, 성공하려고, 부흥하려고 할수록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본질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예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말이고,
그것이 지속되면 결국 예수님과의 관계마저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원형, 기독교의 본질을 찾아들어가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만 죽는 것이 빠지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죽는다는 것은 전부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비우고 버린다는 말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밑바닥까지 내려간다는 말입니다.
자의에서이든 타의에서이든 죽는다는 것은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어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심령 속에는 성령님으로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려면 우리의 심령이 다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야 예수님이 사십니다.
교회가 개혁되려면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버려야 합니다.
세상 욕심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세상의 목표에 대해서 죽어야 하고, 외적인 부흥과 성장에 대해서 죽어야 하고, 성공과 성취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하나님께서 거하셔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나게 되며,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워질 때 교회는 개혁되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개혁하려면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합니다.
자신이 죽지 않고 교회를 고치고 제도를 바꾸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고 찬양을 드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최종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죽기 위해서 말씀을 배우고 죽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죽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 다 같이 죽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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