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태도와 반응
조선일보에서 전 장관의 따님과 장관의 그래픽 사진을 성매매 관련 그림으로 올렸다가
여론과 국민들의 호된 매를 맞고 있습니다.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 어떤 경우에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물론 기자의 실수라고 보도가 되었지만 아무튼 그 자체는 굉장한 사건이며
조선일보의 치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페북 상에도 그 사건을 언급하는 게시 글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저는 한 가지 희망과 한 가지 절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두 분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분들을 비난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 분의 이야기를 통해 정치적인 두 가지 태도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보수 우파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저의 페친들 중에는 소위 ‘좌파’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소위 극렬하게 보이거나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분들은 페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분들은 페친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두 분의 좌파적인 분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분’이 아니라 ‘글’로 표현하겠습니다.
인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글은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서 모든 보수층을 공격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조선일보를 폐간하자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공유하면서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목사님이었습니다.
사실 목사님 이야기이기에 여기에 글을 싣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글은 조선일보의 실수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공격할 것은 공격하자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평신도 사업가였습니다.
목회자이든 사업가이든 모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여겨졌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절망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공격하면서
반대편 사람들 전체를 매도하는 그런 태도에서 저는 심각한 절망을 느꼈습니다.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갈라놓은 편가르기에 그대로 경도되어서
반대편을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 그런 태도에서 어떻게 조금이라고 희망을 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좌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치에 대한 태도를 말하자는 것입니다.
보수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보는 것은 또 다른 글 때문입니다.
그 글의 주인공도 분명히 강한 좌파적인 분입니다.
그런 시각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신앙이성이 느껴졌습니다.
이 글에는 그분은 조선일보는 폐간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대한 실수를 그 상황을 보지도 않고 비난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좌파나 우파, 진보나 보수와 같은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워낙 작은 것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비난이 심해서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리스도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성향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그리스인의 태도를 말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분보다는
이성을 가지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넘길 것은 넘기자는 분의 신앙의식이 차원 높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분의 성품이나 인격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믿음이 더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만약에 좌파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듣고 배우고
그러다가 보니까 그 쪽 이야기만 듣고 읽고 그런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반대편을 판단하는 삶을 살았다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저도 분명히 좌파적인 사람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꼭 그런 환경뿐만 아니라 어떤 큰 사건 등에 의해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세상을 판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반대편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렇다고 좌파든 우파든 어느 한 쪽이 무조건 옳고
반대편은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용납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도 보수 쪽을 지지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기준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판단이 전부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인가 잘못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있고 피해자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절대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렇게 하셔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가 하나님과 하나 되고 성도들끼리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는데,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예수님이고 뭐고 무조건 반대편을 비난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옳은 태도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평소에는 은혜로운 말씀들을 쏟아내다가
정치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비난부터 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맞을까요?
물론 신실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름대로 생각과 근거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의견들을 서로가 인정해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에게 그릇된 것이 있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좌파든 우파든 정치적인 근거와 방식은 거의 유사해졌습니다.
그러나 조금 멀리서 그런 싸움을 보면 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과거 자신들의 태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서로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야 하고 자기의견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며
그렇지 못하더라도 형제로서 상대편을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런 기준 정도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조선일보의 실수를 인정해 주자는 글로 인해서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굳이 올리는 까닭은 제가 복음의 본질과 생명력 회복을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진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용납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앙개혁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년 후의 한국교회 (0) | 2021.07.22 |
---|---|
성경을 통해서 들어야 합니다. (0) | 2021.07.21 |
복음의 2층으로 올라가자. (0) | 2021.07.19 |
목사님들, 책망 받을까 두려워하십시오. (0) | 2021.07.18 |
문제는 대안입니다. (0) | 2021.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