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혁일지

신앙개혁일지 16 :

김완섭 목사 2021. 7. 29. 19:47

신앙개혁일지 16

 

나눔이란 남는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이란 자신의 일부를 떼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채우는 일입니다.

나누기 위해서 비우는 것이며, 나누어주기 위해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예 온 몸을 나누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눔은 그리스도의 나눔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바리새화되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나누게 되기 쉽습니다.

나눔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자랑하거나 자기의로 삼는 것입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것을 원래 주인인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김완섭복음의 본질과 생명력 회복

7월 17일 오전 10:23 

 

신앙개혁일지 16

한 달 월급 아낌없이 나누기

 

대안이 없는 이유

은퇴하자말자 계획했던 신앙체험을 몸으로 실천하는 중이었습니다.

신앙개혁운동의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뛰어나고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 한국교회를 걱정하며 뛰어난 저서들을 출판하고 있고,

학회나 연구소를 통해서도 좋은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씻고 보아도 대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뛰어난 분석과 성경적인 예측과 대응방안들을 제시하는데 대안을 만들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안을 안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못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럴 때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라고들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실제로 신앙생활이나 교회에 적용 가능한 방식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만 집중하니까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버림의 실천

그렇다고 제가 만들어가는 대안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함께 하다가 보면 변화는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실 신앙개혁의 목적은 변화가 아니겠습니까?

근본적인 변화는 근본적인 신앙체험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체험이 중심이 되는 과정을 직접 실천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실행했던 세 번째 신앙체험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그 말씀을 실천해보아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달 월급이라도 온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습니다.

 

나눔의 대상 찾기

저는 평균적인 1인 월급을 300만 원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렇다고 제 수중에 300만 원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은행에서 현금서비스로 300만 원을 대출받았습니다.

1년에 나누어서 갚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50만 원씩 여섯 분에게 나누어주는데 단지 거여동에서 가장 어려운 분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무당이라고 할지라도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나누어줄 작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그런 사람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가장 가난한 사람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알고 있었던 성도 두 분은 제가 임의로 정할 수 있었고(가장 가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나머지 네 분은 주민 센터에 가서 의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총 여섯 분의 대상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어려운 여섯 분

혼지 사는 77세 할머니,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 때문에 국가지원을 받지 못하는 83세 할머니,

허리를 다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72세 할아버지 부부, 딸 둘이 청소년 범죄로 감옥에 있는 50세 여성,

그리고 평생 혼자 어렵게 살아가는 66세 집사님,

평생 남편에게 매 맞고 살다가 결혼한 딸이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76세 할머니 등 여섯 분이었습니다.

주민 센터에서 소개 받은 네 분에게 갈 때에는 동직원이 함께 동행해야 했습니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직원 말이 이렇게 직접 찾아가서 주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나눔의 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깨달음으로 인한 변화가 체험의 목적

이렇게 해서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짜 순수하게 나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제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이 저에게 아주 많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체험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벌거벗겨야 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로서의 순순한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나눔의 참된 의미인데

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나중에 또 다른 체험과 어우러져서 깨달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