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장 잘 이해하고 느껴보려면 십자가에 매달려보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중에서도 십자가에 매달려계신 시간이 가장 길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핵심은 십자가에 매달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는 체험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느껴볼 수 있는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채찍질이나 가시관 고통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모든 종류의 고통과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스러운 조롱을 견디어내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보지 않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갈 2:20)는
바울의 고백을 진정으로 동의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신앙개혁일지 29
십자가에 매달리기
‘죄와 허물의 십자가’와 ‘상처와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난 후 1년 5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2019년 10월 5일에 드디어 십자가에 매달려보기를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계획인 ‘사명과 헌신의 십자가’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이후이므로
두께도 절반밖에 되지 않고 무게도 약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좀 가벼운 십자가를 제작해두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 역시 높이는 3m60cm로,
아마도 예수님은 이것보다 더 높은 곳에 매달려 계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체험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 메고 가셨던 십자가는 가로 막대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세로 기둥은 현장에 세워져 있었고요.
가로 막대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무게가 30kg은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의 무게를 약 25kg 정도로 추정되니까 얼추 비슷한 무게의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전체 무게는 45kg 정도였지만 뒤쪽을 땅에 끌고 갔기 때문에 실제 무게가 그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진에서 십자가 아래에 바퀴를 달고 가는 모습을 얼핏 보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십자가를 땅에 끌고 걸어가 보니까 목재가 많이 닳았고
또 끌리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서 조금은 꺼려지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날 매달리기를 위한 십자가를 수직으로 세워야 하는데,
건물 옥상에서 시도하다가 보니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머지 목재를 가지고 받침대를 튼튼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십자가를 끼우는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매달려 있다가 쓰러져버리면 꼼짝 못하고 넘어져서 큰 사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벽에 가까운 곳에 세우고 끈을 연결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가로막대에 손목이 걸릴 수 있도록 십자가 중간쯤에 발받침도 되도록 튼튼하게 들었습니다.
십자가에 올라가서 양손을 매달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같은 지역에 목회하시는 조성래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분이 로마 병정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한 시간 동안 매달려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6시간 도안 매달려 계셨는데 적어도 저는 한 시간은 매달려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성래 목사님께 한 시간 후에 오시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에서는 저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성래 목사님은 그냥 계단 아래에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양쪽 팔목을 묶인 채 매달려 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5분 정도가 지나면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에 찔리거나 베인 것과는 전혀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왜 6시간이나 매달려계셔야 했었나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상처와 고통을 담당하시고 치유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계시는 동안 얼마나 심한 모욕과 조롱을 받으셨습니까?
며칠 전까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인간의 모든 종류의 고통과 수치를 예수님은 한 몸에 짊어지셨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생각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깨달은 큰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입니다.
이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전부 성취하시고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바로 가상칠언이었던 것입니다.
두 가지만 쓴다면,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하셨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엘리엘리 하라마 사박다니!”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렇게 깊은 깨달음을 얻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5분이었습니다.
한 시간을 계획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조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시간을 보니까 겨우 25분이 지났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를 가지고 건물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약 2km 정도 거리를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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