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DC(예수마음제자반) 경건훈련도서
신국판(양장), 216p, 14,000원
2025.1.25. 발행
간략한 도서 소개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성경』 시리즈는 성경 전체를 총 32권에 나누어서 날마다 한 장씩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은혜를 받고 변화될 수 있도록 기획된 특별한 목적의 책들입니다. 현실적인 신앙생활에 적용이 가능하도록 해설한 족집게식 개론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도록 기획한 묵상과 실천적인 문제제시로 이루어진 이 책을 사용한다면 평이한 성경통독이나 묵상을 대체할 수 있는 뛰어난 안내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귀한 양식을 취할 뿐만 아니라 소화까지 완벽하게 이루어냄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며 나날이 신앙이 성장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선 모세오경 다섯 권을 내놓습니다. 각 50일, 43일, 27일, 36일, 34일의 분량으로 나누어놓았지만, 각각 2~3가지 주제로 나누었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한 장을 이틀에 나누어서 읽을 수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JMDC(예수마음제자반)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김완섭 목사가 교회에서의 성도들의 경건훈련을 위하여 새롭게 출간한 시리즈입니다. 그래서 JMDC 경건훈련도서인 것입니다. 먼저 이 다섯 권만 집중해서 묵상해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레위기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명령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신약 백성들의 삶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물론 그리스도로 인하여 형식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우리 속에 흐르는 영적인 흐름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동일한 것입니다. 차이점이라면 구약에서는 육체의 성결이 전제될 때 영혼의 성결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면 신약에서는 영적인 성결이 이루어질 때 육체의 성결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효과이며 그것은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제사에서 제물의 완전함과 형식의 완전함을 항상 요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할 때에 우리의 모든 것을 비우고 버려야 진정한 교제가 가능하다는 점과 일치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오늘날 신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거룩한 제사법을 일러주신 하나님은 오늘날 여전히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동일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를 읽으면 상세한 규례가 반복되는 것 같아도 그 모든 말씀이 동시에 지금 우리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 분명히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눈에 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수천 년 전의 상황이 오늘날과 겹치겠습니까? 그 당시의 상황은 마치 전쟁 상황이나 재난의 상태와도 유사했을 것입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잣대로 내용을 판단하지 말고 그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해아 합니다. 이 책의 기록목적도 그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발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논리와 지혜로 깨닫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레위기는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특히 8장과 9장이 그렇습니다.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법률서, 실천서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본문 내용 일부입니다.
물건이 고발한다.
속건제와 속죄제는 죄의 대상과 종류에 따라 구분될 뿐, 사실상 같은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속건제는 특별히 어떤 물건과 관련되는 경우에 필수적으로 드려야 하는 제사인데, 말하자면 그 물건을 중심으로 소유권에 대한 다툼 등 죄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물건으로 인하여 일어난 다툼이 사실은 사람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벌금과 원금과 손해배상금 등 형사와 민사 소송으로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오늘날 상품에 바코드 등으로 식별이 가능하게 만든 것처럼 물건에 감각이 있거나 인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물건이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물건이 스스로 고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물건에는 눈이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눈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눈으로 다 살피고 계십니다. 물건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대한 말, 혼자 중얼거림, 하나님께 드린 불평이나 원망, 거짓 맹세나 증언, 속임수 등 모든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반면에 똑같은 물건이라도 주인을 찾아주었다거나 누군가에게 나누어 준 일, 아무 대가 없이 선물한 일 등도 다 알고 계십니다. 언어로 누군가를 세워주고 위로하며 격려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 등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무형의 돈에도 눈이 달려있습니다. 물건이나 돈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발합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계 10:6)
적용하기 : 당신은 어떤 물건, 집, 교회건물 등에 대한 욕심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속건제를 드려야 한 조건이 됨을 알고 있었습니까?
환경의 피부병을 조심하라.
의복에 곰팡이가 피면 당연히 그 옷은 태우거나 빨거나 버려야 합니다. 당시에 의복은 오늘날처럼 쉽게 버릴 수 있는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복을 태워버리는 일은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이것을 제사장이 진단하여 폐기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하심으로써 죄 자체와 함께 환경까지도 정하게 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곰팡이에 오염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죄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죄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모든 것을 육신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그런 세상의 원리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곧 죄란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예수님의 대속하시는 흐름을 거슬리는 모든 사상과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때때로 의복에 오염된 것을 제사장이 진단하고 처리했지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입고 사는 옷 자체가 죄와 관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 옷을 빨아야 하겠습니까?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영적으로 보면 오히려 이것이 실체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돌아가서 주님과 함께 다시 못 박히지 못하면 또다시 의복이 곰팡이에 노출될 것입니다. 곰팡이가 생긴 옷에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 아래로 가서 못 박히고 매달림으로써 환경의 청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적용하기 : 당신의 환경은 영적 청결을 유지하기에 적합합니까?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합니까?
광야로! 광야로!
앞 장에서 피부병에서 정하게 되었을 때 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 한 마리를 속죄제로 잡아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죽은 비둘기의 피를 일곱 번 뿌리고 들판으로 날려 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만 비둘기 두 마리는 개인의 정결예식에 사용한 것이고 본문의 염소는 대속죄일에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했다는 것이 차이점일 것입니다. 공동체의 정결을 위하여 염소 두 마리를 필요로 했고, 제비를 뽑아 속죄제물로 드릴 염소를 바치고 살아있는 염소에게는 안수하여 백성들의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고, 염소는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광야에까지 가지고 가서 놓아주라고 하셨습니다. 광야로 데리고 가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광야의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말도 있고 또는 야생동물의 먹이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아사셀 염소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단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마귀에게 패배하신 것이지만 그렇게 하셔야 우리의 죄가 씻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마귀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성막과 울타리로 보호되고 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백성들의 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곳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도 정결함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꼭 물리적으로 광야만 광야인 것은 아니고 심령의 광야, 마음의 광야, 영적인 광야, 목적의 광야 등 광야는 얼마든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은 지금도 자꾸 광야로 광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을 정하여 아사셀 염소를 만들어 우리대신 광야로 보내는 것이 아닙니까? 매년마다 반복하여 아사셀 염소는 광야로 나갑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아사셀 염소이십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적용하기 : 당신은 자꾸 광야로 나가고 싶을 때 어떻게 합니까? 당신에게 있어서 아사셀 염소는 무엇입니까?
칠 월이 되면
이스라엘은 7월이 되면 세 가지 절기를 지키게 되는데, 그것은 1일에 나팔절, 10일에 대속죄일, 15일부터 7일은 초막절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7월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는 7월이지만 민간력으로는 1월 곧 새해입니다. 그러니까 새해 첫 달을 맞이하면서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구속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기쁨으로 새 날, 새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은 아니었고 전국 각지 자기들의 삶의 터전에서 나팔을 불었으며 중앙 성소에서는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7월 10일에 대속죄일을 맞이하여 성막에서 대제사장이 자기 자신과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죄를 깨달을 때마다 속죄제를 드리지만 깨닫지 못하는 죄와 사소하게 숨겨 있는 죄까지도 모두 속죄하기 위한 날입니다. 이때에는 아마도 금식과 회개를 통하여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하심으로써 죄의 엄중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15일부터 7일 간은 초막절로 지키는데 이것은 수장절, 장막절 등으로도 불립니다. 특징은 7일 간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사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제, 번제, 소제, 희생제물, 전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추수할 곡식을 창고에 들이면서 지키는 절기인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감사하고 축제로 즐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7월이 우리의 새해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매달마다 이스라엘의 7월처럼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새로운 날, 새로운 해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나팔을 불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고 짓거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은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 회개하고 깨끗케 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7월처럼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적용하기 : 우리는 매일이 이스라엘의 7월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갚을 수 없이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7월 같을 때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취소가 가능하다고?
놀라운 사실은 서원예물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정해진 값에 20%를 더 붙여서 돈으로 헌금하면 도로 자기 소유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서원의 규례도 몸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서원했던 사람이 여러 가지 형편상 도저히 그 서원대로 행하지 못할 경우에 사람대신 매겨지는 값입니다. 이 때 사람에 대한 값으로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남녀와 나이에 따라 그 값을 정하고 제사장에게 속전(贖錢)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서원으로 드렸어도 부득이한 경우에 무를(취소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후에 사사인 입다가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주시면 누구든지 자기를 가장 먼저 영접한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다가 자기 딸이 먼저 나오는 바람에 하나님께 바치게 되는데(삿 11:34~35), 이 때 사람을 값으로 대신할 수 있는 이 규례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완전하시지만 이미 구약시대부터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살피시는 분이셨습니다. 본장은 사실상 서원취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이신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분명히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의를 원하시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살피십니다. 하와가 타락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악열매를 먹은 것도 어쩌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약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벌을 받지만 반면에 또 살길을 열어주시고 속죄제사로 죄를 씻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도 하십니다. 레위기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인간이나 짐승들을 죽이심으로써 정결하심과 거룩하심을 요구하신 하나님은 마지막 장에서 은혜와 사랑으로 서원을 취소할 수 있게 하심으로써 또 다른 감동을 주십니다.
적용하기 :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거나 어려움 당했을 때 드린 약속도 모두 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입니다. 잊어버린 약속이 있다면 지키거나 그 값을 정하여 20% 더하여 드리시기 바랍니다.
'김완섭 목사 저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명기 적용과 실천 (변화를 만드는 성경 5) (0) | 2025.02.13 |
---|---|
민수기 적용과 실천 (변화를 만드는 성경 4) (0) | 2025.02.13 |
출애굽기 적용과 실천(변화를 만드는 성경 2) (3) | 2025.02.11 |
창세기 적용과 실천(변화를 만드는 성경 1) (0) | 2025.02.11 |
변화를 만드는 성경 (JMDC 경건훈련도서) (0) | 2025.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