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편에 서기

표적 1 : 기적을 구하라.

김완섭 목사 2017. 7. 20. 15:53

일시적인 표적이나 증거를 따라 살지 마세요.


표적 1 : 기적을 구하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12:37-38)

 

천사를 보여주세요.


내가 30대에 신앙생활 하던 교회의 어느 집사님 이야기이다. 교회에 출석하고 남선교회 활동도 하고 있지만 집사님에게는 신앙생활에 대한 열심이 없었다. 자신도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오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천사를 제 눈에 보게 해주신다면 정말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충성하겠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기도하던 중에 어느 날 예배 후에 놀란 얼굴로 성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예배 때 목사님이 강단에 서는 순간 갑자기 천사가 보였어요. 천사가 정말로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날개를 펴고 목사님 뒤에 서계시는 것을 보았어요.”

집사님은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로 이전보다 열심히 충성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는 내가 직접 그 집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니까 분명한 사실이다.

 

젊은 시절 성경공부 중에 들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어느 믿음 좋은 청년이 날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었다. 이 청년의 소원은 환상에서라도 예수님을 한 번 만나보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철야기도를 자주 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이 청년은 너무나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예수님의 흰색 옷 아래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가만히 보니 검을 꽂는 칼집이었다.

 

청년이 의아해서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았다.

아니, 예수님! 이 칼집은 뭐죠?”

그 순간 예수님의 환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짓의 영이 그를 속이려고 일으킨 환상이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전해 들은 내용이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이다. 성경은 신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신학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병 고침이나 기적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종 병 고침이나 기적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가 뒤늦게 전파된 여러 나라들에서 많이 일어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 현실 속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은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시는 일들이다. 성령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경험을 위하여 주시는 현상들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 표적을 주실 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깨달을 때에는 표적이나 기적은 정말 유익한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죽음만 기다리던 환자에게 기적을


내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나의 외삼촌 되시는 황찬규 목사님 때문이었다. 황 목사님이 세우신 한국병원선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황 목사님께 일어난 일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죽을병에서 고침 받은 현장이 바로 우리 집이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영접한 황 목사님은 서울에 올라와서 정치에 빠지게 되었다. 믿음도 다 팔아먹고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요정을 운영하던 중 방광암이라는 질병을 만나 4년 동안 투병하게 된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황 목사님은 깨닫는 바가 있어서 마담을 비롯한 종사자들의 발악을 뒤로 하고 요정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렇게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죽음을 기다리던 며칠 후 황 목사님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갑자기 온 방안이 뭉게구름 같은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예수님이 나타나실 것 같은 기쁨이 채워지려는 순간 큰 불덩이 같은 것이 방광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너무나 뜨거워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온 방안을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그런데 그 뜨거움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해결되었던 것이다. 방광암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렸고, 고통도 모두 사라졌고, 소변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완전한 치유를 받은 것이었다.

 

그 후 황 목사님은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그 이전에 살려만 주신다면 죽을 때까지 환자들에게 오직 복음을 전하며 살겠다는 고백을 수도 없이 드렸다. 하나님께서 황찬규 목사님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신 이유는 병원전도에 쓰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 후 황 목사님은 일평생 병원전도의 길을 멈추지 않고 50년이 넘도록 그 일에 집중하고 계신다.

 

하나님께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목적을 일관되게 감당하기 위해서 때로는 기적이나 표적이 필요하다. 기적이나 표적이 없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감당하면 더욱 좋지만 깨닫지 못하고 자꾸 자기 길만 가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기적이나 표적이 필요할 때가 있다. 관념적인 신앙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기적이나 표적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변함없이 그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또는 단순한 하나님 체험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하여.

 

표적을 구한 선지자들


사사기에 보면 사사 기드온은 하나님께 두 번이나 표적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먼저는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기드온에게 사명을 주셨을 때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6:19-21). 그리하여 여호와의 사자가 제물 위에 지팡이를 대자 불이 나와서 제물을 살았던 장면이다.

 

그 다음 장면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이다. 기드온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고 이슬이 양털에만 있다면 확신하고 나아가겠다고 요청한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땅은 다 말라 있고 양털에만 이슬이 가득하여 손으로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기드온은 이번에는 반대의 표적을 구하였다. 마찬가지로 양털을 마당에 두었는데 이번에는 양털은 보송보송하고 마당은 이슬로 젖어 있었다(6:36-40).

 

기적, 표적, 증거를 구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사람의 육신의 눈으로 영의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여호와께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어떤 수단으로든 확신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 사명이 큰 사명일수록 더 큰 확신이 필요하다.

 

모세는 그렇지 않았던가! 40년을 왕자로 살다가 살인죄를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피신한 지 40년이 또 흘렀다. 이제는 옛날의 왕자 의식도 사라졌고 이스라엘 구원의 열망도 다 사라졌다. 그는 그저 광야에서 양들을 몰고 다니는 완벽한 양치기 노인이 되어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광야를 지나가다가 불이 활활 붙어 있는데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발견하였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육성이 들렸다. 모세로 하여금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확신하지 못하였고,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자 오히려 하나님께서 표징을 보여주셨다. 애굽의 바로에게 갈 때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모세에게 주시는 놀라운 능력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모세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을 확신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뱀이 되었고, 뱀의 꼬리를 잡으니 도로 지팡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미심쩍어하자 하나님은 두 번째로 모세에게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라고 하신다. 품에서 꺼낸 손을 보니 나병이 생겨 하얗게 변해 있었다. 다시 품에 손을 넣었다가 꺼내니 본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확신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자 하나님은 나일강의 물을 퍼서 땅에 부르라고 하셨고, 모세가 그대로 따라 하자 물이 피가 되는 표징도 보여주셨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모세를 확신시키기 위해 표적이나 증거를 베푸셨던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아직도 자신이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가 말을 잘 하지 못해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하나님은 입을 지은 여호와께서 주관하겠다고 말씀하시지만 모세는 끝까지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간청한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노하셨다. 하지만 모세에게 향하신 뜻을 거두신 것은 아니었다. 모세는 확신을 가지기만 하면 절대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모세의 형 아론이 대변자 역할을 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시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모세는 사역자로 세워졌고, 그 후로 40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교회개척장소에 대한 증거


하지만 하나님의 사명에 대한 확신은 꼭 그런 기적적인 역사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47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신학대학원에 가게 되었고, 2001년 겨울에 우여곡절 끝에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20022월에 졸업식을 하면서 장소를 구하기에 이르렀다.

 

몇몇 군데 제안도 있었고 찾아보기도 했었는데 다 어긋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광고를 보았다면서 송파구 거여동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 때 아내, 동역하던 오 전도사님, 나 이렇게 세 사람이 그 교회로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교회를 우리의 개척교회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중에 몇 달 전부터 기도하던 내용들이 있었다. 사실 어디를 교회장소로 정할 것이냐의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를 이리저리 옮기는 모습들을 자주 보아 왔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곳을 정하면 그곳에 뼈를 묻는다는 심정으로 목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나? 기드온이나 모세처럼 특별한 기적을 구해볼까? 과연 하나님께서 그런 기적의 역사를 보여주실 것인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어떤 표적을 구할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응답을 주지는 않으셨다.

 

나는 교회 장소를 정하기 위해 4가지 기본적인 요청을 드렸다. 지하철역이 가까운 곳, 사람들의 왕래가 적당한 곳, 주변에 큰 교회가 없는 곳, 그리고 60평 정도의 크기였다. 교회에서 공연 등을 펼치기 위해 최소한의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60평 정도는 필요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제목들을 놓고 계속 기도하는데 합당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 달 쯤 지나서 나는 기도 제목을 한 가지 첨가했다. 60평이 아니라 120평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다른 층으로 주시든지 같은 공간을 주시든지 아무튼 60평씩 두 개의 공간을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도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기도제목을 첨부하였다. 60평씩 두 개의 공간을 주시되, 내부 인테리어가 다 되어 있는 공간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연락이 왔고 그곳에 가서 교회를 둘러보고 나서 교회 목사님과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쯤 되면 내가 기도하던 조건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그 장소를 원하는 여러 목사님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때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는 강도사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것은 더욱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지 않겠는가! 거여역과 가깝고, 주민들의 왕래도 적당하며, 주변에 큰 교회도 없다. 장소는 60평씩 두 층이었고, 완전하지는 않아도 인테리어도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 목사님이 여러 사람들 중에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여 계약하였다. 이보다 더 완벽한 표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대한 증거로 주시는 표적,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나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나 사명에 대한 확인을 위해서 베푸시는 증거는 다양하다. 꼭 기적이 아니어도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증거를 주신다. 기적이 나타나야만 완전한 증거는 아니다. 외적인 증거가 전혀 없어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에게만 주시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종류이든지 표적, 증거를 구해야 한다.

 

표적을 얻었으면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표적을 얻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오래 되고 연락이 끊겨서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지만 천사를 보았다는 그 집사님은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충성하였을까? 20여년 전에 어렴풋이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고 한다.

 

기적적인 증거를 구하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표적만으로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강한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인생의 길에서 굴곡을 만났을 때 그 표적은 희미해지기 쉽다. 표적과 함께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그 표적이 표적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자주 이야기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울 왕도 이 강한 표적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 기스의 명으로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되었고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으며, 성령이 임하심으로 예언하는 은사까지 받았다. 그리고 왕을 선정할 때에 제비뽑기를 하였는데 사울이 딱 뽑혔다.(삼상 9-10)

 

참으로 큰 기적이요 표적을 본 사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왕이 되어서 권력을 잡게 되자 믿음도 잃어버렸고 성령도 떠나버렸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시작하여 가문의 몰락을 가져오고 말았다. 표적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표적을 경험하지 못해도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어도 말씀을 떠나면 오히려 화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성령의 강력한 은사를 가지고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표적 자체가 목적이 아닌데도 기적적인 역사라고 해서 표적만 따라다닌다면 가짜가 되기 십상이다.

 

기적을 구하라. 우리에게는 기적이지만 하나님께는 기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고만 하면 그 어떤 기적도 다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표적을 구하라. 그러나 표적은 말씀을 보충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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