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반복읽기
4주 동안 세상소식 끊고 사복음서만 8회 반복읽기했습니다.
4독에서도 마가복음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 네 번째 읽기
⚫ 영적 훼방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에는 유난히 귀신들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나라에 특히 귀신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왕성할수록 귀신들의 훼방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또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훼방하려고 더 많이 역사한 것 같다.
(막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 미쳤다는 소리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는 조용히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준비하고 계신 예수님이신 것 같다. 우리도 다른 때에는 별로 티를 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열정을 다하여 미쳤다는 은유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막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권 세
귀신은 예수님을 만나면 즉시 알아보고 달려와서 절을 한다. 자기 왕인 사탄에게 그렇게 해야 하는데 왜 예수님께 와서 절을 하는가? 귀신의 왕보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가 더 높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곧 사탄을 멸하시고 하늘보좌에 앉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가?
(막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 율법주의
손을 자주 씻고 물을 뿌리고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위생상으로도 필요한 일인데 이것을 종교적 율법으로 묶어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라도 갈 것 같은 종교행위로 만든 것은 말 그대로 율법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막 7:3-4)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 위 선
부모를 공경하라는 참 계명조차도 고르반이라는 전통종교 행위 속에 가두어 진정한 부모공경을 오히려 훼방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율법주의이다.
(막 7: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 틈 새
바리새인의 외식적 율법주의, 헤롯당의 세속적 권모술수 등은 성도의 삶 속에 모르는 사이에 작은 틈새를 파고들어오는 사단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
(막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 예수님의 명령
귀신 중에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귀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귀신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은 들린다는 사실이다.
(막 9:25-27)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 섬김의 권위
세상에서는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주관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런 권세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이끌어가게 된다. 이 땅의 새로운 공동체에서도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이끌어가는 새로운 리더십이 보여져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수많은 모임 중에서도 힘 있고 돈 있는 큰 교회 목회자가 주관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정말 헌신하고 섬기기를 원하는 작은 목사가 발을 붙이기 힘들다.
(막 10:42-44)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 기도응답의 비결
예수님은 기도의 응답의 확신과 타인의 죄 용서를 같이 묶어서 말씀하신다. 우리가 전부 용서받아야 할 사람들이므로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그 사람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신다.
(막 11:24-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 사랑의 조건
하나님을 온 힘과 목숨까지 다하여 섬기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 삶인데, 이것을 교회 안으로만 국한시키는 바람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이 나타날 수 없다. 하나님 사랑이 예배와 헌금이요 이웃사랑이 성도심방 정도로 좁아진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 전 부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마음가짐은 심지어 목숨까지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는 바로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행위 그 자체로 구원받는다거나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막 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깨어있음
죽음을 눈앞에 두신 예수님께서 너무 괴로우셔서 예수님의 근처에라도 제자들이 있기를 원하셨다. 직접적인 힘이 될 리가 없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괴로움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은 진정어린 응원을 원하셨던 것이다.
(막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 상 황
사실 베드로의 입장이 되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베드로가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 밝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은 아시는 예수님께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막 14:71-72)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 어리석음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어두워 있었으면 자기들이 지금 진짜 메시아를 죽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마저도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어쩌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일상 속에 갇혀서 정작 진리는 완전히 놓칠 뿐 아니라 오히려 메시야를 십자가게 못 박는 죄를 범하지 않았던가? 잘 믿는다는 그 의식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막 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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