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반복읽기
4주 동안 세상소식 끊고 사복음서만 8회 반복읽기했습니다.
마태복음 다섯 번째 읽기
⚫ 편 견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네 명의 여자들은 전부 족보에 들어갈 수 없는 여자들이었다. 시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다말, 기생출신 이방 여인 라합, 신혼 때 남편이 죽어버린 모압 여자 룻, 왕과 간음하고 남편 우리야을 죽게 만든 밧세바. 메시아가 왜 필요한가를, 성경이 왜 기록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위로 받게 되고 다소나마 안심할 수 있다. 또한 주변의 소외되거나 편견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더 배려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마 1:3-6)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역사의식
헤롯의 명을 따라 메시야의 나실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알려주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결국 영아학살의 공모자가 된 셈이다.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기독교인은 역사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 2:3-4)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마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승리의 비법
박해를 받을 때 정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고난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복이 되는 것을 알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상황이나 감정에 짓눌려 비겁해짐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마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바리새인의 의
사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의롭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말씀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종교생활을 말하는 것 같다. 외적으로는 특히 십계명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완벽한데, 이런 면에서는 본받을 만한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외식이 아니라 진심이 들어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니면 웬만하면, 곧 바리새인 같지만 않다면 다 천국 간다는 말씀인가?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소 금
기독교인은 사회법을 지키는 일에 완전을 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회법이라는 것이 특수상황일 때에는 예외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온전함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박해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고 아무 조건 없이 빌려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심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 온전해지도록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하겠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간절함
기도의 핵심은 간절함과 진정성이다. 급하면 기도가 많이 나갈 수는 있지만 얼마만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아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 나라가 임한다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이 땅에 영원하고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그대로 실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 속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동체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같다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에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기능을 속히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 그 자체만이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에 이루어질 수 있는 모습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마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하늘의 보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우선 썩거나 상하지 않고, 누가 훔쳐갈 걱정 안 해도 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확하게 전부 기록된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좋은 점은 보물을 이미 잔뜩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돈 문제나 생활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고, 우리의 본업에만 충실하면 완벽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계사나 법무사나 세무사에게 의뢰할 일도 전혀 없어진다. 아무 부담 없는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마 6:20-21)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비 결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 수 있는 비결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소수의 길
문제는 좁은 길에는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비전도 보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망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넓은 길에는 꿈도 있고 성공도 보장되는 것 같고 행복의 문으로 가는 길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 거짓 선지자
좋은 목회자, 나쁜 목회자를 어떻게 분별할까? 설교를 잘 하거나 교회를 부흥시킨 것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주님은 그 열매를 보면 안다고 하셨는데, 열매란 곧 행실을 말하는 것이다. 재산을 모은다거나 명예나 인기를 쫓거나 작은 것, 낮은 것을 무시하는 등의 행동이 보이면 거짓 선지자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좋은 선지자였는데 나중에 거짓 선지자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마 7:15-1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주여 주여
오늘날에도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능력 행하고 귀신 쫓아내고 알아맞히는 능력 있는 목사들이 많다. 이들은 대개 주의 양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양으로 만들어서 결국에는 잡아먹어버린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따라가지 말고, 자기에게 잘 해 주느냐 못 해 주느냐를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삶의 행위로 나타나는 열매로 분별하는 것이 정답이다.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교회 제도
예수님은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신다. 체제가 삶의 질을 좌우할 때가 많지만 체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체제를 다스리거나 지도해가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 제도는 현재 이 땅에 허락하신 단 하나의 체제이다. 그 체제의 구조를 개혁하려고 할 필요는 있지만 그 체제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어찌 하든지 깨끗하고 투명하고 기능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 8:3-4)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 믿음의 범위
백부장의 하인은 백부장이 아니지만, 백부장의 믿음으로 병을 고쳤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가 원하는 사람의 병을 고치실 수 있다.
(마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 새 포도주
새 포도주, 새 부대는 예수님 자신이다. 어느 누구도 새 포도주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어떤 제도도 새 부대가 될 수 없다. 예수님만이 가능하시다.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 전 파
복음은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속에만 간직하는 것은 참된 복음이 아니다.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 행함이라는 전제가 포함되는 것이다. 행함은 조건이 아니라 진짜 믿음이라는 증거이다.
(마 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 자녀사랑
아들이나 딸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부모자녀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이나 기대감에 의해 자녀를 우상 수준으로 올려놓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한 자녀인 가정이 많다 보니까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사회적 흐름으로까지 확산되는 모양새이다. 주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부모를 지배하고 말씀대로 자녀들을 가르치는 부모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 당당하게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진짜 대단한 것이다. 제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사람이 상을 잃지 않는다면 제자는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자 된 그리스도인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제자는 주님의 대사이다. 아무리 어렵거나 고난이 와도 제자는 당당할 수 있다. 제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함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비움과 채움
우리 심령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을까? 보통 먼저 더러운 속을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씀에서처럼 싹 비워질 때 악한 영이 침범하면 어떻게 될까? 마귀에게 이런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비우는 것 대신에 위로부터 성령으로 채워 내려오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채워지면 더러운 것은 어차피 밀려나서 밖으로 배출되어 버릴 테니까.
(마 12:44-45)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 비 유
왜 그렇게 하실까 생각해보니 마 7:6의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바리새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시면 그들의 분노 때문에 예수님의 때와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비유로 말씀하시고 나중에 제자들에게 따로 설명하시는 방식으로 진리를 선포하신 것이다.
(마 13: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 교회 안의 가라지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 안의 가라지는 언젠가 변화되어 알곡으로 바뀔 수 있는 성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 가라지는 마귀가 뿌린 씨앗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 13: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 믿 음
오병이어의 기적, 물 위를 걸으신 주님, 풍랑을 말씀으로 잠잠케 하심과 같은 일들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들이다. 죽은 사람을 살리시거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도 모두 다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믿게 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하면 이러한 기적적인 현상들은 한 가지를 믿으면 전부 다 믿을 수 있다. 부활은 믿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은 믿을 수 없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 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마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 마음채움
진실, 사랑의 말, 위로, 격려, 정의, 용기, 정직과 같은 많은 좋은 것들이 다 마음에서 나온다. 똑같은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음란, 비방 등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나오는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고 말씀으로 채우고 천국 비전으로 채우면 마음으로부터 좋은 것만 나오게 되어 있다.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 오로지 믿음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변화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나머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적어서이다. 마가복음에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기도하는 이유가 능력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큰 믿음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귀신축사는 믿음으로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되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 비단 용서뿐만 아니라 신앙 안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에는 우리의 진실되고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권력욕
앞서 19:28에서 제자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서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는데, 그 자리에 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 중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베드로를 쏙 빼고 자기들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께 청탁하러 온 것이다. 로마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세계 속에서 우뚝 세워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질 때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다스려보고 싶은 욕심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닌 제자들도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고 거듭난 제자들은 이런 욕심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마 20:20-21)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19:27-28)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 성례전
예복이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예복 자체가 옷의 일종이므로 일단은 신앙예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교회의 제도나 의식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 깊다고 해도 그 신앙을 담는 그릇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교회의 성례전으로 구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마 22:12-13)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 체 제
일반적인 경우에 예수님은 세속의 제도를 파괴하지 않으신다. 잘못된 체제나 억압상태의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일으키려는 것은 예수님의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체제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할 일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반드시 저항해야 할 경우도 자주 있었다.
(마 22: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 지도자
땅에서는 모두 형제일 따름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신분적으로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없다. 기능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신분적으로 높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교만이다. 그러므로 랍비나 아버지(멘토 등의 의미), 지도자, 선생님 등의 칭호를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신분적으로 높다고 생각하면 그는 주님에 의해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갈 수밖에 없다.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사람이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마 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마 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그릇된 확신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100% 자신들의 천국행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이 보시기에 위선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들로서 100% 지옥행이다. 그러므로 목사, 신학자 등 지도층들은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다. 내가 확신하는 것의 정반대의 판결을 받을 수 있으므로.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멸 망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된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고 그 피를 자신들에게 돌리라고 했던 무리들과 함께 위선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의 선조들이 의인들에게 행했던 그 피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와 합쳐져 이스라엘은 멸망당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선지자들의 피가 어떻게 갚아지게 되는지를 설명하시기 때문이다. 결코 한두 가지 일로 단번에 심판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재 림
주의 재림은 모든 인류가 다함께 볼 수 있게 오신다. 결코 어딘가에 이미 와계신 것은 아니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위선자가 받을 벌
악한 종이 받을 벌은 놀랍게도 외식하는 자가 받을 벌이다. 외식하는 것, 위선적인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가장 심한 벌에 처해진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원망, 교만, 비난과 같은 내면적인 악을 선한 척, 겸손한 척하는 죄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이다. 진실함과 순전함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심령이다.
(마 24:48-50)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 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 슬기로움과 미련함
비유이지만 너무나도 명확하게 미련한 처녀와 슬기 있는 처녀로 구분한다. 미련한 처녀에 속한 사람 중에서는 정말 딱한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심하게 아프다거나 돌아가셨다든다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일로 너무나도 바빠 경황이 없어서 미처 준비를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몰두하라는 음성이다. 진짜 중요한 일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슬기로움과 미련함은 분별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 빈익빈부익부
육적으로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모든 사람에게 고루고루 알맞게 돌아가게 해야 하겠지만, 영적으로는 풍부한 사람이 더욱 풍부해질 가능성이 높다. 소득은 사용되어야 하고 소비되어야 하지만 영성은 누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소비될 수도 없어서 아무리 쌓여도 전부 내 것이 된다. 영적 성장에 최우선순위를 두면 결코 손해 볼 일이 없다.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지극히 작은 것
구원에 관한 성경 말씀 중에 행위 자체에 따라 결정되는 듯한 내용들이 있지만 그 행위라는 것도 결국 그 사람의 믿음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에 구원은 믿음으로 결정된다. 영벌과 영생도 형제에게 한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것은 정말 마음으로 받드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작은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작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영벌과 영생의 차이는 결국 지극히 작은 것으로 인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 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고 민
예수님이 마지막 날을 준비하시면서 산에 올라갈 때 제자 세 사람을 데리고 가셨다. 이 제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다. 마치 어느 아이 엄마가 어두운 길을 갈 때 다섯 살짜리 아들의 손이라도 잡고 가면 한결 안심이 되는 것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제자들이지만 곁에 그냥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셨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제자들은 마냥 졸기만 했다.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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