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반복읽기
4주 동안 세상소식 끊고 사복음서만 8회 반복읽기했습니다.
누가복음 다섯 번째 읽기
⚫ 하나님 앞에 의인
사가랴는 사람들 앞에는 노인이요 힘도 없고 이제 물러갈 때가 되었으며 자식마저도 없었으니 무시당할 만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의인이었다.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을 바라보고 가자.
(눅 1:5-6)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 고 백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천사의 말에도 마리아는 그것이 자신에게 이루어질 것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고백했다.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예수님의 목적
예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신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할 사람들이다.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자들은 갈수록 흩어지고 내려가서 결국 빈손이 된다. 그러나 비천한 자, 굶주리는 자는 높아지고 채워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눈길과 손길도 낮은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 굶주린 자에게로 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눅 1:51-53)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 불신의 말
불신의 언어는 말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할 말이 없게 만들 수도 있다. 불신의 언어도 주님이 아주 싫어하신다.
(눅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 돋는 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않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하여 태양이 위로부터 임하여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 어둠은 방향을 알 수 없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지금도 어둠의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오로지 태양처럼 복음이 위로 떠오르게 해야 한다. 복음을 실천함으로써만이 가능한 이야기이다.
(눅 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 죄인과 천사
사실 목자는 이스라엘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목장주인이 아니다. 품을 파는 목동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죄인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죄인들 앞에 천사가 나타났다. 의로운 사람, 영성이 깊은 사람에게 나타나야 하는 천사가 죄인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위해 성육신하셨는가를 생각해보면 다소 의문이 풀린다. 겉모습이나 편견으로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눅 2:8-9)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 특별한 존재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사렙다 과부나 나아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들이다.
(눅 4:26-27)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 버려둠
물고기가 배 두 척에 가득 잡히게 되었다면 평상시보다 몇 갑절의 수입을 올리게 된다. 현금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의 부르심이 있으면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구원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썩어질 물건을 우상처럼 섬긴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아직 못 만난 것이다.
(눅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눅 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 물러가사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도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실 시간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1년 내내 전국과 해외 집회가 꽉 잡혀 있는 강사들도 모든 것 내려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할 것이다.
(눅 5:15-16)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 익숙함의 위험
묵은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다. 변화를 싫어하고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것은 진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릇된 것이라도 지금 하고 있는 것, 묵은 것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면 진리에 가까이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눅 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 새로운 인종
예수님은 새로운 인류의 출현을 기대하셨던 것일까? 예수님의 새로운 공동체,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좁게 보면 교회를 뜻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넓은 의미에서 삶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눅 6:27-28)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하나님의 뜻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분명히 있었다. 바리새인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잘 가르치고 그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잘 인도하는 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목사나 신학자처럼.
(눅 7: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 좋은 교회
씨앗의 잘못이 아니다. 씨는 똑같은 씨이다. 심령 상태에 따라 말라죽기도 하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기도 한다. 다른 시각에서 씨를 사람이라고 본다면 동일한 사람이라도 밭을 잘 만들어주면 잘 자라서 열매를 맺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심겨진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교회 환경을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교회, 나쁜 교회를 구별하는 기준이 이 밭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 때에는 좋은 씨냐 나쁜 씨냐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는 한다.
(눅 8:5-8)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무일푼전도
지금 이렇게 전도한다면 얼마나 열매가 있을까? 복음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병을 고치는 표적도 심령밭이 길가와도 같은 경우가 많아서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과연 한 푼도 안 가지고 전도할 때 주님께서 어떻게 역사해주실지 궁금해진다.
(눅 9: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 이리 가운데 어린 양
주님은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시며 어떤 무기 혹은 보호장구를 주실까? 그 무기는 바로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만군의 왕이신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곧 예수님 자신이 무기이다. 그리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말씀을 선포하는 능력을 주셨다. 하나는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이며 다른 하나는 능력을 주시는 주의 이름이다.
(눅 10:3-4)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눅 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 최고의 선물
구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주시는 성령은 좋은 것들 중에서도 최상의 선물이다. 성령 받지 못하면 영이 죽은 것이니 영에 생명을 주시는 성령은 가장 좋은 선물임에 틀림이 없다. 아니, 받지 않으면 큰일나는 선물이다.
(눅 11: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깨끗해지는 법
심령이나 마음이 깨끗해지는 방법은 자기의 것으로 많이 구제하는 것이다. 비우고 포기하고 낮추고 죽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최상의 삶을 사는 것이다.
(눅 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 돈 많은 사람들
재물을 쌓아놓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절대 안 들린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그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자기 것으로 구제하고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제시하려는 삶을 살면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 내가 있는 곳이 작은 곳이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기를 기도한다.
(눅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종의 복
종의 복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섬기고 있을 때 주인이 돌아오는 것이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주인이 돌아올 시각과 같은 것에는 신경 쓰지 말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항상 주인 앞에 있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눅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눅 12: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 스스로 분별
옳은 것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으면 말씀에 근거해서 분별할 수 있는데 사실 교회에서는 성도들을 이런 사람들로 성장시켜야 한다. 반면에 편견이나 육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분별한다고 하지만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하든지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분별할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눅 12: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 계 산
건축할 때에나 전쟁할 때에 다 계산해보고 지혜롭게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거나 멸망하게 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이 땅의 재물과 저 하늘의 영생을. 예수님을 따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와 영생을 얻는 것인가를 잘 계산해 보라. 내가 가진 것들을 대가로 지불하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썩어질 것과 영원한 상을 잘 계산해 보라.
(눅 14:27-28)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돌이킴
탕자는 굶어죽을 전도로 절대적 가난에 봉착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가치와 위치를 깨달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기를 깨닫자 길을 돌이켜 아버지에게로 향하게 된다.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천국잔치
친구들을 위해 염소 새끼를 잡아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가 말한 적이 없다. 누리는 것도 그리스도인이 꼭 해야 할 일이다. 신앙생활은 파티여야 한다고 말한다. 충성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님이 베푸신 잔치에 기쁨으로 찬석하지 못한다면 이 큰아들처럼 된다. 천국은 기본적으로 잔치이다. 어떤 종류의 잔치이든지 스스로도 잔치를 열 수 있어야 한다.
(눅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 충성된 청지기
옳지 않은 이 청지기라고 하지만 그는 뒷구멍으로 돈을 훔치지는 않았다. 주인의 소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기는 했어도 자기욕심을 위해 일하지는 않았으므로 그는 다른 종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질은 천지에 널려있다. 전부 하나님의 것이다.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물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오히려 충성된 청지기가 되는 것이다.
(눅 16: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눅 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 높임 받음
사람 앞에 높임을 받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속마음이 문제이다. 스스로 마음이 높아진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위선과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이다.
(눅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 신앙과 경제
드라크마 비유(눅 15:8-), 돌아온 탕자 비유(눅 15:11-),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눅 16:1-)는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인데 전부 경제 이야기이다. 신앙은 경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재정을 내가 지배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눅 15: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눅 16: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눅 15:11-12)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눅 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무익한 종의 믿음
살아있는 믿음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왜 무익한 종 이야기를 하실까? 믿음이란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열심히 다 하고 나서도 오히려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할 정도이며, 오히려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마땅히 일어나는 것이 믿음이다. 내가 아주 특별해야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당연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눅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위 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 너희의 새로운 공동체 안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마음에 있어야 하고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하고 세상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데려감과 버려둠
지구의 시차에 의해 한 쪽이 낮이면 다른 쪽은 밤이고, 한 쪽에서 일하고 있으면 다른 쪽에서는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영적으로 잠들어있지 말고 항상 깨어 있도록 애쓰다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다.
(눅 17:34-3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 나눔의 짐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이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는 말씀이 통했다. 많이 가진 것을 약간은 미안해하는 분위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자들에게는 이런 말씀이 통하기 어렵다. 많이 가진 것이 근심이 되는 상황이 올 줄이야. 그냥 물러가서 계속 아쉬워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눅 18:22-23)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 의인 삭개오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였는데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마음까지 먹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였고 나이나 지위에 맞지 않게 나무 위로 올라가기까지 했다. 아마 세리로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까 죄의식이나 소외감이 컸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구원에 관한 깊은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양심적인 사람이었고 일반적인 세리들과 같지 않은 것은 자기가 혹시 속여서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다고 한 구절에서 나타난다. 만약에 속여서 빼앗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선뜻 할 수 있겠는가?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는 것에서 구원에 대한 뜨거운 소망과 이웃에 대한 배려를, 속인 것이 없다는 말에서 양심적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 인내와 영혼
인내는 영혼을 살리고 상을 얻게 하는 좋은 통로이다.
(눅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 기도회 초청
주님의 마지막 기도에 제자 세 사람을 초청하시는데, 주님께서 조금이라도 힘을 얻고자 하신 것과 제자들이 곧 사탄에게 놀림감이 될 것을 염려하여 그들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눅 22:39-40)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눅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죄인의식
죄수가 천국에 더 가깝다. 그 반대도 많지만 죄수가 되면 자기 위치와 저지른 죄, 영적 실체를 알게 될 가능성이 높다. 죄의식, 죄인의식이 있어야 신앙에서 승리할 수 있다.
(눅 23: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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