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반복읽기
4주 동안 세상소식 끊고 사복음서만 8회 반복읽기했습니다.
마태복음 여섯 번째 읽기
⚫ 수치와 회복
예수님 족보에 여성이 네 사람 등장하지만, ‘누구의 아내’라는 식으로 소개된 사람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뿐이다. 우리야의 아내였지만 다윗과 간음한 여인 밧세바.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요 참 창피한 일이다. 다윗이 누구인가? 모세 이후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왕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다윗이 충직한 부하장수였던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한 것을 성경은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구원은 신분이나 지은 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코 행함의 결과로써 선택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간의 죄를 가려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독사의 자식들
예수님뿐 아니라 세례 요한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정면에서 비판하였다. 이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자들이다. 무엇이 그토록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했을까? 성경에 계속 나오지만 그들의 위선이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였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가던 길을 돌이키지 않으면 위선의 죄는 100% 지옥행이다. 무엇보다 위선의 모습을 피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주님의 눈길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은 오늘날 누구인가? 그리스도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오셨으므로 우리의 눈길과 발길도 그런 사람들에 향해야 한다.
(마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 세상의 소금
나는 과연 얼마나 짠 맛을 내는 소급인가? 바닷물은 다 4%의 소금만으로 썩지 않고 온갖 생명체를 품고 있다. 나는 적어도 4%의 대한민국 백성 안에는 들어야 하겠다. 소금의 역할과 사명, 곧 썩지 않게 하는 일과 맛을 내는 일, 그리고 생명체의 기본을 구성하는 일들에 쓰임 받도록 한상 노력해야 하겠다. 우리는 집안의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이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너희 빛
빛의 역할은 목적지를 정확하게 밝혀주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썩은 곳을 비쳐 치료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사람의 본이 됨과 동시에 그릇된 것들 앞에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빛이 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엇이 바른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신앙인은 믿음의 사람들이지만 사람들은 행함으로 그 믿음을 판단한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주의 이름으로
은사가 강한 목회자들이 주의 일을 할 때 자기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자기 말을 절대시하고 자기 말에 철저히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대개의 경우 고난을 이기라는 권면 대신에 고난을 피해가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가르친다. 말씀 중심으로 한다고 말은 하지만 자기와 자기 사역에 유리한 말씀만 뽑아서 사용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주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목회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럴 때 그들은 거짓 선지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대신 당하심
단순히 우리의 약한 것과 질병을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을 대신 당하시고 질병을 어깨에 짊어지셨다. 내가 당하는 괴로움과 고통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고 가신 것이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 노숙자 예수님
예수님은 노숙자이셨다. 때로 은혜 받거나 따르는 사람들의 집에 기거하실 때도 있었겠지만 대개의 경우 예수님은 노숙하셨다.
(마 8:19-20)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 거룩한 다툼
기독교인들을 온순하고 정적인 사람들일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물론 외적인 모습은 그렇게 보일 수 있고 또 그렇게 보여야 한다.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이 없고 세상의 것을 차지하려고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언쟁을 일으키셨고 사람들이 기도 한번이라도 받으려고 몰려오는 바람에 엄청나게 분주하셨다. 기독교인은 진리를 위하여, 불의에 저항하기 위하여 싸워야 할 것은 싸우는 사람들이다. 숫자나 세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싸우는 사람들이다.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천 국
성도는 천국을 침범하는 사람들이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 및 세상과 투쟁하고 도전하고 이겨내려는 사람들이다. 열심을 다해 나아가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은 열린다. 천국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최종 목적지이다. 그곳에 가기까지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하는 곳이 세상이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귀신들림
예수님이 귀신들렸다는 비난을 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도 귀신들렸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영적으로 가장 뛰어난 세례요한도 육신의 눈으로 보면 미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상식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도 때로 미쳤다, 귀신들렸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다.
(마 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 의인과 악인
마지막 날에는 천사들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가려내어 풀무불에 던져버린다. 악인들도 의인들 속에서 의인인 체하면서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
(마 13:49-50)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 분별력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부딪치는 일이 있어도 서슴없이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셨다. 우리가 만약 우리 눈에 보기에 위선, 불법적인 모든 일에 대해 예수님처럼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좋은 것일까? 예수님은 우리와 달리 사람의 속을 다 아신다. 그들은 그들의 위선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의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사람들로서 세상의 모든 일에 위선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직설적으로 비판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죄인들, 세리들, 창기들에게 예수님은 크게 비판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분별력이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불법을 비판하는 데 상당한 조심성이 요구된다.
(마 15: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 온전한 믿음
이 청년은 종교가 요구하는 계명들을 다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계명이란 그대로 실천할 때에만 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계명처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실천행위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생각만으로, 관념적으로만 지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현대 신앙인들도 이런 관념적 신앙, 추상적 신앙에 깊이 빠져 있다.
(마 19: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믿음의 조건
세례 요한의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예수님도 믿을 수 없다. 그들의 특징은 위선적이고 교만하며 자기를 드러내기를 원하며 기득권자들이고 겉으로는 영적인 체하지만 속으로는 육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다. 세리와 창녀는 이런 위선이 없고 속이나 겉이나 비슷하다. 실로 죄가 깊은 곳에 은혜도 깊다.
(마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 하나님께 보인다는 것
바리새인은 자기 이익을 철저하게 챙기면서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선하게 보이려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려고 애를 써야 하는데, 사실은 굳이 하나님께 보이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은밀하게 행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그것을 갚아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마 23: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 거짓 증인
예수님이 활동하시는 동안에 수많은 백성들이 보고 듣고 깨닫고 고치고 그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 나중에 예수님을 붙잡는 증인의 역할을 자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몰래 숨어서 꼬뚜리 잡는 식으로 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귀의 방법이다.
(마 26:60-61)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 실패자
실패자 베드로. 자기 말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부인함으로써 그는 자기 인생 전체를 부인하는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실패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사도가 되도록 만들었다. 가장 큰 실패를 통해서 다시는 그런 실패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마 26:74-75)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구원과 죽음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오면 예수님을 믿겠다고 조롱하였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는 기적, 육적으로 승리하는 기적을 원한다. 뭔가 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그런 기적이 없으므로 큰일을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셔야 더 큰 진짜 기적(부활)을 이루시게 된다. 생각해보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오시는 기적과 십자가에 달려 목숨을 다하시는 기적 중에 어느 기적이 더 큰 기적인가를. 이미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큰 기적, 부활의 기적을 믿고 다른 기적 원하지 말자.
(마 27:41-42)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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