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반복읽기
4주 동안 세상소식 끊고 사복음서만 8회 반복읽기했습니다.
누가복음 여섯 번째 읽기
⚫ 때가 이르면
말을 못하는 것은 질병 때문일 수도 있고 귀신이 들려 그럴 수도 있지만 천사에 의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보는 시각, 주체가 훨씬 중요하므로 우리에게는 분별이 필요하다.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눅 1: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 죄 사함과 구원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아직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구원의 개념이 구약과는 다르게 구체화되고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오늘날 우리가 받은 것이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이것이 시작되었다.
(눅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 복의 의미
시므온의 예언처럼 많은 사람들을 패하거나 흥하거나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는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이와 같은 일을 당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 예수를 잃어버림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을 찾아다니셨다. 태어나기 전부터 심지어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큰 예언을 들었는데 이렇게 사려져버리시니 그들의 마음에 얼마나 혼란이 왔을까? 하나님의 계획 중에서라도 위기나 혼란상황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취소되거나 실패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가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 같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잃지 않으신다.
(눅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가 살려냈으며, 수리아의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을 엘리사가 고쳐냈지만, 예수님께는 이런 일들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었다. 우리가 받은 믿음도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한 기적이 아니다. 매일 매일이 기적 같은 삶이 되려면 내가 받은 기적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눅 4:26-27)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 귀신들의 외침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현상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무당은 예수님을 알고 있다. 교회집사가 점치러 갔을 때 점궤가 잘 나온다면 그 집사가 가짜든지 점쟁이가 가짜든지 둘 중 하나는 가짜일 것이다.
(눅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 지 금
‘지금’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오는데, 지금 주리고 우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운 사람으로 곧 배부름과 웃음을 얻을 수 있으니 하나님께 나오라는 말씀이고, 지금 배부르고 웃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이니 빨리 그 길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 지금이 전부가 아니다.
(눅 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 반사의 법칙
인간의 모든 태도는 반드시 도로 갚음을 당하게 되어 있다. 먼저 선한 일을 하고 먼저 사랑하면 그것을 도로 받는데 더 크게 받고, 마찬가지로 먼저 비판하고 먼저 정죄하면 반드시 도로 받게 되는데 더 크게 받는다.
(눅 6:37-38)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흔들리는 갈대
세례 요한을 보려고 광야에 나간 사람들에게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말씀이다. 흔들리는 갈대나 화려한 옷은 세례 요한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이다.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세례 요한을 보려고 갔던 본래의 목적, 곧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복음과 진리를 쫓아가야지 부수적으로 떨어지는 부스러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눅 7:24-25)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 떠나가시기를
예수님의 놀라운 일을 체험했으면 예수님께 요청해서 더 머무르시면서 고쳐주시고 쫓아주시고 가르쳐달라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떠나가시기를 구했다. 물질적 손실 앞에 막히면 진리도 소용이 없다. 자기 소유, 생각, 욕심을 버리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첫걸음이다.
(눅 8: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 십자가와 죽음
십자가를 예수님의 속죄나 짊어지고 가야 할 사명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는 십자가 처형을 뜻한다. 그래서 곧바로 목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목숨이란 인생, 생명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눅 9:23-2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선한 이웃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하룻밤 동안 돌보아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가 아니라 상대가 필요할 때까지 돌보는 것이 섬김의 기본자세이다.
(눅 10:33-35)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 발광체
심령이 밝으면 마치 등불을 비춰 반사되는 것과 같이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마음이 청결하면 천국을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숨기는 것이 없고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보이면 세상의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눅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 하늘의 지혜
부자는 대개 세상에서는 지혜로워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앉게 되지만, 하늘에서는 아주 어리석어서 하나님께 대하여 지극히 가난한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똑똑하고 지혜로워 많이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 천국의 길
천국에 침입하는 방법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하여 가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굵은 동아줄이 내려올 때 그것을 붙잡으면 올라가는 것처럼 복음을 듣거나 받거나 읽을 때 그것을 잡으면 천국에 가게 되어 있다. 날마다 천국에 침입할 수 있는 길, 곧 말씀에 죽고 살자.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 반향전환
예수님이 말씀 한 마디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다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숫자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능력으로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를 숫자나 세력으로 계산하려고 하지만 사실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참 제자가 얼마나 되느냐이다. 이제는 목회의 방향을 바꾸어서 사람을 많이 전도하는 것보다는 참 제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훈련시켜 세상에 배출하는 데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눅 19:47-48)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 사탄의 시험
사탄이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뜻이 들어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탄이 성도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고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다.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게 되어 있다.
(눅 22:44-46)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 당당함
명확하게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신다. 사실 이 말씀 때문에 사형이 확정되는 것인데 아예 못을 박아버리시는 것을 보면 이것이 마지막 순간임을 잘 알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도 분명히 우리 정체성을 밝혀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내가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당당하게 밝힐 때가 올 것이다.
(눅 22:70-71)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 우편 강도의 믿음
우편 강도의 구원을 보면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우편 강도가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잘 알고 계신다. 만약에 그 강도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면 충분히 행동으로 자기 믿음을 확증할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그의 믿음이 진실된 믿음이라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를 구원해주신 것이다.
(눅 23:42-43)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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