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반복읽기

마가복음 여섯 번째 읽기

김완섭 목사 2017. 11. 7. 11:53

사복음서 반복읽기 

4주 동안 세상소식 끊고 사복음서만 8회 반복읽기했습니다.



마가복음 여섯 번째 읽기

 

율법주의

다윗은 그 자신과 부하들을 위해 제사장에게 음식을 요청했고, 제사장은 이것을 허락하고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진설병을 제공하였다. 생명이 위급할 때 등 긴급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율법만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것은 아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허락이 가능한 범위가 있다. 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은 무시하고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이단 판정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뜻 안에서는 바르지 못할 것 같다.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율법에 사로잡힌 신앙인이 되기 쉽다.

(2: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주일성수

안식일도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쉼과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제정해주신 것이다. 오늘날 주일도 마찬가지이다. 주일은 분명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신앙이 제대로 성장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일을 소중하기 여기고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기 신앙뿐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때로는 주일에 다른 곳으로 갔다가 사고를 당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벌을 내리시는 것은 아니며, 만약에 그것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면 주일을 빼먹은 그 자체보다는 하나님과 교회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닫도록 노력해야 한다.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간절함

막다른 길과 마주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는 살 길, 구원의 길을 만나는 것이다. 절박한 필요성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도 별 감동이 없다. 육신의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환경적,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절박함이 그를 구원하고 기도의 응답을 얻게 한다.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5:26-27)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기도 응답

열두 살 된 딸이 죽었으니 그 절박함이 오죽할까? 예수님도 그 절박한 심정을 잘 아신다. 모든 신앙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절박함, 간절함에서 출발한다. 기도를 하더라도 절박한 심정으로 붙잡아야 응답하신다.

(5: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익숙함

익숙함이라는 요소와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신앙에는 큰 장애물이다. 익숙함은 간절함을 사라지게 하고 선입견은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복음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의 믿음을 보고 기적을 베풀어주신다.

(6:4-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권 능

마가복음은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인데, 여기에서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만을 주셨고 제자들은 병을 고칠 때 기름을 발라 고쳤다고 나와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더 연구해보아야 하겠지만 전도나 사역이 반드시 능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표적이 뒤따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수단들이 많이 있다.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6: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헤 롯

헤롯을 아주 악한 왕으로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지만 이 본문을 보면 헤롯에 대한 일말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회개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는 헤롯이 여러 명이 나오는데, 예수님 탄생 무렵에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리던 헤롯 대왕이 있고, 또 다른 헤롯이 세 명 등장하는데 이들은 헤롯대왕의 아들들로서 분봉왕들이다. 헤롯 아켈라오는 유대 지방을 다스렸는데 폭정으로 인하여 쫓겨나고 총독체제로 바뀌어 당시 빌라도 총독이 다스렸으며, 헤롯 빌립은 북동쪽을 다스렸으며, 헤롯 안디바가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 본문의 헤롯은 헤롯 안디바로서 동생인 헤롯 빌립의 아내를 빼앗아버린 인물이다. 예수님께서 이 헤롯 안디바를 가리켜 여우라고 지칭하신 적이 있다.

(6: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붕봉왕으로


예수님 깨달음

사람의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둔하다. 오병이어로 남자만도 오천 명을 먹게 하신 능력이라면 이 지상에서 하지 못하실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 몹시 놀라는 모습은 아직 예수님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육체가 부활하시고 성령께서 임하신 후에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을 것이다. 날마다 주님 안에서 살아야 그나마 조금씩 더 깊이 알아가게 될 것이다.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마음으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충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만, 마음으로 잘 안 되고 자기 욕심이나 생각대로 하려고 할 때가 많다. 중요한 것은 그럴 때 진심을 다해 하는 것처럼 위선을 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하나님께도 솔직해져야 한다.

(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에바다

우리의 신앙은 항상 열리는 과정이어야 한다. 마음이 열리고 시각이 열리고 귀가 열리면 신앙은 한 단계씩 올라가게 된다. 마치 누에가 허물을 벗고 성장하듯이 우리가 열릴 때 주님께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다. 신앙은 죽을 때까지 열리는 과정이어야 한다. 스스로 신앙이 자랐다고 생각하면 닫혀버리게 되고 더 이상의 성장은 사라져버리게 된다. 내가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시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 열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자기 십자가

아직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실지 한 번도 계시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자기가 마땅히 지고 가야 할 사명을 가리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를 진다는 뜻은 자기가 죽을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간다는 뜻인데,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섬기고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은 주님과 이웃을 위해 한 평생 섬김을 다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거기에 기쁨과 평강이 항상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부끄러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도 우리를 부끄러워하신다. 신앙을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밝히는 것, 성경을 들고 다니는 것, 식사 기도하는 것, 신앙인으로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도록 떳떳하게 신앙생활하자.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첫째 되는 사람

첫째가 되려면 끝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 말씀은 참 시행하기 쉽지 않은 말씀이다. 특히 지도자들, 그 중에서도 목사들은 더욱 실천하기 힘들다. 나름대로 교회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큰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목사들은 일반적으로 개성이 상당히 강하다. 이것을 깨고 목사들이 마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의 큰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죄와 지옥

정말로 예수님이 손목을 잘라버리고 발목을 찍어버리고 눈을 빼버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물론 아니다. 죄와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며, 중대한 문제인가를 깊이 깨닫고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를 내리시는 것이다. 성령님의 책망에 대하여 심각하고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짧은 생각

어느 집사님의 친구 집사님의 딸이 동성애자이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퍼하는지 모른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기에,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구원이 베풀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들 중에 선천적인 사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고치거나 바꿀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 없이 오히려 그것을 장려하거나 무조건 보호해 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10:6-9)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부족한 것

재물이 많은 이 사람은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다 믿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고 계명을 믿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교리나 신조를 확실하게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 믿었다고 영생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믿음은 그것을 중명할 만한 행위가 따를 때에 참된 믿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믿음과 따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는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았다. 그들은 따라옴으로써 저절로 그 믿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 재물 많은 사람과는 완전히 달랐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믿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 따라옴이라는 단어 속에 믿음이 들어있었고, 그 믿음은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10: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자기중심적 신앙

너무 생각이 모자라는 듯이 보인다.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이 앉을 자리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들에게 쏟아질 복만을 생각하는 수준의 신앙인들이 있다.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수시로 점검해보아야 할 것 같다.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대속물

섬김의 극치는 대속물이다. 최고 수준의 섬김은 대신 당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성령께서 내 안에서 100% 활동하시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활동하시도록 나를 날마다 비울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어린 나귀

어떻게 보면 애들끼리 장난치는 것 같다. 잔뜩 치장한 말 위에 높이 앉아 기병대와 군악대와 군중들의 환호성 가운데 개선하는 로마의 장군들에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도 안 된다. 하지만 인간들이 아무리 거들먹거리면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해도 주님 보시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항상 신앙의 실체를 만나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에 자꾸 현혹되려고 한다. 보이는 것은 썩어질 것들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들이다.

(11:7-9)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다 아는 것 때문에

성전은 기도하는 집,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만나주시는 곳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돈 바꾸고 장사하고 뒷거래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예수님도 백성들도 지도자들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 사랑은 순교각오요 이웃 사랑은 희생각오이다. 적어도 그것을 알고는 있어야 하겠다. 그래야 언젠가는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헌 금

헌금이란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헌금 속에 담긴 믿음, 마음, 사랑, 정성들을 기뻐 받으신다.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많든 적든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드리면 크게 받으신다.

(12:42-44)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오해와 착각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함께 고기 잡던 어부들이고 또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왜 이들 네 사람만 동행하여 예수님께 종말에 관해 조용히 물었을까?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앉을 자리에 관심이 많았던 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제자들이 권세자들의 앞에 서야 할 때가 올 것을 말씀하셨다.

(13: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13: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미움과 살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누구를 미워하는 죄와 누구를 죽이려는 죄는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미움이 극에 달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미움이면 사탄이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을 것 같다. 초기에 예수님을 시험했다가 실패했던 사탄이 마지막에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집어넣어 사형으로 이끌어간 것이다. 대제사장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14:64-65)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