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과 신앙
우리의 구원의 전체 과정을 인공위성에 비유해봅니다. 인공위성의 종착점은 대기권 밖 지구 궤도입니다. 그런데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추진 로켓을 이용하여 지구상에서 발사해야 합니다. 추진 로켓 하나로 단번에 궤도에 올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로켓의 무게와 연료 등으로 인하여 보통 3단계 정도의 로켓을 만듭니다. 여기에서 우리 신앙인을 인공위성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궤도는 영원토록 복락을 누릴 천국을 뜻합니다. 이 궤도에 올라가야 우리는 구원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때 인공위성을 탑재할 추진 로켓을 우리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켓 발사할 때는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곧 죄 사함 받고 거듭난 상태를 말합니다.
위성을 운용하려면 인공위성 자체와 함께 추진로켓에 대한 기술이 있어야 비로소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인공위성을 잘 만들었고 추진로켓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연료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서 로켓을 우리의 믿음이라고 했다면 연료를 불태우는 것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과 짝을 이루어 달려가야 할 다른 축, 곧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료는 바로 삶이며 행위입니다. 연료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의 신학은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지만 그 믿음에는 반드시 거기에 걸맞는 행위와 삶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튼 로켓의 연료를 우리의 행위라고 하십시다. 거기에 불이 붙어 연료가스를 분출해야만 하늘 높이 날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시인하는 믿음에만 그친다면 날아올라갈 수 없습니다.
보통 생각하기에는 연료를 성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야 삶에서 열매를 맺고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연료는 성령님이 아닙니다. 연료가 어떤 것이든, 연료를 태울 수 있는 산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 산소가 바로 성령님입니다. 인공위성 추진로켓이 하늘로 높이 올라가면 산소가 희박해집니다. 그래서 산소를 대체할 수 있는 산화제를 함께 싣고 가는데 연료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탱크에 따로 충전하게 됩니다. 연료를 태울 때에는 연료와 산화제를 함께 태워야 끝까지 연료가스를 분출하고 추진력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산화제가 바로 성령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산화제 곧 성령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고 연료로만 태우려고 하면, 즉 자기 힘만으로 일하다 보면 그 열정은 곧 꺼지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인공위성(신앙인)이 궤도(천국)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추진로켓(믿음)이 있어야 하며, 로켓이 발사(거듭남)하여 궤도에 도달하기까지는 연료(행위 또는 삶)를 태워서 연료가스를 분출해야 하는데 이 때 산소가 희박한 대기권 밖(세상)에서도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산화제(성령님)를 함께 태워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해 본 인공위성 비유입니다. 로켓을 우리의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이 믿음 되게 하기 위해서는 연료가 있어야 하며 연료가 끝까지 불타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산화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료와 산화제의 양이 비슷한데 인공위성 발사체 무게의 90%가 이 연료와 산화제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추진 로켓을 몇 단계로 나누어서 제작한다는 것입니다. 1단계 로켓은 발사체에서 가장 밑 부분에 속하며 크기도 가장 크고 가장 무겁습니다. 1단계 로켓에 들어있는 연료와 산화제를 다 사용하게 되면 로켓 본체를 버려야 합니다. 1단계 로켓이 떨어져나가면서 2단계 로켓에 불이 붙게 되는데, 1단계 로켓을 버리지 않으면 그 무게 때문에 힘과 속도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단계 로켓의 크기나 연료의 양은 훨씬 줄어들게 되지만 1단계 로켓이 떨어져 나가면 그만큼 무게가 줄어들기 때문에 비슷한 추진력으로 계속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3단계 로켓에까지 점화가 되는데, 이 때는 크기가 완전히 작아지고 정교해져서 궤도에 정상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가능해집니다. 대신 무게가 완전히 줄어들었으므로 적은 연료와 산화제로 그 기능을 끝까지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버려야 산다.
여기에서 정말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은 버려야 삽니다. 1단계 로켓 본체를 버리지 않으면 인공위성은 대기권 밖으로도 나갈 수 없으며 태평양이나 대서양 바다에 떨어져 바다 깊숙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2단계와 3단계 로켓과, 그 속에 들어있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연료와 산화제와 함께 말입니다. 2단계 로켓까지 다 사용하고 3단계만 남았을 때도 만약에 2단계 로켓을 버리지 못한다면 중간에 추진력을 다 잃어버리고 영원토록 우주공간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공위성은 추진 로켓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 궤도에까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1단계 로켓을 떨어뜨려버리지 않으면 2단계 로켓에 점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점화가 된다고 해도 추진방향을 잃어버리게 될 뿐입니다. 이상과 같은 원리는 어중간한 중간단계는 없으며, 버리고 새로운 추진력으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버리지 않고 중간에 떨어져버리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버리는 훈련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더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신앙경력이 더 올라가고 직급이 올라가고 지도자가 되고 성취가 많아질수록 그런 것들은 다 버려야 할 것들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그대로 안고 있으면 절대 더 올라갈 수 없고 오히려 거꾸로 떨어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 여기에서 다 걸려 넘어집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다 사용한 로켓을 버리는 것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그 다음 단계의 로켓을 달고 가는 것입니다. 이 추진 로켓들은 점점 작아지지만 그것이 부담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추진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것이 힘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1단계 로켓이 점화되는 것이 첫 번째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단계의 연료와 산화제를 다 태웠을 무렵에 로켓을 버리고 2단계 로켓에 점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 때가 바로 하나님과 또다시 크게 만나게 되는 때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 3단계 점화할 때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이전의 로켓을 완전히 떨어뜨려버려야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자기의 모든 조건을 완전히 버려야 하나님과 제대로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인식
그리고 이 때 자기 인식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통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장면을 볼 때 원추형으로 만들어진 규모가 아주 크고 근사한 멋진 발사체 모습은 인공위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진짜 인공위성은 그 멋진 발사체의 맨 위에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형태로 달려 있을 뿐입니다. 만약에 인공위성이 발사체 전체의 모양을 자기 모습이라고 착각하게 되면 아마도 다 소모된 1단계 로켓을 떨어뜨린 후의 자기 모습에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1단계 로켓이 전체의 60-70%를 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3분의 2가 뚝 떨어져나갔을 때 위용을 자랑하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왜소해진 모습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발사체 전체를 자기 모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특히 이룬 것이 많을수록 그런 착각이나 실망이 커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 할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버리면 좋고 안 버려도 별 지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버릴 때 다음 단계의 로켓에 점화가 가능해지고 이것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되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은 몇 단계씩 성장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 외에도 이런 원리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소유를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 19:21)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낮추라고 하십니다. 명예도 다 버려야 하는 것들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자랑거리도 버려야 합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5)
심지어 목숨도 버려야 할 대상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우리가 세상에서 얻은 모든 부와 명예와 직급과 성취는 전부 버려야 할 대상들이고, 그것들을 버릴 때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고 있으면 결코 하나님과 대면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으며 천국으로까지 인도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님과 만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변화될 수 있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성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 다 사용한 발사체를 떨어뜨려버리듯이 벌거벗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는 진정한 신앙을 소유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는 것과 같은 만남이 대면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신앙생활 중에서도 여러 번 맛볼 수 있겠지만, 자아가 깨져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린 상태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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