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혁일지

신앙개혁일지 26 : 그리스도인의 성화 1

김완섭 목사 2021. 8. 11. 21:21

 

성화는 가르치거나 공부를 하거나 노력한다고 금방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서 경험하고 느끼는 반응을 따라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화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통해서 꾸준히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따라 가다가 부딪치면서 더 빨리, 더 멀리 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화, 신앙성장에 대해서 거의 가르쳐지거나 이야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그때그때 만나는 사건에 따라 즉흥적인 반응들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화의 길을 꾸준히 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주며

실수할 때에는 기다려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제가 서울역 노숙할 때 길 건너편 옛 대우빌딩에 만들어진 조명입니다.)

 

신앙개혁일지 26

그리스도인의 성화 1

우리의 신앙의식을 어떻게 성화라는 단계에 이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이론적으로 어디까지가 성화라고 명확하게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생각과 의식이 온전하게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뀐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실생활에서는 영적 분별력이나 결정의 우선순위, 결단의 기준 등이

성경말씀이 주시는 원리를 따라 삶이 바뀔 때일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변화된 상태를 성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 성화된 상태의 삶의 모습을 보일 때 성화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화는 어떤 경우에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성화라고 해서 어느 때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의 행동의 기준을 정해서 여기에서부터 성화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신앙인의 인식이 어느 선에서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그 시점을 성화의 순간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성화되었다고 해서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실수할 때도 있고 게으르거나 무감각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성화된 사람이라면 그런 위기는 순간적이겠지만 아무튼 부족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성화(시작)의 순간을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 또는 결정적 만남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습니다.

신앙인이 삶의 여러 과정이나 고난 등을 겪으면서 자기를 내려놓을 만큼의 변화가 왔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을 통해서 그 사람을 결정적으로 만나주시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이삭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외길 인생이었습니다.

이삭은 생명보다 더 귀중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이 결정적 만남의 순간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삭 중심적) 시각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확 바뀐 것입니다.

이삭을 죽여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성화되는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어땠을까요?

그는 끝까지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버리지 못하다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자기의 모든 자아를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두 번째로 만났던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어땠을까요?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보디발로 인하여 감옥에 갇혔을 때 애굽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석을 해준 후 약 2년간이 하나님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진 순간들이었습니다.

형들에 대한 믿음, 그토록 충성했던 보디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에 대한 기대감이 다 깨져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과 두 번째로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거기에서부터 모든 의지를 버렸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 더 보면 모세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명을 설득하시는 과정들이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그렇게 설득당하고 순종하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모세는 전혀 두렵거나 염려하는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라.”고 담대하게 선포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공략에 실패했을 때 하나님을 두 번째로 만났고,

삼손은 죽기 직전에야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만났으며,

다윗은 어느 순간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 들판에서 양을 치다가

곰이나 사자와 싸울 때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만났고,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났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만났던 것입니다.

 

큰일을 행할 때가 아니라 자기를 발견할 때가 성화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성화의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여러 번 지나갔을지 몰라도 또 다시 옵니다.

그 순간의 결정적 순종이 성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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